SlideShare ist ein Scribd-Unternehmen logo
1 von 59
I LOVE ARAB ARAB VIEW 아라뷰
I LOVE ARAB ARAB VIEW 아라뷰
기획 의도
•
“ 기자로서 나는 하나의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 미디어는 그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는데 , 주로 통념을 확인
해주는 이야기가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 중동 지역을 보도하는 미디어의 문제점들을 낱낱이 파헤친 전직 중동 특파원인 요리스
루옌데이크는 웰컴투 뉴스 비즈니스에서 그 동안 중동에 대한 보도가 얼마나 편파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한다 .
•
석유 , 중동 건설에 종사하는 비즈니스맨 혹은 중동 전문가가 아닌 대한민국 일반 국민인 우리는 그 동안 중동을 제대로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다 . 우리가 중동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TV 나 미디어를 통해 전달받은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정보를 통해 만들어
진 것이었다 .
•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들었던 새내기 시절 “이슬람 사상의 이해” , “ 중동의 정치” 수업은 한마디로 문화 충격이었다 . 우리
가 흔히 무슬림하면 떠올렸던 알카에다와 같은 무장 테러 집단들은 사실 이슬람 세계에서도 내놓은 자식들이었다 . 일부의 극단
적 무슬림들이 그들의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행하는 테러를 지하드 ( 성스러운 전쟁 ) 라는 이슬람 용어로 칭하였지만 , 이
슬람 세계에서 테러 행위를 지하드로 보는 경우는 없었다 . 오히려 그들은 이슬람 법인 샤리아법을 토대로 보면 범죄자라고 한
다 . 무슬림들의 경전인 코란 속에는 “종교에는 강제가 없다” , “ 하나님은 침략하는 자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 “ 이 세상에 혼란
을 일으키지 말지니라” , “ 우리는 다만 옳은 일을 도모하나이다” 는 구절들을 포함해 여느 세계 종교처럼 평화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가르침들을 담고 있다 . 이 수업을 통해 새내기 시절부터 “알면 이해하는 것이고 모르면 오해한다”는 말처럼 그 동안 우리의
무지로 인해 얼마나 중동을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 중동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
•
중동은 9 세기에서 13 세기 , 유럽이 중세의 암흑기이던 시절 연금술 , 의학 등을 비롯 세계 최고의 문명을 이룩하였고 , 이
집트 , 메소포타미아 , 오리엔트 등 고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유대교 , 기독교 , 이슬람교라는 일신교가 탄생한 곳이다 .
다양한 문화와 문명들이 태동되었고 , 아직도 이러한 문화가 공존하고 다양한 민족들이 공생하는 중동 . 우리는 왜 그 동안 이
러한 중동에 대한 기초적 배경 지식이 없이 폭력적이고 , 폐쇄적인 지역이라는 이미지 아래에 그들과의 소통을 중단 , 아니 시
도조차 해보지 않고 살아왔던 것일까 ?
3
•
중동 지역은 역사적으로 주요 강대국 사이에서 오랜 각축전장이 되어 왔다 . 그리스 ,
로마 , 페르시아 , 아랍 , 포르투갈 , 터키 , 영국 ,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
와 문화권이 이곳에서 첨예한 대립을 하기도 했었다 . 특히 중동의 페르시아만은 아시아 ,
아프리카 , 유럽 3 대륙과 대서양 , 인도양 , 태평양 등 3 대양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해왔다 . 제국주의 시대에는 무역 및 교통의 중심지로 , 1-2 차 세계 대전시에는 전쟁물자
보급로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로 , 그리고 오늘날은 세계 경제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석
유 수송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 따라서 페르시아만은 강국들의 이해 관심 지역으로 전
략적 가치가 높은 위험지대이다 .
•
세계은행에 올려진 2009 년 pewforum 전 세계 무슬림 인구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2009
년 전세계 무슬림 인구는 15 억 7 천만 명으로 전 세계 200 여 국가에 퍼져있으며 전 세계
인구의 23% 를 차지하고 있다 .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무슬림 인구의 60% 는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고 , 20% 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거주하고 있다 . 2011 년엔 향후 20 년 동안
무슬림의 인구가 비무슬림에 비해 두배 정도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 CIA
factbook 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성장률은 연간 1.12% 인 것에 반해 무슬림이 대다수인 국
가들의 인구 성장률은 1.8% 이다 . 따라서 2030 년엔 전 세계 인구의 26.4% 이 무슬림이
된다는 전망이다 . 최근 중앙 및 동부 유럽으로의 무슬림 이민 인구 증가 및 유럽 내에 정
착한 무슬림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 프랑스 내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 논란 같이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상이한 문화 차이로 인해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
•
그 동안 폐쇄적인 문화와 정권을 유지해 왔던 중동에도 아랍의 봄을 비롯한 변화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움직임 , 스마트몹 같은 대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 그와 동시에 중동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앞으로 카페베네를 비롯한 더 많
은 국내 기업이 이곳에 진출하고 있고 , 외국의 관심 또한 증대되고 있다 . 알면 이해하는
것이고 , 모르면 오해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중동에 대한 이해의 결여는 앞으로 수많은 오
해와 갈등을 낳을 것이다 . 2030 년 사회의 주역이 될 우리 모두 중동에 더욱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
중동의 가치
및 중요성
중동 여성 인권 향상 움직임
•
이것은 단지 우리의 무관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 그 동안 한국 사람들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중동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유대 - 미국 중심의 언론과 정보를 통해서 아랍과 중동을 인식해 왔다 . 현재는 거의 폐기 된 이론이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인용되었
던 새뮤얼 헌팅턴 (Samuel P. Huntington) 의「문명의 충돌 (The Clash of Civilization) 」엔 이슬람과 전투성간의 연관성 , 이슬람권
과 비이슬람권의 분쟁비화 가능성 등 ‘이슬람의 호전성’이 그려져 있었고 그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기도 했다 . 12 명의 이슬
람 전문 한국 학자들은 공저한 “이슬람”이라는 책을 통해 “ ( 한국은 ) 건국 이후 오늘날까지 한 번도 우리의 입장에서 제대로 이슬람과 이슬람
사회를 들여다볼 기회의 창을 가져보지 못했다”고 기술하였다 . 한국의 언론들은 전혀 다른 아랍 , 이슬람 , 중동의 개념을 혼용하여 사람들
의 그릇된 인식을 만들기도 하였다 .
•
지난 학기 , 우리 팀원 중 두 명은 2 억 5 천명의 무슬림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돌아
왔다 . 인도네시아에 대한 접근성과 거리감은 그리 크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교적인 차원에서 체계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비교적 쉽게 그곳에
서 생활하며 문화적 상대주의를 몸소 배울 수 있었다 . 새내기 시절부터 이슬람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왔던 덕분에 우리는 현지
무슬림들과도 금방 친구가 되었다 . 그들과 함께 30 도를 웃도는 인도네시아 곳곳을 27 시간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허름한 버스를 타고 여행
도 해보고 , 7 시간 기차를 타고 오지도 방문해보고 , 강경 무슬림들이 많다는 수마트라의 잠비도 방문하여 그들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 그리고 “알지 못하면 사랑하지 못한다 .” 는 인도네시아 속담처럼 그곳에서 인도네시아를 알게 되고 , 그곳의 숨은 매력들을
발견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 그 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하고 ,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어디든 우리가 가보지 못할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우리는 중동 방문의 꿈
을 가슴에 품기 시작했다 .
4
•
세계화를 선도하고 있는 대한민국 .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에게 중동의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 대
형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중동 , 아랍 관련 책을 살
펴보아도 보통 학술적인 서적들이 대부분이다 . 그
러한 연구도 연구 대상 국가가 특정 국가에 한정되
어 있고 , 연구 분야가 경제적인 분야에 편중되어
있다 . 경제 연구 또한 서구 경제학에 의존하여 통
계 수치를 비교 , 분석하는 방법에 중심을 두고 있
다 . 일본의 경우 , 인문학을 중심으로 학자 , 여
행가 , 요리사 , 방송극 해설위원 , 신문기자 ,
기업가 , 의사 등의 중동지역 전문가들도 각종 학
회에 참석하며 통합적인 중동 지역 연구를 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 이에 반해 한국의 중동 연구는 언어
나 사회과학 , 특히 정치학 위주의 학술적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 보통 테러와 중동 건설 , 오일 관5
일정
 
2 인천국제공항 출발
3 터키 경유
4 이란 시라즈 : Hamed, Akbar, Masummeh, Sara, Saeed, Terme, Kiyan,
5 Asal, Marjan, Nazanin 등 시라즈 친구들과의 여행 및 홈스테이
6 이스파한 : Mahdy, Amin, Eike, Abiyana, Nayan, Kom, Asiye, Min,
7 Shadi 등 이스파한 친구들과 여행 , 토론 및 홈스테이
8 터키 경유
9 요르단 마다바 : 이 지역 터줏대감이자 기독교 신자인
Fadi 아저씨 가족과의 만남
10 페트라
11 와디럼 : 베두인들과 유목민 체험
12 암만 : Yazan 가족과의 만남 및 홈스테이
13
14 터키 경유
6
사전 준비
•
신양섭 교수님과의 만남
•
아라뷰팀이 대학 새내기 때 중동 세계에 눈을 뜨게 만들어 주신 중동 지역의 대가 신양섭 교수님 . 아라뷰팀은 동원 글로벌 익스플
로러 계획서를 작성하기 전부터 교수님과의 면담을 통해 일정 및 현지 실생활에 대한 정보와 대학생 눈높이에 맞는 유익한 경험들이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출국 전에도 여러 번 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사전 준비를 하였다 . 6 월 1 일부터 시작
된 터키 반정부 시위 문제를 비롯해 이집트의 시위 격화 , 중동 지역 외국인 관광객의 납치 및 사망 소식이 들려오면서 치안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 우리가 방문하고자 하는 지역들의 치안 상태 및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그쪽 문화권에
서 주의해야 할 상황들을 다시금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
최지은 단장님과의 만남
•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 오리엔테이션 당일 우리 팀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 있었다 . 최지은 응원 단장님께서 중동 지역을 오랫동안
여행하셨기에 우리 팀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으시다는 것이었다 . 전달받은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드리고 , 약속을 잡고 최지은
응원 단장님을 뵐 수 있었다 . 단장님께서는 1 개월 동안 여행할 수 있는 국가 단 하나를 고르라고 물어본다면 , 주저 없이 이란을
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세계 여행을 마치신 단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최지은 단장님과 이야기하던 중 우리 팀의 일정이 너무 빡빡하고 , 소기의 목적인 현지 사람들과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중동에 대한
편견을 깨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느꼈다 . 그래서 가능하면 비행기의 일정을 바꾸고 , 이란에서 대부분의 일정을 보내려고
시도하였지만 , 비행기 일정 변경의 수수료가 개인당 70 만원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 대신 이란에서
최대한 많은 ,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하여 사전 연락을 취해 하루 평균 3 개의 약속을 잡아 두었다 . 
7
사전 준비
•
카우치서핑 연락
•
위키피디아에 보면 카우치 서핑은 여행하고자 하는 곳의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무료 숙박 및 운이 좋다면 가이드까지 받을 수 있는 여행자들을 위한 비영리
커뮤니티라고 나온다 . 현지 카우치서핑 회원은 231 개국 6 만 4 천여 개 도시의 133 만 명에 달한다 . 우리 팀원도 기존에 카우치서핑에 대해 알고 있긴
했다 . 하지만 언론을 통해 카우치서핑에 대한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기사를 봤던 인상이 너무 깊었던 탓인지 실제로 이것을 활용해볼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다 . 하지만 최지은 응원단장님의 경험담들을 들으며 카우치서핑의 참 가치를 알 수 있었다 . 이란은 외부인이나 손님을 매우 귀하게 여기는 풍습이
있기에 , 단순히 현지인의 집에 숙박하는 차원을 넘는 경험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 더욱이 10 개월 가까이 이란에 계시면서 거의 한
달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지인의 집에서 머물며 이란의 생활과 멋에 흠뻑 젖어 생활하실 수 있으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
•
카우치서핑에는 가입한 온 세계 사람들의 프로필 , 삶의 철학 , 사진 , 인상 깊었던 경험 , 그리고 그 현지인의 집에서 카우치서핑을 했던 사람들의 생
생한 후기들도 남아 있었다 . 우리의 일정이 너무도 짧고 , 일분 일초도 소중했기에 그곳에 올려진 많은 사람들의 정보를 세심히 읽어보고 , 우리가 궁금
해 하는 부분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 법한 다양한 연령대 ,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 처음 활용해 보는 카우치서
핑이라 답장이 얼마나 올 지 궁금했었는데 , 카우치서핑 이용 팀 기사들을 참고하여 연락해서인지 연락한 거의 모든 곳뿐만 아니라 연락하지 않은 곳에서
도 우리와 함께 양국의 문화를 교류하고 싶다는 연락이 빗발쳤다 . 수십명의 중동 친구들과 일주일동안 스케줄을 조율하고 , 수십통의 메시지를 주고 받
으며 그들과의 교류를 준비하였다 . 이로 인해 단순히 낯선 지역을 간다는 기대를 넘어 , 멋진 경험과 배경을 가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여정을 준비할 수 있었다 .
•
한국 전통 선물 준비
•
우리 여정의 목적은 민간 차원에서 현지인들과 직접 양국의 문화를 교류하며 , 활자로 접하지 못했던 , 자극적인 뉴스와 언론을 통해서는 전달되지 못한
그들이 사는 세상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 따라서 양국 전통 의상 입고 생활해보기 , 전통 음식 공유하기 등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계획해 놓았었기에 한
복 , 한식 등을 구입하였다 . 그리고 우리를 초대해준 현지 호스트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한국 선물들을 구입하였다 . 접이식 한국 전통 부채
와 한국 전통 금 도금 책갈피가 현지에서 인기가 많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두 선물을 중심으로 차 문화가 발달한 중동에 적합한 한국 전통 문양의 차 받침 세
트 , 공예품 등을 인사동에서 구입하였다 .
7
중동에 닿기까지
•
초반에 우리가 탐방할 중동 국가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외교부 안보 등급을 살펴보고 ,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어 올라오는
중동 지역 내의 테러 및 납치 사건들을 보면서 , 탐방 국가를 선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
그런데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기 직전에 우리는 예기치 못한 변수와 마주치게 됐다 . 6 월 1 일부터 시작된 터키의 반정부 시위
사태 . 한국 언론은 시위 초반부에 터키 시위에 대한 기사들을 다루지 않았다 . 우리는 터키에 거주하는 한국인 블로그 , 해
외 통신 등을 통해 현지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 따라서 동서양의 문명이 상생하는 무슬림 국가
터키를 탐방하려고 했던 초기의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 탐방국을 이란과 요르단으로 압축한 것이다 . 하지만 중동행 한국발
비행기의 수가 매우 적고 , 더욱이 이란과 요르단으로 직항하는 비행기는 찾을 수 없었다 . 터키나 카타르 , 아랍에미리트를
경유하는 것이 필수였기에 가격 , 위치 등을 고려하여 터키에서 경유하는 것을 택하기로 하였다 .
•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문제는 출국 일주일 전 신양섭 교수님과의 만남에서 떠올랐다 . 이란 비자 문제 . 우리 팀은 중동의 가
장 최근의 정보들을 엿볼 수 있는 블로그들을 중심으로 많은 정보들을 모았었다 . 최근 한국인의 이란 비자 발급이 시라즈의 경
우 도착 비자로 쉽게 발급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상태였기에 우리는 시라즈로 입국하기로 결정했었다 . 테헤란의 경우 이
란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 한국인의 입국 비자가 거절당하는 사례들도 발견하였다 . 최근 한국과 이란의 관계가 경색되면
서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는 이란으로부터의 초청장이 있다 하더라도 비자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 또한
우리는 기업인 자격도 아니었기에 이란 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발급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 그래서
시라즈 도착 비자를 발급받기로 한 것이다 .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작년에 지인분들을 데리고 이란을 방문하실 때 비자로 인해
고생하셨던 사례들을 말씀해주시면서 비자 없이 이란을 입국하는 것은 굉장히 무모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다른 교수님께서
는 이란행 비자가 없는 경우 터키 항공측에서 우리의 이란행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더라도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다고 하셨
다 . 이미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는 것을 시도하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져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 결국 우리는 이란
비자로 인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출국을 강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
8
긴장의 시라즈 입국

이란은 초청장이 있을 경우에만 비
자가 나오고 , 그럴 여건이 안된다
면 브로커 등을 이용해야 한다 .

우리팀은 네이버 블로그의 후기만
믿고 입국비자가 비교적 쉽게 나온
다는 시라즈 공항으로 입국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

그러나 출국 이틀 전 , 주한 이란 대
사관의 차디찬 답변과 신양섭 한국
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님으로
부터 “이란에 비자없이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를 듣고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되는데 ..

“ 괜찮을거야”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입국 거부와 구류 , 만
약에 일어날 수 있는 초유의 사태에
대비해 가슴을 졸였다 .

새벽 2 시 30 분에 우리는 이란에 도착했다 .
우리 옆좌석에 앉아 웃고 떠들던 사우디 아라
비아 무리들도 국경에 도착하자 긴장한 표정
으로 빨리 긴 옷으로 갈아입었다 .

이란에서는 이란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남자는 긴 바지에 여자는 히잡을 써야 한다 .
나는 발목까지 오는 긴 옷이 없었기에 터키항
공 담요를 허리에 두르는 창피한 짓을 해서
안 그래도 동양인이라곤 우리 넷 밖에 없는
비행기에서 탑승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

과연 이란은 우리를 받아 줄 것인가 !

새벽의 시라즈 공항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
떨리는 마음으로 비자를 신청하고 기다리자
우리 앞에 와 있던 서양인 남자가 눈에 띄었
다 . 그는 무언가를 항의하고 있었지만 그의
보증인이 없었기에 비자를 받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 우리는 점점 긴장되었다 .
긴장 , 감동으로 바뀌다
우리를 구해준 천사 하메드와 시라즈 공항에서 한 컷
그나저나 우리 옆에 있던 서양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지 ..
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니 벌써 새벽 4 시
가 되었다 . 아직까지 비자가 나올지 불투명
한 상황 .

그런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건너편에서 오더
니 우리를 찾는다고 한다 .

맙소사 , 그는 우리의 두 번째 시라즈 카우치
서퍼 하메드였다 . 터키에 있는 동안 배터리
가 떨어져 그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고 몇 시
에 도착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 ‘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와 본 것이란다 . 하메드 덕분
에 우리는 무사히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

입국심사를 받는데 CNN 자료화면이나 헐리
우드 영화에 등장할 거 같이 생긴 아저씨들이
나를 위 아래로 훝어보았다 . “ 코리아 ?” 또
긴장 . 그런데 활짝 웃더니 “두유 노우 주
몽 ?” 한류의 인기를 그때 실감했다 . 그들은
무척 친절하게 우리를 통과시켜 주었다 .

이렇게 우리는 최고의 첫인상을 받으며 시라
즈에 무사히 도착했다 !
사이드네 집

한복을 입고 좋아하는 사이드

그렇게 우리는 하메드의 ‘삼성’차를
타고 ( 하메드의 아버지가 삼성에 근
무하신다 ) 첫 번째 카우치 서퍼 사
이드의 집에 도착했다 .

그 때가 새벽 5 시였는데 , 사이드
는 그때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
다 . 우리가 새벽 2 시 30 분에 입
국이라고 했으니 기약없이 밤을 샌
것이다 .
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우리를 따뜻
하게 맞아준 사이드는 우리에게 직
접 만든 장미 차에 수박 주스를 섞은
달콤하고 시원한 음료를 건네주었
는데 , 그게 우리가 이란에서 먹은
첫 음식이자 친절한 이란의 첫 느낌
이었다 .
시라즈

사이드네 집에서 딱 두 시간 자고 , 사이드가
만들어준 맛있는 아침밥을 먹고 우리는 시라
즈를 만나러 떠났다 .

이란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 일
뿐 , 시라즈에 체류한 기간은 단 이틀 뿐이기
에 몸이 고되어도 쉴 수 없었다 . 그리고 친절
한 이란 사람들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그 피로
를 싹 잊게 해주었다 .

시라즈가 테헤란처럼 대도시가 아니어서 그
런가 , 여행객들은 드물었다 . 동양인들은 더
희귀해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호기심어린 눈
길을 받을 수 있었다 . 그 눈길들은 우리를 노
골적으로 주시했지만 차갑거나 부정적이지
않고 따뜻했다 .
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자거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많았다 . 우리가 생각하는 배척하는
분위기는 커녕 다들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
쳐 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 14 일을 여행하
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시라즈 사람
들이 최고로 착하고 친절했다 .
하메드와 친구들

우리는 전날 우리를 구해주었던 하메드와 하
메드가 데려온 친구들과 함께 하루종일 시라
즈를 구석구석 쏘다녔다 .
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답게 시라즈에는 아름
다운 궁전이나 사원이 무척 많았다 . 세계의
유명한 문화재들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화려
하고 아름다운 문화재가 많았는데 다른 나라
와 외교를 안한다는 이유로 문화까지 알려지
지 않는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

궁전 구경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에
게 남은 것은 하메드와 친구들이다 . 우리가
생각하는 이란의 전통적인 남녀상들과는 전
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

흔히 우리는 중동 사람들은 남자는 호색한 ,
공격적에 가부장적이고 여자는 검은 차도르
로 온 몸을 가리고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남
자는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애를 키우는 전통
적이고 가부장적인 삶의 방식을 가진다고 생
각한다 . 그러나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전혀
달랐다 .

우리의 친구들과 그 이력을 소개하자면 ,

하메드 : 말레이시아에서 박사 학위를 밟고 있
는 젠틀맨 . 깔끔하게 뒤로 넘긴 머리와 딱 달라
붙는 초록색 스키니진 , 웃을 때마다 하얗게 빛
나는 치아가 인상적 .

키안 : 시라즈 카우치서핑계의 대부이자 항상
우리를 웃게 해줬던 남자 .

마르잔 : 남편이 있지만 혼자 카우치서핑 모임
에 나오는 것은 물론 , 전 세계를 여행한 용감한
여행가 . 직업은 엔지니어이며 , 답답한 이란이
싫어 캐나다로의 이민을 꿈꾸는 담대한 여성 .

아살 : 비서 시험을 보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예쁜 여성 . 꾸미는 데 관심이 많다 .

이렇게 면면을 훝어 보면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 세계 여느 사람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
아가고 있었다 .
우리 팀원 네 명의 모습이 전혀 다르듯이 그들도 그
럴 텐데 , 왜 우리는 이란 사람들을 어떤 카테고
리에 넣고 생각한 걸까 ?
아크바르씨네 집

밤 , 우리는 하메드와 친구들과 작별하고 세 번
째 카우치 서퍼 아크바르 (Akbar) 씨네 집으로
향했다 . 몸은 부서질 것 같지만 이란 사람들의
친절과 환대는 피로를 잊게 해주었다 .

적십자회에서 일하는 아크바르씨는 신혼이다 .
부인인 마숙메 (Masukme) 씨는 인테리어 디자
이너로 일한다 .

아크바르씨네 집에서 우리는 하메드와 친구들
과 한 얘기와는 다른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
이란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2 년동안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 . 아크바르씨의 아버지
가 걸프전에 참전했다고 한다 . 그는 진지하게
이란 정부와 정치에 대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었
다 .

아크바르씨는 상남자지만 부인과 아기에겐 약
한 남자였다 . 결혼식 때 찍은 뮤직비디오를 보
여주거나 친구의 아기에게 거침없는 사랑표현
을 하기도 했다 . 부인을 도와 음식준비나 설거
지를 하기도 했다 .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부장적인 중동 남성상에 대한 이미지는 자연
스럽게 우리 안에서 벗겨지고 있었다 .
페르세폴리스

페르세폴리스 , 세계문화유산이자 페르시아 문화
의 집대성인 거대한 왕궁을 이까지 왔는데 안 보고
갈 수는 없었다 . 그러나 전날의 피로로 너무 늦게
일어난 것이 문제였다 . 9 시에 일어난 우리들은 40
도를 가뿐히 넘기는 가장 더운 시간에 구름 한 점 ,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을 올랐다 .

‘ 페르시아의 도시’라는 말 그대로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페르세폴리스는 알렉산더 대
왕의 정복으로 파괴되었는데 , 왕궁에 불을 질러
녹아내리는 황금과 창고의 보물을 모두 가져갔는데
그걸 실어나르는 노새가 2 만 마리 낙타가 5 천 마
리였다 는 기록이 남아 있다 . 대부분 파괴되었지
만 남아 있는 황궁 정문의 황소 상만 봐도 페르시아
제국의 위엄을 짐작할 수 있었고 , 이런 황홀한 문
화의 후손인 이란인들이 가진 자부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

그런데 기원전에 세워진 왕궁의 기둥들은 아무렇게
나 뒹굴고 있었다 . 심지어는 그 유명한 사자상도
우리가 얼마든지 만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 사
이드가 말하길 “이란 정부는 페르세폴리스를 내버
려 두고 부정한다 . 그들은 이란이 이슬람 이후부
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
종교와 정치와 문화는 분리되어야 하고 , 이란 사
람들도 그걸 잘 인식하고 있는데 이란 정부만 그걸
모른다 .
아크바르씨네 처가 방문

아크바르씨의 부인 마숙메씨에게는 한국을
좋아하는 언니와 동생이 있다 . 이란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더빙으로 방송되는 채널이 있
고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아주 높다 . 사극은
물론이고 트렌디 드라마 , 심지어는 인기가
요까지 나온다 .

마숙메씨의 언니와 동생은 한국인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데도 한국어를 엄청나게 잘
했다 . 그래서 아크바르씨는 다음날 우리를
처가 , 즉 마숙메씨가 결혼하기 전 살던 집에
초대해 주었다 . 우리는 즐겁게 한국 드라마
나 문화에 대해서 얘기했다 .
동생은 추노 팬이고 언니는 엄태웅의 팬이
다 . 엄태웅이 1 박 2 일에 나온다는 것도 알
고 최근 윤아가 나오는 편까지 봤단다 .

동생과 언니 뿐만 아니라 마숙메씨의 아버
지 , 어머니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
중동 풍습 , 이슬람 계율에서는 무조건 손님
을 환대하라고 한단다 . 우리는 안그래도 입
에 맞지 않는 이란 음식을 웃으면서 듬뿍 듬
뿍 먹어야 했다 .
아크바르씨네 처가 방문

더 놀고 싶었지만 우리는 가야 했다 . 새
벽 1 시에 이스파한 행 버스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 몇 시간 놀지도 못했는데 ..
아쉬움이 터진다 .

그 때 , 마숙메씨가 우리에게 어떤 비닐
봉지를 준다 . 열어보니 아까 강심언니
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다 . 가는 길에
먹으라고 어머니께서 싸 주신 것이다 .
강심언니가 눈물을 흘렸다 .

이렇게 시라즈 사람들은 고작 이틀 머물
었을 뿐인데도 우리에게 친절함을 넘어
감동 그 자체다 .

밥을 먹은 후 마숙메의 언니와 동생이 쓰는
방을 구경하는 도중에 동생이 게임판을 꺼냈
다 . 이란 전통 보드게임을 가르쳐주겠단다 .
그런데 오빠들도 부른다 .
“ 어 ?? 여자방에 남자가 들어와도 되니 ?”
“ 응 , 뭐가 문제야 ?”
이렇게 또 하나의 편견을 깬다 ..
시라즈에서 이스파한 가는 길
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스파한 가는
버스에 탔는데 , 내가 핸드폰을 잃
어버렸다 . 아마 아크바르씨네 집에
두고 온 것 같다 . 20 분 뒤에 차는
출발해서 발만 동동 구르는데 우리
의 첫번째 카우치 서퍼 , 우리의 보
호자사이드가 택시로 찾아다 주었
다 . 마지막까지 시라즈는 감동이었
다 .

시라즈에서 이스파한은 4 시간 정
도 걸렸다 . 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서서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한다 . 제복을 입은 경찰들과 경찰
견이 버스 안으로 들어가서 검문을
했다 .

우리가 더이상 비교적 자유로운 시
라즈에 있지 않고 , 대도시 이스파
한에 왔다는 게 느껴졌다 .
이스파한 - 마흐디네 집
마흐디는 이스파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29 세 늦
깎이 (?) 대학생이며 , 부모님과 한 집에 살고 있으며 ,
개인 소유의 푸조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
마흐디에 대한 첫 인상은 이거다 . 아니 마흐디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난 모든 이란 남성에게 해당되는 인상이지만 ,
‘ 친절함’ 이다 .
거의 모든 행동에 친절함이 배어 있다고 보면 된다 . 물론
여성 한정이긴 하지만 .
사진은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마흐디 이다 .
우리가 마흐디에게 해주었던 그 어떤 것보다 이 한복을 가장
좋아했다 .
사실 다음 일정을 생각하면 여기서 마흐디에게 한복을 주고
갈 순 없었는데 , 마흐디의 간절한 눈빛이 우리로 하여금
한복을 내려놓게 했다 . 비싼 돈 주고 산 한복인데 ...
지금까지 살아온 짧은 인생 중 , 부모님을 제외하고 우
리에게 있어 가장 큰 감동을 선사해준 우리의 사이드 (20
세 , 무직 ) 을 뒤로하고 , 난생 처음 버스 검문 (?) 을 받
아보기도 한 끝에 , 오전 7 시쯤 새로운 도시인 ‘이스파
한’에 도착했다 .
마흐디
앞서 소개했지만 , 마흐디는 29 세의 영문학을 전공
하는 대학생이다 .
그는 우리에게 자신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자신
을 소개했지만 , 우리가 보기에 그는 ‘한량’이라
는 단어가 정말 딱 들어맞는 그런 남자였다 .
첫 만남부터 그랬다 . 우리에게 9 시까지 수업을 들으
러 간다고 하면서도 , 계속 소녀시대 동영상을 보
느라 바빴던 그는 , 오후에 ‘실크로드’에서 재회
했을 때 ,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손바닥
을 보여줬다 . 시험을 봤는데 공부를 하나도 안해
서 컨닝을 했다고 자랑하는데 , 우리는 그저 웃기
만 했다 .
그리고 혼자 계속 지루해 하다가 아르메니아인 여자친
구 (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수많은 여자친구 중
하나였다 .) 를 만날 때 다시 한껏 폼을 잡으며 우
리를 가운데에 두고 말이 많아졌다 .
마흐디의 집에 있었던 기간은 겨우 이틀이지만
만난 마흐디의 여자친구는 엄청나게 많았다 .
마흐디
그는 사이드와 달리 우리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성격은 아니었
다 . 그러나 상남자중의 상남자였다 .
사실 우리가 아민 일행과 공원에서 문화에 대해 토론을 벌였던
날 , 마흐디는 같이 있긴 있었지만 , 완전히 찬밥 신세나
다름 없었다 .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 마흐디는 그들과 친분은커녕 일면
식도 없는 상태였는데 , 우리가 아민과 연락을 했기 때문
에 , 책임감 하나만으로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 주었던 것
이었다 . 의리남이라는 수식어 말고는 더 떠오르는 수식
어가 없다 .
가장 오른쪽에 모자를 쓴 남자가 마흐디인데 , 그는 이 사진을
찍은 순간 뿐 아니라 , 이 토론 내내 이 자세를 하고 있었
다 . 토론을 마치고 난 뒤 , 우리가 정말 미안하다고 몇
번을 얘기했지만 , 마흐디는 표정이 좋지 않다가도 , 우
리가 말을 걸면 계속 자신은 괜찮다고 했다 .
그러나 후에 마흐디의 데이트에 우리가 이용되었던 것을 생각하
면 , 이 상황은 지금은 그렇게까지 미안한 상황은 아니었
다 .
앞서 만난 사이드와 달리 , 만날 때마다 옆에 있는 파트너
가 바뀌어 있는 마흐디의 능력 . 솔직히 우리 아라뷰 팀은
그를 매우 부러워했다 .
사실 이 토론은 전혀 마흐디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
마흐디의 컨닝 페이퍼를 보여주자
토론 모임의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
수상한 카펫가게 - 실크로드
이맘 호메이니 광장의 한 구석에 위치한 카펫가게 ‘실크로드’ 는 단
순한 카펫가게가 아니다 .
전 세계의 카우치서퍼들과 소통을 할 수 있으며 , 페이스북 등 외
부 인터넷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 수많은 여행객이 들러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
이란의 국내 인터넷 통제는 페이스북 접속 금지와 유투브 등의 사이
트 접속 금지를 넘어서 , 2013 년 7 월에는 자국민 통제를 위
한 국민전용 이메일 계정을 모든 이란인에게 보급중인데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710017010
참조 )
이렇게 통제가 심한 나라임에도 , 소통에 목마른 이란인들은
이러한 비밀 아지트를 통하거나 , 프록시 서버 우회 등의
방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외국을 접하고 있다 .
‘ 실크로드’의 주인장인 OO 는 단순한 아지트를 넘어서 더 많은 카펫
판매를 위한 주춧돌로써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를 운영하고 있
다 . OO 는 이렇게 생각한다 .‘ 더 많은 관광객들이 우리 가게
를 쉼터로 이용하고 , 페이스북을 쓰면서 한번이라도 자기네
가게가 언급될 수 있다면 , 그게 바로 세계에 광고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실로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
우리 아라뷰 팀도 여기에 들러서야 겨우 인터넷을 쓸 수 있었다 .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 이란이라는 국가는 와이파이존도 찾
기 힘들뿐더러 설령 찾는다고 해도 , 웬만한 사이트 , 하다
못해 한국의 네이버 블로그도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놓아서 마
치 눈과 귀가 막힌 듯 한 느낌이었는데 , 여기에 들러서 겨우
다음에 만날 현지인과 약속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 ...
그러나 위에서 한 설명만으로 실크로드를 마무리 짓기에는 뭔가 부
족하다 .
이 부족함을 채워줄 사람이 바로 사진의 청년이다 .
사진의 청년은 이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인데 , 손님이 와도 시큰둥
할뿐 아니라 , 뒤치다꺼리는 사장이 전부 다 하고 , 이 친구
는 사장에게 반말을 할 뿐 아니라 , 우리와 얘기하느라 정신
이 없다 .
우리의 시라즈 친구 사이드에 대해 얘기할 때 언급하겠지만 , 우리
의 편견과는 달리 이란은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사이가 아주 유
연하다 . 서로 대등한 입장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용주가 고압적인 경우도 거의 없고 , 피고용자의 경우도 마
찬가지라고 한다 .
그러나 이를 몰랐던 우리는 , 이 친구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 사장은 아래층에서 영업하느라 진땀 흘리
고 있는데 , 이 친구는 그저 먼산 바라보듯 손님들을 2 층에
앉아서 쳐다보기만 할 뿐 ,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각설탕
자르는 일 뿐이었다 .
우리가 하도 신기해서 질문했더니 , 이 친구는 변함없이 웃는
표정으로 "It is very very important thing" 이라고 한
다 .
설탕 자르는 일이 카펫 하나 파는 것 보다 중요하다고 하는 이 친
구 . 우리는 이 친구에게서 진짜 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
울 수 있었다 . 아래 사진은 아라뷰의 리더인 라일라가 아지트
에서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모습이다 .
수상한 카펫가게 - 실크로드
couch surfing gathering 과 함께한
문화 토론
이스파한에는 카우치 서퍼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 이 모임을 주도하
는 친구가 바로 아민 (20 세 , 무직 ) 이었다 .
이스파한에 도착한 첫날 , 마흐디 덕분에 제 시간에 분위기 좋은 공
원에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다 .
가장 오른쪽에 초록색과 흰색이 섞인 옷을 입은 친구가 카우치서퍼
개더링을 주도하는 ‘아민’이라는 친구다 . 이 친구는 스무살이
라는 아주 믿기지 않는 나이를 가진 친구인데 , 한국 문화에 대
한 관심이 우리 아라뷰 보다 훨씬 더 많았다 .
단순히 문화 뿐만 아니라 ,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까지 , 비록 인터
넷으로 습득한 지식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 모르는 것이 전혀
없었다 . 게다가 한국어도 수준급으로 한다 .
이란에 도착하기 전 , 아민과 미리 컨택을 취해서 , 이스파한에 도
착한 첫날 , 이렇게나 많은 이란의 젊은 대학생들과 만날 수 있
었는데 , 사람이 많은 만큼 토론도 정말 수준급이었다 .
우리는 우리의 프로젝트 성격에 맞는 질문을 준비해갔고 , 이들은
대한민국 내에서의 이란인들의 이미지와 기타 문화에 대한 질문
을 준비해 와서 토론을 시작했는데 , 앞에서 설명한 내용으로
는 토론이 아닌 토의가 걸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 굳이 토론이
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거다 .
한국인들의 편견에 대한 말을 듣고 갑론을박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
이들은 아랍인들의 대외 인식에 대해 불쾌함의 감정이 아닌 , 안타
까움의 감정으로 답을 대신했다 .
서구 언론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가 이들에게 있어 정말 큰 타격과 마
찬가지라는 점을 다시 한번 당부하고 싶다 .
특히 같이 토론하던 친구들은 미래에 한국 또는 일본 등의 아시아 국
가에 유학하는 것이 꿈인 친구가 많았는데 , 우리의 얘기를 듣
고 화를 먼저 내기보다 , 이란 정부를 탓하는 경향이 있었다 .
이란 사람들은 개방을 원하고 , 누가 보더라도 현대 사회에서는 폐
쇄가 아닌 개방만이 이란이라는 국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인데 ,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슬람
원리주의 등의 폐쇄 정책을 펼치고 있는게 1 차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
단순히 서구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말을 듣고 ,
우리 아라뷰도 느끼는 점이 상당히 많았다 .
자유를 항상 누리고 있는 우리로서 , 자유가 제한된 이란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지만 , 이 시간을 통해서 조금이
나마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서
다시 한번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에 감사를 표한다 .
couch surfing gathering 과 함께한
문화 토론
아르메니아인 마을 방문
이란에는 순수 이란인만 살지 않는다 . 물론 지금도 대부분을 차지하
고 있는 사람들은 순수 이란인이긴 하지만 , 전쟁으로 인해 아프
가니스탄인이 많이 유입되고 ,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인들이 정말
많이 이란으로 피난와서 정착중이라고 한다 . 그리고 옛날 터키에
의해 학살당했던 기독계 아르메니아인으로 이루어진 마을도 이란
이스파한에 있다 .
그러나 우리가 애초에 이곳에 방문할 예정은 전혀 아니었다 .
우리의 호스트인 마흐디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갔던 곳인
데 , 도착한 후에야 마흐디가 이곳이 바로 아르메니아인 마을이라
고 소개해줘서 짤막하게나마 설명을 들었던 곳이다 . 사실 아르메
니아인 마을이라고 해서 별다를 건 없다 .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
니아인이라고는 하지만 모스크도 있고 그냥 보통 마을과 다름없었
다 .
단지 특별했던 건 , 마흐디의 아르메니아인 여자친구였다 .
이곳은 짝퉁 Nescafe 이다 . 그러나 짝퉁 브랜드였음에도 불구하고 상
당히 준수한 커피 맛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
그러나 우리는 마흐디의 데이트에 이용되었던 것이었다 . 토론할때까
지만 해도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마흐디가 , 이날 여자친구
앞에서는 토론에서 자신이 중심이었다 , 외국인 친구들도 많다 ,
이런 식으로 자랑을 시작하니 , 우리는 그저 부러움 반 , 어이없
음 반으로 마흐디를 쳐다볼 뿐이었다 .
다행히 커피가 맛있어서 이 카페에서 버틸 수 있었지 , 그렇지도 않았
다면 , 이 사랑의 줄다리기 속에서 우리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
자메 (Jameh) 모스크
우리가 방문했던 자메 모스크는 이스파한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 도시가 세워질 때는 모스크가
먼저 세워지고 그 주위에 바자르가 형성된다 . 즉
이란인의 삶은 모스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
자메 모스크의 자메는 영어로   Congregational 이라는
뜻으로 회중이 모이는 모스크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
자메 모스크는 우리가 그 전에 방문했었던 모스크
와 느낌이 색달랐다 . 화려한 타일이나 장식은 없
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그 분위기가 우리를 압
도했다 . 그리고 모스크 내부의 건물 하나하나 심
지어 기둥 하나하나 마저 역사적 의미를 갖고 우리
에게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맛보게 해 주었다 .
그러나 자메 모스크를 방문했을 때 손님은 우리 말
고 거의 없었다 . 터키에서 본 블루모스크와 비교
해 봐도 전혀 뒤지지 않을 것 같은 이 웅장하고 화
려한 모스크에 관광객이 우리밖에 없다니 ..
정치상황 때문에 전 세계의 다른 사람들이 이런 훌
륭하고 아름다운 문화 유산을 알지 못한다는 게 너
무 안타까웠다 .
모스크에서 우리를 가이드해 준 아저씨가 있었다 .
옥스포드 영어사전을 옆에 낀 아저씨는 유창한 영
어로 한참을 모스크에 대해 설명해주다가 끝날 때
가 되니까 우리에게 돈이 있냐고 물었다 .
우리는 여행지에 빈번한 사기 가이드가 아닐까 의
심했지만 그 아저씨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그 나라
의 돈을 받아 조금씩 수집하고 있었다 . 우리도 한
국 돈을 조금 드렸다 . 세계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
체헬소툰 궁전과 이희수 교수님과의 만남
자메 모스크를 나와 이란인 친구들과의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
아 우연히 들리게 된 체헬소툰 궁전 .
거기서 만난 이들은 이란 청소년 대회 ( 무슨 대회인지는 모르겠다 )
에서 뽑힌 여학생들의 무리였다 . 학생들은 우리를 둘러싸더니
한국과 이란에 대해 엄청난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 주로 이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많이 물었는데 , 이런 걸 보면 이란
사람들은 참 순수하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이란에
대한 인식이 안타깝게 느껴지면서 꼭 이란에 대해 똑바로 알려야
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
그리고 체헬소툰 궁전에서 아라뷰 팀은 엄청난 인연을 만나게 된다 .
바로 한국이슬람학회 학회장이시자 자타공인 국내최고의 이슬람
전문가이신 이희수 교수님과 체헬소툰 궁전에서 아주 우연히 마
주치게 된다 . 교수님께서는 다른 일행 분들과 이란 여행을 즐기
시던 중이었는데 , 우리가 그 동안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를
준비하며 중동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이희수 교수님의 책과 글을
많이 읽고 큰 도움을 받았었다 .
그래서인지 교수님과의 만남은 탐험으로 인해 지쳐있던 우리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주셨다 . 우리들에게 격려의 말씀과 약간
의 용돈 (!) 그리고 한국음식들을 주셨고 이것이 우리가 무사히
중동 여행을 마칠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교수님 , 감사합니다 !
아민과 그의 친구들과의 두번째 만남
- 전통 음식 교류 -
이희수 교수님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어제
만났던 아민과 그의 친구들과의 한 - 이란 문화 교
류를 위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 이날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란인 친구들이 우리들과의 소
통을 위해 와주었다 .
이날 모임은 전날 과는 달리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 속
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되었다 . 서로에
대해 평소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하며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조금은 벗어 날 수 있었다 .
특히 이란인 친구들은 한국의 문화에 대해 많은 관
심을 보였는데 한국 드라마와 한국 가수들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
특히 이날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한국음식 체험이었
다 . 여름이라 한국음식을 많이 준비해 가지도 못
했고 이슬람을 믿는 그들이기에 먹을 수 있는 음식
에 제약이 많았지만 채소로만 만들어진 깻잎절임
에 다들 많은 관심을 보였고 여러 친구들이 직접
깻잎절임을 먹어보았다 . 물론 그들의 반응은 우
리가 이란 전통 음식을 먹었을때의 반응과 매우 비
슷했지만 그래도 서로의 음식을 체험하고 서로의
문화에 대해 교류 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
자얀데 강 다리
우리가 여행 중이었던 7 월의 이란은 정말 덥다 . 이란의 산
에는 나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이란은 뜨거운 태양과 건
조한 기후를 가진 나라이다 .
그럼에도 우리는 이스파한에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
바로 이스프한을 가로지르는 자얀데강을 통해서이다 .
페르시아어로 ‘자얀데 루드’라고 불리는 이 강은 저이단
( 생명을 주다 ) 이란 동사에서 온 자얀데 ( 생명을 주
는 ) 라는 형용사와 강을 뜻하는 루드가 합성된 말이다 .
다리는 두 개가 있는데 모두 몇 백년 전에 지어진 것이다 . 그
옛날에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건설하다니 .. 페
르시아인들의 건축 기술에 다시금 놀랐다 .
그 이름에 걸맞게 자얀데 강은 이스파한 사람들에게 생명력을
공급해 주고 있었다 . 이른 시간부터 자얀데 강 주변에
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 우리나라의 청계천 (?)
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 가족끼리 , 친구들끼
리 혹은 연인들끼리 함께 모여 이란의 살인적인 무더위를
피하고 자얀데강의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 우리도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란 친구들과 함께 강에서 놀며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
자얀데 강 다리를 마지막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아쉬
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요르단으로 떠났다 .
이스파한 공항

작고 , 약간 낡았고 , 우리에게 ‘주몽’을 얘기
하며 웃어주던 시라즈 공항의 직원들은 없었
다 . 이스파한공항은 에어컨이 아주 강해서
춥고 엄청나게 넓었다 .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표정에서 긴장을
읽을 수 있었다 .

그러나 .. 긴장에도 불구하고 졸음은 왔다 .
일정상 공항에서 밤을 새야 했던 우리는 번갈
아가면서 씻고 먼저 나온 사람들은 골아떨어
지고 말았다 . 때문에 제일 마지막에 씻은 정
욱오빠가 우리를 지켜야 했다 . 나중에 오빠
말을 들으니 한국에서 챙겨온 고추장을 먹으
면서 버텼다고 한다 . 오빠 , 미안 !

출국 심사도 여자와 남자 따로 받아야 했는
데 , ‘ 히잡을 다시 써라’는 요구를 받았다 . 게
다가 온 몸 검색을 당했는데 아주 무섭게 생
긴 차도르를 쓴 할머니들이 내 몸 구석구석을
손으로 만지면서 훝었다 .

비자걱정을 했을때 신양섭 교수님의 경고가
떠올랐다 . 만약 우리가 이스파한으로 들어
왔으면 ? 100 퍼센트 입국비자는 커녕 구류
됐을수도 있다 . 우리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
과 함께 ‘이란은 아직 어려운 나라구나’는 생
각이 들었다 .
마다바
우리가 요르단에서 숙소를 잡았던 마다바라는 도시는 매
우 특이한 곳이었다 .
이슬람국가인 요르단 내에서 마다바는 기독교를 믿는 사
람들만의 공간으로서 존재해왔다 . 마다바에는 예
전부터 기독교인들이 살아왔는데 로마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기도 했다 . 그리고 이후 많은 교회
들이 마다바 내에 세워졌고 이러한 교회들과 유적들
이 중동이 아닌 색다른 곳으로서의 느낌이 들게 만들
었다 .
마다바는 성경에도 나올 정도로 기독교에서 갖는 의미가
매우 큰 도시이고 도시 전체가 교회들과 기독교 유적
들로 가득하다
마다바에는 아직까지 많은 기독교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
기독교 신자와 이슬람 신자간의 갈등은 적은 편이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평화롭게 살아간다고 한다 .
그러나 요르단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그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지금은 20%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
다 .
마다바에는 초기 기독교 , 로마 제국 , 비잔틴 , 이슬
람 시대 유적들이 한 장소에 함께 섞여 있다 . 이처
럼 현재의 요르단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모습이 되었
으면 좋겠다 .
Fadi 아저씨 집
우리를 마다바로 초대했던 분이 바로
Fadi 아저씨이다 . 이분은 예전에 요
르단 국방성에서 일하셨고 지금은 은퇴
하셔서 우리와 같은 여행객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취미로 하는 분이셨다 .
Fadi 아저씨 덕분에 마다바에 대한 역
사적 설명과 숨겨진 유적들까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
특히 아저씨께서는 하루종일 걸어다녀 지
친 우리를 직접 집으로 초대해주셔서
쉴 공간을 마련해 주셨다 . Fadi 의 집
은 정말 크진 않지만 아늑했고 옥상에
는 베두인 전통 텐트가 있어 그늘 속에
서 쉴 수 있었다 .
지브릴의 아픔
마다바에 도착한 다음날 , 그러니까 전날 새벽에 굳게 닫혀있던 호텔 문
을 두드리고 체크인을 한 다음날 , 우리는 계획대로 미리 컨택했던
기독교인 요르단 Fadi 를 만났다 .
예전에 요르단 국방부에서 일하시다가 은퇴하신 ,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셨는데 , 정말 열정적이셨다 . 우리의 프로젝트에 대해 정
말 궁금증을 많이 가지고 계셔서 , 밖에 나가기 전에 호텔에서도 열
띤 토론을 펼치느라 힘이 들었다 . 그러나 이분이 짰던 하루 계획은
지브릴의 몸살로 인해 모두 백지로 돌아가버렸다 .
맨 처음 우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성 조지 교회에 들러서 요르단에서의 기
독교의 위상과 현실에 대해 설명을 듣는 중이었는데 , 지브릴의 안
색이 점점 나빠지더니 , 전혀 추운 날씨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춥다고 하여 먼저 호텔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 .
지브릴은 자신의 강철체력을 강조하며 , 조금만 쉬다 오면 된다고 거의
으름장 (?) 을 놓고 호텔로 돌아갔으나 , 우리는 전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기에 , 할아버지께 양해를 구하고 지브릴의 방으로 향했
다 .
결과는 위 사진과 같다 .
이 더운 날에 이불을 목까지 덮고 에어컨까지 끄고 혼자 끙끙대며 잠
을 자고 있던 그는 , 당장 탈수 증세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의심치
않을 상태였다 . 결국 이날 하루는 지릴의 병간호를 위해 모든 활동
을 중지할 수 밖에 없었다 .
다행히 열이 오르거나 하는 상태는 아니어서 , 인터내셔널 SOS 에 연락
은 하지 않았으나 , 몇시간이면 된다고 했던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
고 도통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서 , 덕분에 아라뷰 팀도 본
의 아니게 힘든 일정 중 푹 쉴 수 있었던 하루가 되었다 .
페트라
•
요르단에서 가장 유명하며 세계 7 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페트라 , 우리는 비록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시간을 쪼개
페트라에 갈 수 있었다 .
•
페트라의 입장 요금은 일인당 50JD, 한화로 80000 원 정
도였다 .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유적이며 요르단 세수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
•
페트라는 정말 넓다 . 그리고 현재 발굴된 부분이 전체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한다 .
•
페트라에 대한 감상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 보는 순간
이걸 인간이 만들었을까 라는 느낌이 들고 보는 내내 감탄
을 금치 못했다 .
•
페트라 내부 깊숙히에는 아직도 베두인족들이 산다 . 그
들은 페트라 안에서 직접 먹을 것을 구하며 예전의 모습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살아간다 . 우리 일행이 페트라 안에
서 길을 잃어 헤메고 있을때 베두인족들의 도움을 통해 무
사히 빠져나왔다 . 관광객들은 상대로 하는 장사꾼들이
아닌 순수한 모습 그대로의 베두인족들을 만날 수 있어 참
좋았다 .
와디럼
•
와디란 아랍어로서 겨울에는 강이 되지만 비가 내리지 않
는 우기에는 마른 계곡이나 땅이 되어버리는 곳을말한다 .
즉 와디럼은 말그대로 사막이다 . 중동의 가장 큰 지형적
특징은 바로 사막이 많다는 것이다 . 그리고 우리 팀은 이
러한 중동의 사막을 직접 체험해보고자 와디럼에가게 되었
다 .
•
사막은 사람이 매우 살기 힘든 환경이다 .
그러나 이곳에서는 많은 베두인족들이 살아왔고 지금까지
도 살아가고 있다 . 그들은 사막이라는 인간이 살기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
•
그리고 이곳 와디럼에서 우리는 사막과 베두인족 문화 모
두를 체험 할 수 있었다 . 베두인족 텐트에서 그들과 함께
먹고 , 춤도추고 차도 마시며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
아가고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해 할 수 있었다 .
•
그들은 사막이라는 환경을 즐기며 손님들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 . 비록 하룻밤 동안의 짧은 체험이었지만 사막에
서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었다 .
씨타델
•
야잔이 우리를 데려가준 씨타델은 암만 시내에 있
는 유적지로서 요르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 이 곳은 과거 로마 - 오스만투르크 -
현재 요르단으로 이어지는 유적들이 함께 어우러
져 있는 곳이었다 .
•
암만 시내 곳곳에는 이탈리아에서만 볼 수 있을거
같은 로마시대 유적들이 많았다 . 또한 과거 찬란
했던 오스만 투르크들의 유적들도 찾아 볼 수 있었
다 . 상반대는 성격을 가진 두 거대 제국들의 흔
적들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
•
암만은 그렇게 유명하거나 화려한 도시는 아니
다 . 하지만 모든 서양의 역사가 이곳에 있었다 .
순수 요르단 청년 야잔
•
우리를 암만으로 초대해준 야잔은 요르단에 있는
한국 남부발전소에서 일하며 올해 8 월이면 한국
에서 공부를 하게 될 청년이었다 . 그래서인지 그
는 우리에게 그 누구보다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
주었다 .
야잔 덕분에 우리는 복잡한 암만의 시내를 쉽고 안
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
•
야잔은 순수 요르단 혈통으로 보통 우리가 생각하
는 중동사람들과는 달리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
사했다 . 그의 어머니는 현재 요르단 국세청에서
일하시는 분이셨는데 이분 역시 매우 유창한 영어
실력과 지식들을 가지신 분이셨다 .
•
야잔에게는 우리 말고도 현지의 한국인 친구들이
많았고 우리는 야잔을 통해 요르단에서 일하고 있
는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요르단에서 일하
는 한국인들이 매우 힘든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아
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존경스러워 졌다 .
이란사람들의 차도르에 대한 생각

계율이 엄격하다고 알려져 있는 이란 . 그러나 차
도르를 쓴 사람은 대부분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고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알록달록한 히잡을 자신
의 취향 대로 쓰고 다녔다 . 이슬람 계율에 따르면 ‘
머리카락이 보여서는 안된다’고 했는데 , 대부분은
정수리 저 넘어서 히잡을 걸치고 선글라스를 쓰는
게 이란의 유행인 것 같았다 .

이란 여성들에게 차도르나 히잡에 대한 의견을 물
어보자 , 이들은 거침없이 ‘싫다’며 부정적인 의견
을 토해냈다 . 마숙메씨는 수영을 하거나 등산 할
때도 히잡을 써야 한다고 했다 . 마흐디의 두 번째
여자친구는 취미가 보디빌딩인데 보디빌딩을 할
때에도 히잡을 쓰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힘들다고
했다 . 마르잔은 해외 여행만 가면 히잡을 벗는단
다 .

우리 생각에는 종교적인 이유이고 , 어렸을 때부터
쓰는 거니까 별 거부감이 없는 줄 알았다 . 그러나
여성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정부만 아니면 이 히
잡을 벗어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

남자들도 여자들의 히잡에 부정적이었다 . 아름다
움은 보여져야 하고 , 여자들이 히잡을 벗는다면
남자들은 환영할 것이란다 .
무슬림 안으로
알록달록한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한 여성들 .
이들에게 히잡은 하나의 패션 도구다 .

하지만 이란에는 곳곳에 사복경찰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밖에서 히잡을 안 썼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
다 .

1960 년대 이란 여성들은 이미 미니스커트를 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멋쟁이 중의 하나였다 . 언제까
지 정부는 이런 톡톡 튀는 사람들을 가둬둘 수 있을
까 ?

하지만 이란에는 곳곳에 사복경찰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밖에서 히잡을 안 썼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
다 .

1960 년대 이란 여성들은 이미 미니스커트를 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멋쟁이 중의 하나였다 . 언제까
지 정부는 이런 톡톡 튀는 사람들을 가둬둘 수 있을
까 ?
무슬림 여성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도르를 쓰고 다
니며 ,
차도르를 벗으면 남자들이 싫어한다 ?
무슬림 안으로
차도르 체험

재미있는 것은 차도르를 쓴 우리를 본 이란 사람들
의 반응이었다 .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나중에는 우
리가 재밌는지 우리 사진을 찍고 막 웃었다 .
그런데 많은 여성들이 하는 말이 “이거 왜 썼니 ? 이거
별로야 .. 벗어 ! 딴 거 예쁜 거 많아”우리가 잘 몰라
서 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 여성들이 차도르
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차도르를 벗을 때 시원했지만 뭔가 아쉽기도 했다 .
이틀 쓴 내가 그럴진대 지금 불평하는 여성들도 자
유의 시대가 온다면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바로 히
잡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 아니면 그냥 익숙하게
살아갈까 ?

무슬림을 알고 싶어 중동으로 떠난 나조차도 터키
에서 차도르를 쓴 여인들을 봤을 때 느낀 감정은 위
압적이다 , 폭력적이다 , 답답하다 등이었다 .
그러나 내가 직접 써보고 다른 사람들을 보니 그렇
게 무섭지 않았다 . 역시 뭐든지 그 입장이 되어 봐
야 아는 것 같다 .
무슬림 여성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도르를 쓰고 다
니며 , 차도르를 벗으면 남자들이 싫어한다 ?
무슬림 안으로
우리의 기도 체험이 실패한 까닭

우리는 무슬림 하면 생각나는 것이 , 하루에 5 번
메카를 향해 기도드리는 것이다 . 우리 팀도 그들
과 함께 기도를 하려고 마음의 준비를 해갔다 .
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우리의 카우
치서퍼 사이드와 하메드들은 기도를 할 생각이 없
어보였다 . 시라즈보다 엄격하다는 이스파한에 가
도 마찬가지였다 .

자메 모스크에 갔을 때 , 남자들이 엎드려 있는 걸
보았다 . “ 아 ,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구나” 가까이
가보니 그들은 모스크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
다 .

또한 이스파한 토론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중 이슬
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 이란에도 교
회가 꽤 있고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한다 .

이렇듯 의외로 이란을 비롯한 중동 국가에서 종교
가 삶에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 오히려 매주 꼬박꼬박 교회에 가고
십일조를 드리고 성가대나 봉사활동을 다니는 우
리나라 기독교인들이 중동 사람들보다 훨씬 신실
하고 삶과 종교를 연관시키는 것 같다 .

중동에서는 운전중이라도 기도소리가 들리면
차에서 내려서 모두들 기도한다 ?
우리 생각보다 훨씬 세속적이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중동의 무슬림들
무슬림 안으로
라마단 , 금식하기 ?

우리가 요르단으로 들어갔을 때 , 막 이슬람 최고의 명
절 라마단이 시작되었다 . 라마단 때에는 이슬람 규율
에 따라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해가 떠 있는 동안 식사를 금지된다 .

우리도 요르단 친구 야잔과 함께 다니면서 해가 지기 전
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 그러나 더운 날씨로 떨어
진 입맛 그리고 끔찍했던 이란의 음식을 거부하면서 작
아진 위장 덕에 우리는 배가 많이 고프지도 , 힘들지도
않았다 . 다만 목이 마를 때에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
안 보는 곳에서 조심스럽게 마셨다 .

문제는 해가 지고 난 후였다 . 마침내 먹은 요르단 전통
음식 만사프는 정욱 오빠와 강심 언니의 속을 뒤집어 놓
았고 마지막 날 터키에서 두 사람은 끙끙 앓아야 했다 .
그리고 우리는 야잔의 집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밤을
새야 했는데 , 무슨 라마단 음식을 이렇게 많이 주는
지 .. 자정을 넘겨가며 기름지고 단 음식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 야잔 말에 의하면 밤에 많이 먹기 때문에 라마
단 때 살이 찌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

밖에서 라마단을 축하하는 폭죽이 터지고 우리는 그렇
게 배고픔은 커녕 배가 터질 듯한 기분으로 다음날을 맞
았다 .

라마단 때 모든 무슬림들은 강제로 굶어야
한다 ?
윗사진은 빨리 7 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야잔의 안타까운 표
정 . 우리를 데리고 하루종일 암만 관광을 다녔는데 물 한모
금 마시지 못했다 .
밑의 사진에서 마침내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생수를 두
통째 비우고 행복해하고 있다
중동 사람들 속으로
에미넴 , 축구 , 군대 , 페이스북

‘ 한국 드라마’ 열풍 외에 이란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이란
과 한국 간의 축구 경기였다 . 사실 한국과 이란은 아주 오
래 전부터 아시아의 라이벌이다 . 남자들이 축구에 열광하
는 것은 우리나라나 이란이나 똑같았다 .

사실 중동 사람들은 서양 문화 , 특히 미국 헐리우드 문화
를 싫어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 그러나 젊은이들은 미국
영화와 음악에 열광했다 . 사이드는 에미넴과 리한나를 즐
겨 들었다 .

이란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남자는 군대를 의무적으로
2 년 다녀와야 한다 . 군대 가기 싫어하는 건 우리나라와 똑
같았다 . 군대 안 가고 버틸 거라는 친구도 있었고 , 대학원
생이라 군대를 미룬 친구 , 그리고 집에 돈이 많아서 군대
를 뺀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까지 ..!

“ 실크로드”에서도 언급했지만 , 이란에서는 페이스북이 금
지다 . 그러나 실제로 아라뷰 팀이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이란인들 중 페이스북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페이스북은 기본이고 왓츠앱에 트위터까지 .. 세계와 소통
하고 트렌드를 좇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특성은 우리나라
와 똑같았다 . 다를 게 전혀 없다 !

중동사람들은 서구 문화를 덮어놓고 싫어한
다 ?

중동 젊은이들은 과격하다 ?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중동의 젊은이들
중동 사람들 속으로

중동여성들은 철저하게 억압 받는
다 ?
이혼한 여자도 잘 살 수 있다

요르단에서 만난 야잔의 어머니는 오래전 야잔의
아버지와 이혼하셨다 . 흔히 우리는 중동 사람들은
이혼이 어렵고 특히 이혼한 여자는 가난하거나 힘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

하지만 야잔의 어머니는 내가 만난 그 어떤 중년 여
성보다 품위 있고 유식하신 분이셨고 , 훌륭한 아
티스트셨다 . 아버지를 제외한 야잔의 가족은 고급
아파트에서 잘 살고 있었다 .
이란엔 ‘공대 아름이’가 없다

마숙메에겐 세명의 여자 형제와 한 명의 남자 형제
가 있었다 . 여자 형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큰언니
는 변호사 , 둘째 마숙메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 셋
째 동생은 엔지니어 , 넷째 동생은 광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다 . 시라즈에서 만난 마르잔의 직업도
엔지니어였다 .

테헤란 대학교 정치학과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
고 한다 . 이렇듯 이란에서 여자라고 못 가지는 직업
은 없다 .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이공계에 대해 여성
들이 느끼는 거부감이 적다 .
가정적인 중동 남자들

옛날 우리나라 남자들보다 더 가부장적이고 여자
를 억압할 거 같은 중동 남자들 . 우리는 이 편견을
깨기 위해 중동에 갔지만 중동 남자들의 다정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

우리의 세번째 서퍼 아크바르씨는 직접 차를 타오
거나 , 부엌에 들어가서 식사 후 뒷정리를 했다 .
또 처가에도 아주 잘하고 처형 , 그러니까 마숙메
의 언니와 동생들에게도 친근하게 대했다 . 이스파
한의 마흐디의 집에서도 우리에게 차를 가져다 주
시는 건 늘 마흐디의 아버지셨다 .

중동을 여행하면서 항상 보는 것이 아버지가 아이
를 안거나 데리고 있는 장면이다 . 아이들은 아버
지를 어려워하지도 아버지에게 혼나지 않는다 .

이런 면들을 봤을 때 중동 남자가 가부장적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편견이다 .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나라는 모르겠다 . 하지만 우리가 여행한 이란 , 요
르단 , 터키의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친절하고 , 아
이에게 다정하며 , 가정일도 하고 남자다울 땐 남
자다운 멋진 ‘상남자’였다 .
중동 사람들 속으로
중동 남자들은 다 가부장적이
다 ?
중동 사람들 속으로

중동여성들은 철저하게 억압 받는
다 ?
4 명의 부인이란 있을 수 없다

내가 중동에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나를 이렇게 놀
렸다 . “ 너 중동사람의 100 번째 부인 되는 거 아니
냐 ?”
그러나 이란에서 두 번째 부인을 둔다는 것은 도덕적
으로 잘못되고 타락한 행동이라는 관념이 이란 사람들
에게 깊이 박혀 있다 .

게다가 가정에서 여성의 힘이란 상상 이상으로 강하
다 . 요르단에서 만난 파디 아저씨는 국방부 요직에서
근무하셨음에도 불구하고 , 아내에게 차를 빼앗겨 가
끔씩 딸을 학원에 데려다주러 아내에게 차를 ‘빌리는’
수준이니 ..
적극적인 중동 여성들

중동 여행 책 가이드에 보면 “남성들은 중동 여성에게 말
걸지 마세요 . 여성들이 당혹스러워 하고 , 괜히 중동 남
성들과 시비가 붙을 수도 있습니다 .” 라고 나와 있다 .
확실히 오빠들은 중동 여성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 왜냐
면 그쪽에서 먼저 걸어왔기 때문이다 !

중동 여성들은 상상 이상으로 적극적이었다 . 우리를 보
자마자 달려와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 , ‘ 이란을 어떻게
생각하냐’ , ‘ 이란 여자 어떠냐’라고 물었다 .
이런 일이 여행하는 내내 있었다 .
중동 사람들 속으로
친절한 중동 사람들

앞에서 몇번이나 강조했지만 사람들이 정말 친
절하다 .
길을 물어보면 택시까지 꼭 태워서 보내준다 .
때로는 우리가 묻지 않아도 먼저 와서 가르쳐주
려고 하고 우리와 가까워지려 했다 .

오기 전에 사기를 당하거나 안좋은 상황에 몰릴
까봐 걱정한 것이 미안하거나 무색해질 만큼 중
동 사람들은 순수하고 다정했다 .
중동 사람들은 배타적이
다 ?
중동에 부는 한류바람
사실 아라뷰팀도 철저한 조사를 거치고 예상도 했지만 , 이
렇게 심할 (?) 줄은 몰랐다 . 바로 중동에서의 한국 인기
다 .
빅 히트를 친 ‘대장금’ ,’ 주몽’은 물론 그냥 한국 드라마 채널
자체가 자막만 입혀져 그대로 이란 / 요르단의 채널에 방
송되고 있었다 . 아예 MBC 가 그대로 자막을 달고 나오
는 채널도 있었다 . 중동 사람들은 그야말로 안방에서
한국 문화를 접하는 셈이다 .
요르단에서 만난 카우치서퍼 야잔의 여동생은 우리나라
에서 저조한 시청률로 급하게 막을 내렸던 “아가씨를 부
탁해”의 팬이었다 .
앞에서 언급한 아크바르씨네 두 처제들은 말할 것도 없
다 .
마흐디는 소녀시대의 Gee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즐거워했
고 , 마흐디의 여자친구 ( 중 하나 ) 는 동방신기의 엄청
난 팬으로 우리에게 동방신기에게 전해달라고 선물을
주었다 . 그녀는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지만 유튜
브에 가면 페르시아어 자막이 입혀진 동영상을 전부 구
할 수 있다고 한다 .
이렇듯 중동에 부는 한류바람을 경험한 우리는 한류 컨텐츠
가 전 세계에서 통한다는 사실을 느끼며 뿌듯함을 느끼
는 한편 , 이게 단지 우리나라의 연예 컨텐츠 수출이 아
니라 이란과 대한민국의 쌍방향 문화 교류의 활성화 그
리고 나아가 두 양국간 사이를 앞당겼으면 하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
동방신기 (TVXQ) 를 가방에
수놓은 마흐디의 여자친구
동방신기의 이란 포스터
날개가 인상적이다
중동에 부는 한류바람
우리나라 기업 브랜드의 힘도 실감했다 . 아무리 구석진
곳엘 가도 <SAMSUNG> 의 파란 로고가 붙여져 있
었다 .
그리고 이란 사람들이 우리 생각보다 한국에 대한 관심
이 지대하고 한국에 대한 이해가 다른 나라들 보다
깊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 많은 나라를 여행했
지만 보통 일본인이거나 중국인인줄 알고 , 한국이
라는 나라를 잘 모른다 .
하지만 이란인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음에 나오
는 말은 “ North or South?” 였다 . 그리고 우리나라
브랜드나 역사에 대한 것도 굉장히 잘 알고 있었다 .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 서구가 주입한 왜곡되
고 편향된 시선으로 이란을 북한과 같이 “악의 축”으
로 보고 있을 뿐이다 .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란
인들에게 무한한 친절을 받은 사람으로서 꼭 돌아가
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
이란 사람들에게
카우치 서핑이 가지는 의미
1970 년대에 찍혀진 이란 사진 . 미니스커트에 세련된 스타일을 뽐내는 여자들이 보인다 . 하지만 현재의 이란은 모든 여성과 심지어는
외국인까지도 히잡의 사용이 의무화 되어 있다 . 1979 년 이맘 호메이니 혁명 이후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이란 국민들의 일상 생활이 얼마
나 급격하게 변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
하지만 정치와 제도가 변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의식까지 같은 속도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 그래서인지 중년 이상의 어른들의 경우 생각
이 매우 열려있고 , 자유주의 시대를 살던 당시의 영향 탓인지 지금 세대의 젊은이들보다 다양한 문화에 더욱 친근감을 표현한다고 한
다 . 그런데 그런 부모님의 영향 아래에 자라난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더욱 다양한 세상을 만나고 소통할 기회가 없
는 상황이라고 한다 . 우리의 호스트였던 93 년생의 사이드 친구는 젊은 남성의 경우에 돈이 매우 많지 않은 이상 병역을 마치기 전에는
해외를 나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
페이스북 사용도 정부가 금지한 상황이고 , 언론이나 일상 생활이 검열 당하는 이란 사람들에게 카우치 서핑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
먼저 그들이 직접 해외를 나가지 않고도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게이트였고 , 내부적으로는 " 더 넓은 세계에 대한 관심 " 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동호회 역할을 하고 있었다 . 그래서인지 우리가 팀 소개를 하고 , 우리의 이란 방문 목적을 카우치 서핑 사
이트에 업로드했을 때 , 수많은 이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연락을 받았었다 .
더욱이 한류에 힘입어 다들 한국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 우리가 공항 이미그래이션을 지날 때 조차 직원분들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주몽 , 소서노를 외치곤 하셨다 . 그렇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공항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 그래서일까 우리들은 환한 마음으로 이란에서의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
이란에서 4 일 동안 함께 토론을 하고 여행을 하며 만난 Hamed, Saeed, Marjan, Kiyan, Terme, Asal, Nazanin, Amin, Mahdy 등의 친구들은
카우치 서핑을 통해 오래 전부터 이미 독일 , 미국 , 중국 , 영국 등 다양한 세계를 만나고 있었다 . 그래서인지 식견이 매우 넓고 , 다른 문화
도 관대하게 수용하는 바다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 서로의 삶에 대한 질문을 나누며 우리는 양국의 정치 , 제도적인 측면이 극적이다 싶으
리만큼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네의 삶은 매우 닮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더욱더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었다 . 이방인과 손님을 귀하고 반갑게 여
기는 관습 때문인지 , Hamed 같은 경우는 우리가 그를 방문하겠다고 했을 때 , 많은 이란 친구들이 우리를 함께 보고 , 놀고 싶다고 말했었고
그래서 우리는 이란에서 일종의 갱처럼 늘 10 여명의 무리와 함께 시끌벅적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 같은 지역 카우치 서핑 회원들이 여럿 모
여 우리를 반겨주고 , 함께 식사하고 , 여행하면서 우리와 그들뿐만 아니라 , 그들도 서로 소통하며 소소한 즐거움들을 누려가고 있었다 . 10
대 학생 , 60 세 할아버지 , 엔지니어 , 박사 , 대학생 , 인공지능 연구원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서로의 나이 , 배경을 초월하여 함께 떠
들고 웃는 모습이 ,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훈훈하게 만들었다 . 게다가 자연스럽게 남녀간의 교류도 오갈 수 있기에 사교의 장
노릇도 하고 있었다 .
이란 사람들에게
카우치 서핑이 가지는 의미
•
중동 지역은 역사적으로 주요 강대국 사이에서 오랜 각축전장이 되어 왔다 . 그리스 ,
로마 , 페르시아 , 아랍 , 포르투갈 , 터키 , 영국 ,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
와 문화권이 이곳에서 첨예한 대립을 하기도 했었다 . 특히 중동의 페르시아만은 아시아 ,
아프리카 , 유럽 3 대륙과 대서양 , 인도양 , 태평양 등 3 대양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해왔다 . 제국주의 시대에는 무역 및 교통의 중심지로 , 1-2 차 세계 대전시에는 전쟁물자
보급로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로 , 그리고 오늘날은 세계 경제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석
유 수송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 따라서 페르시아만은 강국들의 이해 관심 지역으로 전
략적 가치가 높은 위험지대이다 .
•
세계은행에 올려진 2009 년 pewforum 전 세계 무슬림 인구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2009
년 전세계 무슬림 인구는 15 억 7 천만 명으로 전 세계 200 여 국가에 퍼져있으며 전 세계
인구의 23% 를 차지하고 있다 .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무슬림 인구의 60% 는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고 , 20% 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거주하고 있다 . 2011 년엔 향후 20 년 동안
무슬림의 인구가 비무슬림에 비해 두배 정도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 CIA
factbook 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성장률은 연간 1.12% 인 것에 반해 무슬림이 대다수인 국
가들의 인구 성장률은 1.8% 이다 . 따라서 2030 년엔 전 세계 인구의 26.4% 이 무슬림이
된다는 전망이다 . 최근 중앙 및 동부 유럽으로의 무슬림 이민 인구 증가 및 유럽 내에 정
착한 무슬림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 프랑스 내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 논란 같이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상이한 문화 차이로 인해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
•
그 동안 폐쇄적인 문화와 정권을 유지해 왔던 중동에도 아랍의 봄을 비롯한 변화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움직임 , 스마트몹 같은 대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 그와 동시에 중동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앞으로 카페베네를 비롯한 더 많
은 국내 기업이 이곳에 진출하고 있고 , 외국의 관심 또한 증대되고 있다 . 알면 이해하는
것이고 , 모르면 오해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중동에 대한 이해의 결여는 앞으로 수많은 오
해와 갈등을 낳을 것이다 . 2030 년 사회의 주역이 될 우리 모두 중동에 더욱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
중동의 가치
및 중요성
중동 여성 인권 향상 움직임
지브릴의 중간보고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쉽다’라는 감정밖에 들지 않는다 .
돌이켜보면 , 하나도 쉽게 풀린 일이 없었다 . 우리가 준비했던 활동을 위해서도 , 이란 입국이 가장 중요한 문
제였는데 , 일이 잘 풀렸기에 망정이지 , 이란의 시라즈 공항에서 무턱대고 앉아있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떨린다 . 어디 그뿐이랴 , 택시기사들은 어찌나 운전을 험하게 하고 , 중동 남성들은 왜 이렇게 무서운지 , 생
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한 데다가 , 우리 팀원 4 명이 땀 뻘뻘 흘
리고 나서 좁디 좁은 방에서 부대껴서 잘 땐 , 정말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밖엔 없었다 . 열악한 환
경에서 벗어나서 겨우 숨 돌릴 만 하면 , 몸이 아팠고 , 내가 괜찮아지면 친구들 상태가 나빠지고 , 정말 어려
웠다 .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쉬움’이라는 것은 , 그곳에서 우리가 했던 모든 일들이 가치가 있었음을 반증
하지 않나 싶다 .
게다가 사람에 대한 그리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건만 , 이젠 외국인 친구들
의 웃음짓는 표정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 사이드 , 마흐디 , 무함마드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아쉬움’이라는 감
정의 제공자라고 생각한다 .
그리고 함께한 아라뷰 팀원 , 정욱 , 강심 , 소현 모두 최고의 팀원이었다 . 친한 친구와 짧게 여행을 다녀와
도 한 번은 싸우게 되는데 , 우리 아라뷰 팀은 13 박 14 일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단 한번도 싸
우지 않고 서로를 보조하면서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가장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
1 년 전에는 다들 얼굴도 모른 채 각자 갈 길을 걸었을 사람들이 ,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라는 기회를 통해 의기
투합하여 이렇게 무사히 활동을 끝마쳤다는 것이 , 정말 신기하다 .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에 , 소감이 아닌 ‘중간보고’ 정도로 해 두겠다 .
라일라의
후기
•
한 명의 친구를 사귀는 일은 하나의 세계가 걸어들어 오는 일이라고 한다 . 13 박 14 일이라는 짧은 여정 동안 우리는 3 개국을 돌았지
만 , 우리가 만난 세계는 20 여개가 넘는다 . 그 세계들이 모두 각양각색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 그 환한 빛 덕분에 우리는 더
욱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 공간은 사람이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 유구한 역사와 대국의 기질을 가지
고 있던 페르시아의 후예들이 만든 이란이라는 공간은 우리에게도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 생동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느긋하게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 기다려주고 , 배려해주는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예뻐보였는지 모른다 . 어디를 가지 않더라도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통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 성경에서 다양한 위인들이 거쳐간 발자취를 비롯해 로마인 , 오스만 투르
크족 등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요르단은 , 여전히 다양한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암만에서 홈스테이했던 Yazan
네 어머니께서는 요르단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분쟁 국가의 피난민들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고 그로인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고 하셨다 . 하지만 피난민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
르겠다며 고뇌하고 계셨다 .
•
우리가 그 곳 땅을 밟기 전에 요르단은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을 비롯한 중동 갈등에 있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국가였고 , 이
란의 경우 시아파 및 정교 일치 사회로 인해 때로 극단적인 행보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는 국가에 불과했다 . 우리는 더 넓은 세계를
만나기 위해 뉴스와 미디어를 접하지만 , 미디어라는 프레임은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 특정한 사건을 전달하는 현지 특파원
조차도 사건의 윤곽을 알지 못하더라도 기존의 틀에 맞춰 사건을 재구성해 보도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 그 동안 우리는 코끼리의 가장
못난 부분만을 돋보기 안경을 쓰고 보는 것처럼 중동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입국 전까지도 이란과 터키에서 발생한 사
건 , 사고 보도 등으로 인해 걱정을 많이 했었지다 . 그러나 우리가 몸소 느껴본 중동은 여유가 넘치고 , 따뜻한 정과 배려가 오가는 휴
머니스트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 어쩌면 내가 종종 한국에서 꿈꿨던 유토피아가 그 곳에 숨어있진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가 없었다면 , 용기를 내서 분쟁과 테러로 점철된 것처럼 보이는 중동이란 나라에 덥썩 뛰어들 수 없었을 것이다 .
이제 중동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중동이란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준 동원육영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린
다 . 이 꽃을 잘 가꾸기 위해 나의 열정과 재능을 쏟고 ,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2030 년 무슬림이 전 세계의
26.4% 가 되는 그날 나는 중동과 한국의 교량 역할을 하면서 , 중동과의 첫 만남 , 뜨거웠던 지난 7 월을 그리고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
러를 기억할 것이다 .
여행을 마치며 by 무함마드
여행을 마치며 ..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 주간의 여행이 막을 내렸다 . 짧은 준비 과정 속에서 여러 시행 착오를 겪었고 출발하는 그 순간까지 걱정
을 많이 했던 여행이었지만 , 우리 팀원들 모두의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을 끝마칠 수 있었다 .
우리가 선택했고 여행했던 중동은 아직 우리나라의 많은 여행가들에게는 낯선 곳이다 . 특히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점을 절실하게
체감 할 수 있었다 . 중동에 제대로 된 여행 책 하나 없는 상황이었고 정보는 오직 인터넷을 통해서 , 그것도 매우 제한적으로만 얻
을 수 있었다 . 또한 중동을 간다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말할 때 마다 중동이 절대 위험한 곳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야만 했다 .
하지만 중동이 절대 위험하지 않은 곳이라고 설명 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
에서 2 주 동안 버티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
그러나 이 모든 걱정과 불안을 뒤로하고 시작한 여행은 우리들에게 잊지 못 할 기억들을 선물해 주었다 . 우리의 여행은 결코 편한
여행은 아니었다 . 시작부터 비자 문제 때문에 여러 문제가 생겼고 , 이란의 살인적인 더위와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들 때문에 음식
조차 마음껏 먹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 또한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고 ,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잠도
제대로 된 장소에서 잔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강행군을 펼쳤다 .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즐거웠던 여행이었다 . 우리가 만났던 한 사람 한사람 모두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들을 남겨주었다 . 우
리는 그들에게 낯선 이방인이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 우리가 그들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고 잘 모르는 만큼 그
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 그들은 우리에 대해 과분할 만큼 많은 관심과 호의를 배풀어 주었다 . 우리의 여행은 사람들
로 가득 차 있었다 .
여행은 항상 무언가를 남긴다 . 그리고 이번 중동 여행 역시 나에게 많은 것들을 남겨 주었다 .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 그리고 만
남을 통해 얻은 추억들과 새로운 생각들은 나를 한 단계 성장하게 만들어 주었다 .
비록 우리의 짧았던 여행은 끝이 났지만 , 2 주 동안의 좋았던 기억들과 깨달음을 통해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것 같다 . 이제부터가 진짜 여행의 시작이란 마음가짐으로 한국에서 내가 여행을 통해 얻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중동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우리나라를 변화시키는 그 시작점이 바로 이번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더 많은 사람
들이 중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서로가 서로를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파티마의 여행노트
내가 히잡쓰는 걸 어려워하는 걸 지나가다 보고 도와준 여성 .
중동 사람들의 인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사실 가기 전까지 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다 .
피랍 당하면 어쩌지 (?) 하는 무거운 고민부터 피부가 엄청 탈텐데
어떻게 되돌려야 하나는 고민까지 ..
그리고 내가 안전하다고 부모님 , 친구들 , 그리고 동원 사람들까
지 설득했지만 과연 자신이 없었다 . 나 또한 책이나 블로그에서
읽은 것이 다였으니까 . 사실 나 또한 피상적인 정보만을 접한 채
‘ 중동은 안전하다니까 ? 그리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거 다 편견
이에요’ 라고 외치면서 비행기를 탔지만 , 나 자신도 편견과 두려
움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 중동은 ‘정말 안전
하고’ , ‘ 정말 생각과는 달랐다 .’
짧다면 짧은 내 22 년 인생은 이 13 박 14 일 전과 후로 나뉜다 .
이 기간 동안 나는 많이 받았다 . 세상을 넓게 보는 눈과 , 남들이
가지 않은 곳을 간 담대함 , 중동 사람들로 부터 전해 받은 따뜻한
마음 , 앞으로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결심까지 ..
오기 전까지 미래에 대해서 많이 방황한 나지만 이 여행을 통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는 생각이 든다 .
이 자리를 빌어
나에게 이렇게 소중한 기회를 준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
그리고 못난 동생을 데리고 여행하느라 너무너무 고생한
민규오빠 , 정욱오빠 , 강심언니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전한
다 .
예산

Weitere ähnliche Inhalte

Andere mochten auch

공유허브의 날 - 위시켓 강수훈
공유허브의 날 - 위시켓 강수훈공유허브의 날 - 위시켓 강수훈
공유허브의 날 - 위시켓 강수훈Creative Commons Korea
 
어바웃 온오프 프로모션
어바웃 온오프 프로모션어바웃 온오프 프로모션
어바웃 온오프 프로모션choiyumi
 
아모레퍼시픽 브랜드챌린지_마몽드_모레도아모레
아모레퍼시픽 브랜드챌린지_마몽드_모레도아모레아모레퍼시픽 브랜드챌린지_마몽드_모레도아모레
아모레퍼시픽 브랜드챌린지_마몽드_모레도아모레Hyun Sil Lee
 
사진교육프로그램 4강
사진교육프로그램 4강사진교육프로그램 4강
사진교육프로그램 4강digitone
 
세바시 15분 김우석 연세대 경영학과 - 재미없는 세상에 색을 입히다
세바시 15분 김우석 연세대 경영학과 - 재미없는 세상에 색을 입히다세바시 15분 김우석 연세대 경영학과 - 재미없는 세상에 색을 입히다
세바시 15분 김우석 연세대 경영학과 - 재미없는 세상에 색을 입히다cbs15min
 
착한문서만들기
착한문서만들기착한문서만들기
착한문서만들기sangyong lee
 
저스트고 제안서 20120106
저스트고 제안서 20120106저스트고 제안서 20120106
저스트고 제안서 20120106lemonmail
 
아모레퍼시픽 Mass Cosmetic Creator 3조 7월 기획서
아모레퍼시픽 Mass Cosmetic Creator 3조 7월 기획서아모레퍼시픽 Mass Cosmetic Creator 3조 7월 기획서
아모레퍼시픽 Mass Cosmetic Creator 3조 7월 기획서mkapi
 
이브자리 광고캠페인기획 ppt
이브자리 광고캠페인기획 ppt이브자리 광고캠페인기획 ppt
이브자리 광고캠페인기획 pptHyun Sil Lee
 
아모레퍼시픽 MCC_8월 기획안 1조 해피바스데이
아모레퍼시픽 MCC_8월 기획안 1조 해피바스데이아모레퍼시픽 MCC_8월 기획안 1조 해피바스데이
아모레퍼시픽 MCC_8월 기획안 1조 해피바스데이mkapi
 
Exploring the Food of Arab Culture
Exploring the Food of Arab CultureExploring the Food of Arab Culture
Exploring the Food of Arab Culturecocola23
 
[샘플]행사제안서
[샘플]행사제안서[샘플]행사제안서
[샘플]행사제안서Seongbok Choi
 
도너도넛 캠페인 제안서
도너도넛 캠페인 제안서도너도넛 캠페인 제안서
도너도넛 캠페인 제안서희영 박
 
월드비전 자가발전 제품 제안서
월드비전 자가발전 제품 제안서월드비전 자가발전 제품 제안서
월드비전 자가발전 제품 제안서jayeonenergy
 
Sewing for the soil living product
Sewing for the soil living productSewing for the soil living product
Sewing for the soil living productecow0715
 
맥도날드 소셜미디어 캠페인 제안_ 초안
맥도날드 소셜미디어 캠페인 제안_ 초안맥도날드 소셜미디어 캠페인 제안_ 초안
맥도날드 소셜미디어 캠페인 제안_ 초안Sung Eun's Project at SMWU
 
초코파이정이벤트기획안(최종)
초코파이정이벤트기획안(최종)초코파이정이벤트기획안(최종)
초코파이정이벤트기획안(최종)Yeonwoo Na
 
숙명여대 브랜드커뮤니케이션전략수업 과제 브랜드북 : 마이크임팩트
숙명여대 브랜드커뮤니케이션전략수업 과제 브랜드북 : 마이크임팩트숙명여대 브랜드커뮤니케이션전략수업 과제 브랜드북 : 마이크임팩트
숙명여대 브랜드커뮤니케이션전략수업 과제 브랜드북 : 마이크임팩트Hyun Sil Lee
 
Converse 리서치&아이디어
Converse 리서치&아이디어Converse 리서치&아이디어
Converse 리서치&아이디어Minjeong Lee
 
Hite 이벤트 기획안
Hite 이벤트 기획안Hite 이벤트 기획안
Hite 이벤트 기획안boktaeya000
 

Andere mochten auch (20)

공유허브의 날 - 위시켓 강수훈
공유허브의 날 - 위시켓 강수훈공유허브의 날 - 위시켓 강수훈
공유허브의 날 - 위시켓 강수훈
 
어바웃 온오프 프로모션
어바웃 온오프 프로모션어바웃 온오프 프로모션
어바웃 온오프 프로모션
 
아모레퍼시픽 브랜드챌린지_마몽드_모레도아모레
아모레퍼시픽 브랜드챌린지_마몽드_모레도아모레아모레퍼시픽 브랜드챌린지_마몽드_모레도아모레
아모레퍼시픽 브랜드챌린지_마몽드_모레도아모레
 
사진교육프로그램 4강
사진교육프로그램 4강사진교육프로그램 4강
사진교육프로그램 4강
 
세바시 15분 김우석 연세대 경영학과 - 재미없는 세상에 색을 입히다
세바시 15분 김우석 연세대 경영학과 - 재미없는 세상에 색을 입히다세바시 15분 김우석 연세대 경영학과 - 재미없는 세상에 색을 입히다
세바시 15분 김우석 연세대 경영학과 - 재미없는 세상에 색을 입히다
 
착한문서만들기
착한문서만들기착한문서만들기
착한문서만들기
 
저스트고 제안서 20120106
저스트고 제안서 20120106저스트고 제안서 20120106
저스트고 제안서 20120106
 
아모레퍼시픽 Mass Cosmetic Creator 3조 7월 기획서
아모레퍼시픽 Mass Cosmetic Creator 3조 7월 기획서아모레퍼시픽 Mass Cosmetic Creator 3조 7월 기획서
아모레퍼시픽 Mass Cosmetic Creator 3조 7월 기획서
 
이브자리 광고캠페인기획 ppt
이브자리 광고캠페인기획 ppt이브자리 광고캠페인기획 ppt
이브자리 광고캠페인기획 ppt
 
아모레퍼시픽 MCC_8월 기획안 1조 해피바스데이
아모레퍼시픽 MCC_8월 기획안 1조 해피바스데이아모레퍼시픽 MCC_8월 기획안 1조 해피바스데이
아모레퍼시픽 MCC_8월 기획안 1조 해피바스데이
 
Exploring the Food of Arab Culture
Exploring the Food of Arab CultureExploring the Food of Arab Culture
Exploring the Food of Arab Culture
 
[샘플]행사제안서
[샘플]행사제안서[샘플]행사제안서
[샘플]행사제안서
 
도너도넛 캠페인 제안서
도너도넛 캠페인 제안서도너도넛 캠페인 제안서
도너도넛 캠페인 제안서
 
월드비전 자가발전 제품 제안서
월드비전 자가발전 제품 제안서월드비전 자가발전 제품 제안서
월드비전 자가발전 제품 제안서
 
Sewing for the soil living product
Sewing for the soil living productSewing for the soil living product
Sewing for the soil living product
 
맥도날드 소셜미디어 캠페인 제안_ 초안
맥도날드 소셜미디어 캠페인 제안_ 초안맥도날드 소셜미디어 캠페인 제안_ 초안
맥도날드 소셜미디어 캠페인 제안_ 초안
 
초코파이정이벤트기획안(최종)
초코파이정이벤트기획안(최종)초코파이정이벤트기획안(최종)
초코파이정이벤트기획안(최종)
 
숙명여대 브랜드커뮤니케이션전략수업 과제 브랜드북 : 마이크임팩트
숙명여대 브랜드커뮤니케이션전략수업 과제 브랜드북 : 마이크임팩트숙명여대 브랜드커뮤니케이션전략수업 과제 브랜드북 : 마이크임팩트
숙명여대 브랜드커뮤니케이션전략수업 과제 브랜드북 : 마이크임팩트
 
Converse 리서치&아이디어
Converse 리서치&아이디어Converse 리서치&아이디어
Converse 리서치&아이디어
 
Hite 이벤트 기획안
Hite 이벤트 기획안Hite 이벤트 기획안
Hite 이벤트 기획안
 

Mehr von osheakorea

에코레인저 귀국보고서
에코레인저 귀국보고서에코레인저 귀국보고서
에코레인저 귀국보고서osheakorea
 
싱글벙글 귀국보고서
싱글벙글 귀국보고서싱글벙글 귀국보고서
싱글벙글 귀국보고서osheakorea
 
스타트업4.0 귀국보고서
스타트업4.0 귀국보고서스타트업4.0 귀국보고서
스타트업4.0 귀국보고서osheakorea
 
생쥐의꿈 귀국보고서
생쥐의꿈 귀국보고서생쥐의꿈 귀국보고서
생쥐의꿈 귀국보고서osheakorea
 
민들레 귀국보고서
민들레 귀국보고서민들레 귀국보고서
민들레 귀국보고서osheakorea
 
드림빌더 귀국보고서
드림빌더 귀국보고서드림빌더 귀국보고서
드림빌더 귀국보고서osheakorea
 
골목수비대 귀국보고서
골목수비대 귀국보고서골목수비대 귀국보고서
골목수비대 귀국보고서osheakorea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Team.유기농 귀국보고서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osheakorea
 
Marine blues 귀국보고서
Marine blues 귀국보고서Marine blues 귀국보고서
Marine blues 귀국보고서osheakorea
 
(주)Safe3귀국보고서
(주)Safe3귀국보고서(주)Safe3귀국보고서
(주)Safe3귀국보고서osheakorea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Team.유기농 귀국보고서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osheakorea
 
오세아코리아 회사소개서 Dpt-1
오세아코리아 회사소개서 Dpt-1오세아코리아 회사소개서 Dpt-1
오세아코리아 회사소개서 Dpt-1osheakorea
 
O'Shea Korea Introduction for Internship Program
O'Shea Korea Introduction for Internship ProgramO'Shea Korea Introduction for Internship Program
O'Shea Korea Introduction for Internship Programosheakorea
 

Mehr von osheakorea (13)

에코레인저 귀국보고서
에코레인저 귀국보고서에코레인저 귀국보고서
에코레인저 귀국보고서
 
싱글벙글 귀국보고서
싱글벙글 귀국보고서싱글벙글 귀국보고서
싱글벙글 귀국보고서
 
스타트업4.0 귀국보고서
스타트업4.0 귀국보고서스타트업4.0 귀국보고서
스타트업4.0 귀국보고서
 
생쥐의꿈 귀국보고서
생쥐의꿈 귀국보고서생쥐의꿈 귀국보고서
생쥐의꿈 귀국보고서
 
민들레 귀국보고서
민들레 귀국보고서민들레 귀국보고서
민들레 귀국보고서
 
드림빌더 귀국보고서
드림빌더 귀국보고서드림빌더 귀국보고서
드림빌더 귀국보고서
 
골목수비대 귀국보고서
골목수비대 귀국보고서골목수비대 귀국보고서
골목수비대 귀국보고서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Team.유기농 귀국보고서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
 
Marine blues 귀국보고서
Marine blues 귀국보고서Marine blues 귀국보고서
Marine blues 귀국보고서
 
(주)Safe3귀국보고서
(주)Safe3귀국보고서(주)Safe3귀국보고서
(주)Safe3귀국보고서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Team.유기농 귀국보고서
Team.유기농 귀국보고서
 
오세아코리아 회사소개서 Dpt-1
오세아코리아 회사소개서 Dpt-1오세아코리아 회사소개서 Dpt-1
오세아코리아 회사소개서 Dpt-1
 
O'Shea Korea Introduction for Internship Program
O'Shea Korea Introduction for Internship ProgramO'Shea Korea Introduction for Internship Program
O'Shea Korea Introduction for Internship Program
 

아라뷰 최종보고서

  • 1. I LOVE ARAB ARAB VIEW 아라뷰 I LOVE ARAB ARAB VIEW 아라뷰
  • 2. 기획 의도 • “ 기자로서 나는 하나의 상황에 대해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다 . 미디어는 그 중 하나만 고를 수 있는데 , 주로 통념을 확인 해주는 이야기가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 중동 지역을 보도하는 미디어의 문제점들을 낱낱이 파헤친 전직 중동 특파원인 요리스 루옌데이크는 웰컴투 뉴스 비즈니스에서 그 동안 중동에 대한 보도가 얼마나 편파적일 수밖에 없었는지 이야기한다 . • 석유 , 중동 건설에 종사하는 비즈니스맨 혹은 중동 전문가가 아닌 대한민국 일반 국민인 우리는 그 동안 중동을 제대로 들여다 볼 기회가 없었다 . 우리가 중동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TV 나 미디어를 통해 전달받은 자극적이고 편향적인 정보를 통해 만들어 진 것이었다 . •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들었던 새내기 시절 “이슬람 사상의 이해” , “ 중동의 정치” 수업은 한마디로 문화 충격이었다 . 우리 가 흔히 무슬림하면 떠올렸던 알카에다와 같은 무장 테러 집단들은 사실 이슬람 세계에서도 내놓은 자식들이었다 . 일부의 극단 적 무슬림들이 그들의 특정한 목적 달성을 위하여 행하는 테러를 지하드 ( 성스러운 전쟁 ) 라는 이슬람 용어로 칭하였지만 , 이 슬람 세계에서 테러 행위를 지하드로 보는 경우는 없었다 . 오히려 그들은 이슬람 법인 샤리아법을 토대로 보면 범죄자라고 한 다 . 무슬림들의 경전인 코란 속에는 “종교에는 강제가 없다” , “ 하나님은 침략하는 자를 사랑하지 않으신다” , “ 이 세상에 혼란 을 일으키지 말지니라” , “ 우리는 다만 옳은 일을 도모하나이다” 는 구절들을 포함해 여느 세계 종교처럼 평화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가르침들을 담고 있다 . 이 수업을 통해 새내기 시절부터 “알면 이해하는 것이고 모르면 오해한다”는 말처럼 그 동안 우리의 무지로 인해 얼마나 중동을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고 , 중동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 • 중동은 9 세기에서 13 세기 , 유럽이 중세의 암흑기이던 시절 연금술 , 의학 등을 비롯 세계 최고의 문명을 이룩하였고 , 이 집트 , 메소포타미아 , 오리엔트 등 고대 인류 문명의 발상지이자 유대교 , 기독교 , 이슬람교라는 일신교가 탄생한 곳이다 . 다양한 문화와 문명들이 태동되었고 , 아직도 이러한 문화가 공존하고 다양한 민족들이 공생하는 중동 . 우리는 왜 그 동안 이 러한 중동에 대한 기초적 배경 지식이 없이 폭력적이고 , 폐쇄적인 지역이라는 이미지 아래에 그들과의 소통을 중단 , 아니 시 도조차 해보지 않고 살아왔던 것일까 ? 3
  • 3. • 중동 지역은 역사적으로 주요 강대국 사이에서 오랜 각축전장이 되어 왔다 . 그리스 , 로마 , 페르시아 , 아랍 , 포르투갈 , 터키 , 영국 ,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 와 문화권이 이곳에서 첨예한 대립을 하기도 했었다 . 특히 중동의 페르시아만은 아시아 , 아프리카 , 유럽 3 대륙과 대서양 , 인도양 , 태평양 등 3 대양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해왔다 . 제국주의 시대에는 무역 및 교통의 중심지로 , 1-2 차 세계 대전시에는 전쟁물자 보급로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로 , 그리고 오늘날은 세계 경제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석 유 수송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 따라서 페르시아만은 강국들의 이해 관심 지역으로 전 략적 가치가 높은 위험지대이다 . • 세계은행에 올려진 2009 년 pewforum 전 세계 무슬림 인구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2009 년 전세계 무슬림 인구는 15 억 7 천만 명으로 전 세계 200 여 국가에 퍼져있으며 전 세계 인구의 23% 를 차지하고 있다 .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무슬림 인구의 60% 는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고 , 20% 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거주하고 있다 . 2011 년엔 향후 20 년 동안 무슬림의 인구가 비무슬림에 비해 두배 정도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 CIA factbook 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성장률은 연간 1.12% 인 것에 반해 무슬림이 대다수인 국 가들의 인구 성장률은 1.8% 이다 . 따라서 2030 년엔 전 세계 인구의 26.4% 이 무슬림이 된다는 전망이다 . 최근 중앙 및 동부 유럽으로의 무슬림 이민 인구 증가 및 유럽 내에 정 착한 무슬림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 프랑스 내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 논란 같이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상이한 문화 차이로 인해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 • 그 동안 폐쇄적인 문화와 정권을 유지해 왔던 중동에도 아랍의 봄을 비롯한 변화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움직임 , 스마트몹 같은 대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 그와 동시에 중동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앞으로 카페베네를 비롯한 더 많 은 국내 기업이 이곳에 진출하고 있고 , 외국의 관심 또한 증대되고 있다 . 알면 이해하는 것이고 , 모르면 오해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중동에 대한 이해의 결여는 앞으로 수많은 오 해와 갈등을 낳을 것이다 . 2030 년 사회의 주역이 될 우리 모두 중동에 더욱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 중동의 가치 및 중요성 중동 여성 인권 향상 움직임
  • 4. • 이것은 단지 우리의 무관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 그 동안 한국 사람들은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중동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유대 - 미국 중심의 언론과 정보를 통해서 아랍과 중동을 인식해 왔다 . 현재는 거의 폐기 된 이론이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인용되었 던 새뮤얼 헌팅턴 (Samuel P. Huntington) 의「문명의 충돌 (The Clash of Civilization) 」엔 이슬람과 전투성간의 연관성 , 이슬람권 과 비이슬람권의 분쟁비화 가능성 등 ‘이슬람의 호전성’이 그려져 있었고 그로 인해 이슬람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심기도 했다 . 12 명의 이슬 람 전문 한국 학자들은 공저한 “이슬람”이라는 책을 통해 “ ( 한국은 ) 건국 이후 오늘날까지 한 번도 우리의 입장에서 제대로 이슬람과 이슬람 사회를 들여다볼 기회의 창을 가져보지 못했다”고 기술하였다 . 한국의 언론들은 전혀 다른 아랍 , 이슬람 , 중동의 개념을 혼용하여 사람들 의 그릇된 인식을 만들기도 하였다 . • 지난 학기 , 우리 팀원 중 두 명은 2 억 5 천명의 무슬림이 거주하는 세계 최대의 이슬람 국가인 인도네시아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마치고 돌아 왔다 . 인도네시아에 대한 접근성과 거리감은 그리 크지 않았고 무엇보다 학교적인 차원에서 체계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비교적 쉽게 그곳에 서 생활하며 문화적 상대주의를 몸소 배울 수 있었다 . 새내기 시절부터 이슬람 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왔던 덕분에 우리는 현지 무슬림들과도 금방 친구가 되었다 . 그들과 함께 30 도를 웃도는 인도네시아 곳곳을 27 시간 에어컨도 나오지 않는 허름한 버스를 타고 여행 도 해보고 , 7 시간 기차를 타고 오지도 방문해보고 , 강경 무슬림들이 많다는 수마트라의 잠비도 방문하여 그들의 문화와 생활양식을 직접 체험해 보았다 . 그리고 “알지 못하면 사랑하지 못한다 .” 는 인도네시아 속담처럼 그곳에서 인도네시아를 알게 되고 , 그곳의 숨은 매력들을 발견하며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 그 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하고 ,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열린 마음을 가지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 어디든 우리가 가보지 못할 곳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렇게 우리는 중동 방문의 꿈 을 가슴에 품기 시작했다 . 4
  • 5. • 세계화를 선도하고 있는 대한민국 . 하지만 여전히 한국인에게 중동의 진입 장벽은 높기만 하다 . 대 형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중동 , 아랍 관련 책을 살 펴보아도 보통 학술적인 서적들이 대부분이다 . 그 러한 연구도 연구 대상 국가가 특정 국가에 한정되 어 있고 , 연구 분야가 경제적인 분야에 편중되어 있다 . 경제 연구 또한 서구 경제학에 의존하여 통 계 수치를 비교 , 분석하는 방법에 중심을 두고 있 다 . 일본의 경우 , 인문학을 중심으로 학자 , 여 행가 , 요리사 , 방송극 해설위원 , 신문기자 , 기업가 , 의사 등의 중동지역 전문가들도 각종 학 회에 참석하며 통합적인 중동 지역 연구를 해나가고 있다고 한다 . 이에 반해 한국의 중동 연구는 언어 나 사회과학 , 특히 정치학 위주의 학술적 성격이 강하다고 한다 . 보통 테러와 중동 건설 , 오일 관5
  • 6. 일정   2 인천국제공항 출발 3 터키 경유 4 이란 시라즈 : Hamed, Akbar, Masummeh, Sara, Saeed, Terme, Kiyan, 5 Asal, Marjan, Nazanin 등 시라즈 친구들과의 여행 및 홈스테이 6 이스파한 : Mahdy, Amin, Eike, Abiyana, Nayan, Kom, Asiye, Min, 7 Shadi 등 이스파한 친구들과 여행 , 토론 및 홈스테이 8 터키 경유 9 요르단 마다바 : 이 지역 터줏대감이자 기독교 신자인 Fadi 아저씨 가족과의 만남 10 페트라 11 와디럼 : 베두인들과 유목민 체험 12 암만 : Yazan 가족과의 만남 및 홈스테이 13 14 터키 경유 6
  • 7. 사전 준비 • 신양섭 교수님과의 만남 • 아라뷰팀이 대학 새내기 때 중동 세계에 눈을 뜨게 만들어 주신 중동 지역의 대가 신양섭 교수님 . 아라뷰팀은 동원 글로벌 익스플 로러 계획서를 작성하기 전부터 교수님과의 면담을 통해 일정 및 현지 실생활에 대한 정보와 대학생 눈높이에 맞는 유익한 경험들이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출국 전에도 여러 번 교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사전 준비를 하였다 . 6 월 1 일부터 시작 된 터키 반정부 시위 문제를 비롯해 이집트의 시위 격화 , 중동 지역 외국인 관광객의 납치 및 사망 소식이 들려오면서 치안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 우리가 방문하고자 하는 지역들의 치안 상태 및 상황들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그쪽 문화권에 서 주의해야 할 상황들을 다시금 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 • 최지은 단장님과의 만남 •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 오리엔테이션 당일 우리 팀에게 단비 같은 소식이 있었다 . 최지은 응원 단장님께서 중동 지역을 오랫동안 여행하셨기에 우리 팀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으시다는 것이었다 . 전달받은 이메일 주소로 연락을 드리고 , 약속을 잡고 최지은 응원 단장님을 뵐 수 있었다 . 단장님께서는 1 개월 동안 여행할 수 있는 국가 단 하나를 고르라고 물어본다면 , 주저 없이 이란을 택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세계 여행을 마치신 단장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데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 최지은 단장님과 이야기하던 중 우리 팀의 일정이 너무 빡빡하고 , 소기의 목적인 현지 사람들과의 일상을 공유하면서 중동에 대한 편견을 깨기는 상당히 어려울 것이라고 느꼈다 . 그래서 가능하면 비행기의 일정을 바꾸고 , 이란에서 대부분의 일정을 보내려고 시도하였지만 , 비행기 일정 변경의 수수료가 개인당 70 만원 가까이 되었기 때문에 무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 대신 이란에서 최대한 많은 ,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하여 사전 연락을 취해 하루 평균 3 개의 약속을 잡아 두었다 .  7
  • 8. 사전 준비 • 카우치서핑 연락 • 위키피디아에 보면 카우치 서핑은 여행하고자 하는 곳의 현지인의 도움을 받아 무료 숙박 및 운이 좋다면 가이드까지 받을 수 있는 여행자들을 위한 비영리 커뮤니티라고 나온다 . 현지 카우치서핑 회원은 231 개국 6 만 4 천여 개 도시의 133 만 명에 달한다 . 우리 팀원도 기존에 카우치서핑에 대해 알고 있긴 했다 . 하지만 언론을 통해 카우치서핑에 대한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기사를 봤던 인상이 너무 깊었던 탓인지 실제로 이것을 활용해볼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했다 . 하지만 최지은 응원단장님의 경험담들을 들으며 카우치서핑의 참 가치를 알 수 있었다 . 이란은 외부인이나 손님을 매우 귀하게 여기는 풍습이 있기에 , 단순히 현지인의 집에 숙박하는 차원을 넘는 경험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여 주셨다 . 더욱이 10 개월 가까이 이란에 계시면서 거의 한 달을 제외하고는 모두 현지인의 집에서 머물며 이란의 생활과 멋에 흠뻑 젖어 생활하실 수 있으셨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 • 카우치서핑에는 가입한 온 세계 사람들의 프로필 , 삶의 철학 , 사진 , 인상 깊었던 경험 , 그리고 그 현지인의 집에서 카우치서핑을 했던 사람들의 생 생한 후기들도 남아 있었다 . 우리의 일정이 너무도 짧고 , 일분 일초도 소중했기에 그곳에 올려진 많은 사람들의 정보를 세심히 읽어보고 , 우리가 궁금 해 하는 부분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볼 수 있을 법한 다양한 연령대 , 다양한 배경의 친구들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 처음 활용해 보는 카우치서 핑이라 답장이 얼마나 올 지 궁금했었는데 , 카우치서핑 이용 팀 기사들을 참고하여 연락해서인지 연락한 거의 모든 곳뿐만 아니라 연락하지 않은 곳에서 도 우리와 함께 양국의 문화를 교류하고 싶다는 연락이 빗발쳤다 . 수십명의 중동 친구들과 일주일동안 스케줄을 조율하고 , 수십통의 메시지를 주고 받 으며 그들과의 교류를 준비하였다 . 이로 인해 단순히 낯선 지역을 간다는 기대를 넘어 , 멋진 경험과 배경을 가진 새로운 친구들을 만난다는 기대감으로 여정을 준비할 수 있었다 . • 한국 전통 선물 준비 • 우리 여정의 목적은 민간 차원에서 현지인들과 직접 양국의 문화를 교류하며 , 활자로 접하지 못했던 , 자극적인 뉴스와 언론을 통해서는 전달되지 못한 그들이 사는 세상에 뛰어드는 것이었다 . 따라서 양국 전통 의상 입고 생활해보기 , 전통 음식 공유하기 등을 비롯한 여러 활동을 계획해 놓았었기에 한 복 , 한식 등을 구입하였다 . 그리고 우리를 초대해준 현지 호스트 친구들에게 감사를 표할 수 있는 한국 선물들을 구입하였다 . 접이식 한국 전통 부채 와 한국 전통 금 도금 책갈피가 현지에서 인기가 많다는 소식을 접하고 그 두 선물을 중심으로 차 문화가 발달한 중동에 적합한 한국 전통 문양의 차 받침 세 트 , 공예품 등을 인사동에서 구입하였다 . 7
  • 9. 중동에 닿기까지 • 초반에 우리가 탐방할 중동 국가들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외교부 안보 등급을 살펴보고 ,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어 올라오는 중동 지역 내의 테러 및 납치 사건들을 보면서 , 탐방 국가를 선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 그런데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기 직전에 우리는 예기치 못한 변수와 마주치게 됐다 . 6 월 1 일부터 시작된 터키의 반정부 시위 사태 . 한국 언론은 시위 초반부에 터키 시위에 대한 기사들을 다루지 않았다 . 우리는 터키에 거주하는 한국인 블로그 , 해 외 통신 등을 통해 현지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 따라서 동서양의 문명이 상생하는 무슬림 국가 터키를 탐방하려고 했던 초기의 계획을 바꾸기로 했다 . 탐방국을 이란과 요르단으로 압축한 것이다 . 하지만 중동행 한국발 비행기의 수가 매우 적고 , 더욱이 이란과 요르단으로 직항하는 비행기는 찾을 수 없었다 . 터키나 카타르 , 아랍에미리트를 경유하는 것이 필수였기에 가격 , 위치 등을 고려하여 터키에서 경유하는 것을 택하기로 하였다 . • 예상치 못했던 또 다른 문제는 출국 일주일 전 신양섭 교수님과의 만남에서 떠올랐다 . 이란 비자 문제 . 우리 팀은 중동의 가 장 최근의 정보들을 엿볼 수 있는 블로그들을 중심으로 많은 정보들을 모았었다 . 최근 한국인의 이란 비자 발급이 시라즈의 경 우 도착 비자로 쉽게 발급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상태였기에 우리는 시라즈로 입국하기로 결정했었다 . 테헤란의 경우 이 란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 한국인의 입국 비자가 거절당하는 사례들도 발견하였다 . 최근 한국과 이란의 관계가 경색되면 서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는 이란으로부터의 초청장이 있다 하더라도 비자를 쉽게 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 또한 우리는 기업인 자격도 아니었기에 이란 대사관을 통해 비자를 발급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 그래서 시라즈 도착 비자를 발급받기로 한 것이다 . 그런데 교수님께서는 작년에 지인분들을 데리고 이란을 방문하실 때 비자로 인해 고생하셨던 사례들을 말씀해주시면서 비자 없이 이란을 입국하는 것은 굉장히 무모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 다른 교수님께서 는 이란행 비자가 없는 경우 터키 항공측에서 우리의 이란행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더라도 법적으로 전혀 하자가 없다고 하셨 다 . 이미 주한 이란 대사관에서 비자를 받는 것을 시도하기엔 시간이 너무 늦어져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 결국 우리는 이란 비자로 인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출국을 강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 8
  • 10. 긴장의 시라즈 입국  이란은 초청장이 있을 경우에만 비 자가 나오고 , 그럴 여건이 안된다 면 브로커 등을 이용해야 한다 .  우리팀은 네이버 블로그의 후기만 믿고 입국비자가 비교적 쉽게 나온 다는 시라즈 공항으로 입국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  그러나 출국 이틀 전 , 주한 이란 대 사관의 차디찬 답변과 신양섭 한국 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 교수님으로 부터 “이란에 비자없이 들어가는 건 불가능하다”는 소리를 듣고 충격과 공포에 빠지게 되는데 ..  “ 괜찮을거야”라고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입국 거부와 구류 , 만 약에 일어날 수 있는 초유의 사태에 대비해 가슴을 졸였다 .  새벽 2 시 30 분에 우리는 이란에 도착했다 . 우리 옆좌석에 앉아 웃고 떠들던 사우디 아라 비아 무리들도 국경에 도착하자 긴장한 표정 으로 빨리 긴 옷으로 갈아입었다 .  이란에서는 이란인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도 남자는 긴 바지에 여자는 히잡을 써야 한다 . 나는 발목까지 오는 긴 옷이 없었기에 터키항 공 담요를 허리에 두르는 창피한 짓을 해서 안 그래도 동양인이라곤 우리 넷 밖에 없는 비행기에서 탑승객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을 수 있었다 .  과연 이란은 우리를 받아 줄 것인가 !  새벽의 시라즈 공항은 한적하고 조용했다 . 떨리는 마음으로 비자를 신청하고 기다리자 우리 앞에 와 있던 서양인 남자가 눈에 띄었 다 . 그는 무언가를 항의하고 있었지만 그의 보증인이 없었기에 비자를 받는데 애를 먹고 있었다 . 우리는 점점 긴장되었다 .
  • 11. 긴장 , 감동으로 바뀌다 우리를 구해준 천사 하메드와 시라즈 공항에서 한 컷 그나저나 우리 옆에 있던 서양인 남자는 어떻게 되었을지 ..  공항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니 벌써 새벽 4 시 가 되었다 . 아직까지 비자가 나올지 불투명 한 상황 .  그런데 갑자기 어떤 남자가 건너편에서 오더 니 우리를 찾는다고 한다 .  맙소사 , 그는 우리의 두 번째 시라즈 카우치 서퍼 하메드였다 . 터키에 있는 동안 배터리 가 떨어져 그에게 연락을 하지 못했고 몇 시 에 도착한다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 ‘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와 본 것이란다 . 하메드 덕분 에 우리는 무사히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  입국심사를 받는데 CNN 자료화면이나 헐리 우드 영화에 등장할 거 같이 생긴 아저씨들이 나를 위 아래로 훝어보았다 . “ 코리아 ?” 또 긴장 . 그런데 활짝 웃더니 “두유 노우 주 몽 ?” 한류의 인기를 그때 실감했다 . 그들은 무척 친절하게 우리를 통과시켜 주었다 .  이렇게 우리는 최고의 첫인상을 받으며 시라 즈에 무사히 도착했다 !
  • 12. 사이드네 집  한복을 입고 좋아하는 사이드  그렇게 우리는 하메드의 ‘삼성’차를 타고 ( 하메드의 아버지가 삼성에 근 무하신다 ) 첫 번째 카우치 서퍼 사 이드의 집에 도착했다 .  그 때가 새벽 5 시였는데 , 사이드 는 그때까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 다 . 우리가 새벽 2 시 30 분에 입 국이라고 했으니 기약없이 밤을 샌 것이다 . 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우리를 따뜻 하게 맞아준 사이드는 우리에게 직 접 만든 장미 차에 수박 주스를 섞은 달콤하고 시원한 음료를 건네주었 는데 , 그게 우리가 이란에서 먹은 첫 음식이자 친절한 이란의 첫 느낌 이었다 .
  • 13. 시라즈  사이드네 집에서 딱 두 시간 자고 , 사이드가 만들어준 맛있는 아침밥을 먹고 우리는 시라 즈를 만나러 떠났다 .  이란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 일 뿐 , 시라즈에 체류한 기간은 단 이틀 뿐이기 에 몸이 고되어도 쉴 수 없었다 . 그리고 친절 한 이란 사람들과의 만남은 우리에게 그 피로 를 싹 잊게 해주었다 .  시라즈가 테헤란처럼 대도시가 아니어서 그 런가 , 여행객들은 드물었다 . 동양인들은 더 희귀해서 우리가 가는 곳마다 호기심어린 눈 길을 받을 수 있었다 . 그 눈길들은 우리를 노 골적으로 주시했지만 차갑거나 부정적이지 않고 따뜻했다 .  길거리에서 사진을 찍자거나 말을 걸어오는 사람도 많았다 . 우리가 생각하는 배척하는 분위기는 커녕 다들 우리에게 무언가를 가르 쳐 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 14 일을 여행하 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지만 시라즈 사람 들이 최고로 착하고 친절했다 .
  • 14. 하메드와 친구들  우리는 전날 우리를 구해주었던 하메드와 하 메드가 데려온 친구들과 함께 하루종일 시라 즈를 구석구석 쏘다녔다 .  고대 페르시아의 수도답게 시라즈에는 아름 다운 궁전이나 사원이 무척 많았다 . 세계의 유명한 문화재들과 견줄 수 있을 정도로 화려 하고 아름다운 문화재가 많았는데 다른 나라 와 외교를 안한다는 이유로 문화까지 알려지 지 않는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  궁전 구경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우리에 게 남은 것은 하메드와 친구들이다 . 우리가 생각하는 이란의 전통적인 남녀상들과는 전 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  흔히 우리는 중동 사람들은 남자는 호색한 , 공격적에 가부장적이고 여자는 검은 차도르 로 온 몸을 가리고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남 자는 일하고 여자는 집에서 애를 키우는 전통 적이고 가부장적인 삶의 방식을 가진다고 생 각한다 . 그러나 우리가 만난 사람들은 전혀 달랐다 .  우리의 친구들과 그 이력을 소개하자면 ,  하메드 : 말레이시아에서 박사 학위를 밟고 있 는 젠틀맨 . 깔끔하게 뒤로 넘긴 머리와 딱 달라 붙는 초록색 스키니진 , 웃을 때마다 하얗게 빛 나는 치아가 인상적 .  키안 : 시라즈 카우치서핑계의 대부이자 항상 우리를 웃게 해줬던 남자 .  마르잔 : 남편이 있지만 혼자 카우치서핑 모임 에 나오는 것은 물론 , 전 세계를 여행한 용감한 여행가 . 직업은 엔지니어이며 , 답답한 이란이 싫어 캐나다로의 이민을 꿈꾸는 담대한 여성 .  아살 : 비서 시험을 보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예쁜 여성 . 꾸미는 데 관심이 많다 .  이렇게 면면을 훝어 보면 우리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 세계 여느 사람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 아가고 있었다 . 우리 팀원 네 명의 모습이 전혀 다르듯이 그들도 그 럴 텐데 , 왜 우리는 이란 사람들을 어떤 카테고 리에 넣고 생각한 걸까 ?
  • 15.
  • 16. 아크바르씨네 집  밤 , 우리는 하메드와 친구들과 작별하고 세 번 째 카우치 서퍼 아크바르 (Akbar) 씨네 집으로 향했다 . 몸은 부서질 것 같지만 이란 사람들의 친절과 환대는 피로를 잊게 해주었다 .  적십자회에서 일하는 아크바르씨는 신혼이다 . 부인인 마숙메 (Masukme) 씨는 인테리어 디자 이너로 일한다 .  아크바르씨네 집에서 우리는 하메드와 친구들 과 한 얘기와는 다른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 이란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2 년동안 군대를 다녀와야 한다 . 아크바르씨의 아버지 가 걸프전에 참전했다고 한다 . 그는 진지하게 이란 정부와 정치에 대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었 다 .  아크바르씨는 상남자지만 부인과 아기에겐 약 한 남자였다 . 결혼식 때 찍은 뮤직비디오를 보 여주거나 친구의 아기에게 거침없는 사랑표현 을 하기도 했다 . 부인을 도와 음식준비나 설거 지를 하기도 했다 . 이렇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부장적인 중동 남성상에 대한 이미지는 자연 스럽게 우리 안에서 벗겨지고 있었다 .
  • 17. 페르세폴리스  페르세폴리스 , 세계문화유산이자 페르시아 문화 의 집대성인 거대한 왕궁을 이까지 왔는데 안 보고 갈 수는 없었다 . 그러나 전날의 피로로 너무 늦게 일어난 것이 문제였다 . 9 시에 일어난 우리들은 40 도를 가뿐히 넘기는 가장 더운 시간에 구름 한 점 , 나무 한 그루 없는 산을 올랐다 .  ‘ 페르시아의 도시’라는 말 그대로 페르시아 제국의 영광을 간직하고 있는 페르세폴리스는 알렉산더 대 왕의 정복으로 파괴되었는데 , 왕궁에 불을 질러 녹아내리는 황금과 창고의 보물을 모두 가져갔는데 그걸 실어나르는 노새가 2 만 마리 낙타가 5 천 마 리였다 는 기록이 남아 있다 . 대부분 파괴되었지 만 남아 있는 황궁 정문의 황소 상만 봐도 페르시아 제국의 위엄을 짐작할 수 있었고 , 이런 황홀한 문 화의 후손인 이란인들이 가진 자부심을 이해할 수 있었다 .  그런데 기원전에 세워진 왕궁의 기둥들은 아무렇게 나 뒹굴고 있었다 . 심지어는 그 유명한 사자상도 우리가 얼마든지 만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 사 이드가 말하길 “이란 정부는 페르세폴리스를 내버 려 두고 부정한다 . 그들은 이란이 이슬람 이후부 터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 종교와 정치와 문화는 분리되어야 하고 , 이란 사 람들도 그걸 잘 인식하고 있는데 이란 정부만 그걸 모른다 .
  • 18. 아크바르씨네 처가 방문  아크바르씨의 부인 마숙메씨에게는 한국을 좋아하는 언니와 동생이 있다 . 이란에서는 한국 드라마가 더빙으로 방송되는 채널이 있 고 한국 드라마의 인기가 아주 높다 . 사극은 물론이고 트렌디 드라마 , 심지어는 인기가 요까지 나온다 .  마숙메씨의 언니와 동생은 한국인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데도 한국어를 엄청나게 잘 했다 . 그래서 아크바르씨는 다음날 우리를 처가 , 즉 마숙메씨가 결혼하기 전 살던 집에 초대해 주었다 . 우리는 즐겁게 한국 드라마 나 문화에 대해서 얘기했다 . 동생은 추노 팬이고 언니는 엄태웅의 팬이 다 . 엄태웅이 1 박 2 일에 나온다는 것도 알 고 최근 윤아가 나오는 편까지 봤단다 .  동생과 언니 뿐만 아니라 마숙메씨의 아버 지 , 어머니도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 중동 풍습 , 이슬람 계율에서는 무조건 손님 을 환대하라고 한단다 . 우리는 안그래도 입 에 맞지 않는 이란 음식을 웃으면서 듬뿍 듬 뿍 먹어야 했다 .
  • 19. 아크바르씨네 처가 방문  더 놀고 싶었지만 우리는 가야 했다 . 새 벽 1 시에 이스파한 행 버스를 예약했기 때문이다 . 몇 시간 놀지도 못했는데 .. 아쉬움이 터진다 .  그 때 , 마숙메씨가 우리에게 어떤 비닐 봉지를 준다 . 열어보니 아까 강심언니 가 맛있게 먹었던 음식이다 . 가는 길에 먹으라고 어머니께서 싸 주신 것이다 . 강심언니가 눈물을 흘렸다 .  이렇게 시라즈 사람들은 고작 이틀 머물 었을 뿐인데도 우리에게 친절함을 넘어 감동 그 자체다 .  밥을 먹은 후 마숙메의 언니와 동생이 쓰는 방을 구경하는 도중에 동생이 게임판을 꺼냈 다 . 이란 전통 보드게임을 가르쳐주겠단다 . 그런데 오빠들도 부른다 . “ 어 ?? 여자방에 남자가 들어와도 되니 ?” “ 응 , 뭐가 문제야 ?” 이렇게 또 하나의 편견을 깬다 ..
  • 20. 시라즈에서 이스파한 가는 길 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스파한 가는 버스에 탔는데 , 내가 핸드폰을 잃 어버렸다 . 아마 아크바르씨네 집에 두고 온 것 같다 . 20 분 뒤에 차는 출발해서 발만 동동 구르는데 우리 의 첫번째 카우치 서퍼 , 우리의 보 호자사이드가 택시로 찾아다 주었 다 . 마지막까지 시라즈는 감동이었 다 .  시라즈에서 이스파한은 4 시간 정 도 걸렸다 . 잘 자고 있는데 갑자기 버스가 서서 승객들을 모두 내리게 한다 . 제복을 입은 경찰들과 경찰 견이 버스 안으로 들어가서 검문을 했다 .  우리가 더이상 비교적 자유로운 시 라즈에 있지 않고 , 대도시 이스파 한에 왔다는 게 느껴졌다 .
  • 21. 이스파한 - 마흐디네 집 마흐디는 이스파한 대학교에서 영문학을 전공하는 29 세 늦 깎이 (?) 대학생이며 , 부모님과 한 집에 살고 있으며 , 개인 소유의 푸조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다 . 마흐디에 대한 첫 인상은 이거다 . 아니 마흐디뿐만 아니라 우리가 만난 모든 이란 남성에게 해당되는 인상이지만 , ‘ 친절함’ 이다 . 거의 모든 행동에 친절함이 배어 있다고 보면 된다 . 물론 여성 한정이긴 하지만 . 사진은 한복 두루마기를 입은 마흐디 이다 . 우리가 마흐디에게 해주었던 그 어떤 것보다 이 한복을 가장 좋아했다 . 사실 다음 일정을 생각하면 여기서 마흐디에게 한복을 주고 갈 순 없었는데 , 마흐디의 간절한 눈빛이 우리로 하여금 한복을 내려놓게 했다 . 비싼 돈 주고 산 한복인데 ... 지금까지 살아온 짧은 인생 중 , 부모님을 제외하고 우 리에게 있어 가장 큰 감동을 선사해준 우리의 사이드 (20 세 , 무직 ) 을 뒤로하고 , 난생 처음 버스 검문 (?) 을 받 아보기도 한 끝에 , 오전 7 시쯤 새로운 도시인 ‘이스파 한’에 도착했다 .
  • 22. 마흐디 앞서 소개했지만 , 마흐디는 29 세의 영문학을 전공 하는 대학생이다 . 그는 우리에게 자신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 자신 을 소개했지만 , 우리가 보기에 그는 ‘한량’이라 는 단어가 정말 딱 들어맞는 그런 남자였다 . 첫 만남부터 그랬다 . 우리에게 9 시까지 수업을 들으 러 간다고 하면서도 , 계속 소녀시대 동영상을 보 느라 바빴던 그는 , 오후에 ‘실크로드’에서 재회 했을 때 , 해맑은 표정을 지으며 우리에게 손바닥 을 보여줬다 . 시험을 봤는데 공부를 하나도 안해 서 컨닝을 했다고 자랑하는데 , 우리는 그저 웃기 만 했다 . 그리고 혼자 계속 지루해 하다가 아르메니아인 여자친 구 ( 지금 돌이켜보면 그의 수많은 여자친구 중 하나였다 .) 를 만날 때 다시 한껏 폼을 잡으며 우 리를 가운데에 두고 말이 많아졌다 . 마흐디의 집에 있었던 기간은 겨우 이틀이지만 만난 마흐디의 여자친구는 엄청나게 많았다 .
  • 23. 마흐디 그는 사이드와 달리 우리와 많은 대화를 나누는 성격은 아니었 다 . 그러나 상남자중의 상남자였다 . 사실 우리가 아민 일행과 공원에서 문화에 대해 토론을 벌였던 날 , 마흐디는 같이 있긴 있었지만 , 완전히 찬밥 신세나 다름 없었다 .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 마흐디는 그들과 친분은커녕 일면 식도 없는 상태였는데 , 우리가 아민과 연락을 했기 때문 에 , 책임감 하나만으로 그 자리를 꿋꿋이 지켜 주었던 것 이었다 . 의리남이라는 수식어 말고는 더 떠오르는 수식 어가 없다 . 가장 오른쪽에 모자를 쓴 남자가 마흐디인데 , 그는 이 사진을 찍은 순간 뿐 아니라 , 이 토론 내내 이 자세를 하고 있었 다 . 토론을 마치고 난 뒤 , 우리가 정말 미안하다고 몇 번을 얘기했지만 , 마흐디는 표정이 좋지 않다가도 , 우 리가 말을 걸면 계속 자신은 괜찮다고 했다 . 그러나 후에 마흐디의 데이트에 우리가 이용되었던 것을 생각하 면 , 이 상황은 지금은 그렇게까지 미안한 상황은 아니었 다 . 앞서 만난 사이드와 달리 , 만날 때마다 옆에 있는 파트너 가 바뀌어 있는 마흐디의 능력 . 솔직히 우리 아라뷰 팀은 그를 매우 부러워했다 . 사실 이 토론은 전혀 마흐디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 마흐디의 컨닝 페이퍼를 보여주자 토론 모임의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렸다 !
  • 24. 수상한 카펫가게 - 실크로드 이맘 호메이니 광장의 한 구석에 위치한 카펫가게 ‘실크로드’ 는 단 순한 카펫가게가 아니다 . 전 세계의 카우치서퍼들과 소통을 할 수 있으며 , 페이스북 등 외 부 인터넷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 수많은 여행객이 들러 차 한잔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아지트이기도 하다 . 이란의 국내 인터넷 통제는 페이스북 접속 금지와 유투브 등의 사이 트 접속 금지를 넘어서 , 2013 년 7 월에는 자국민 통제를 위 한 국민전용 이메일 계정을 모든 이란인에게 보급중인데 (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30710017010 참조 ) 이렇게 통제가 심한 나라임에도 , 소통에 목마른 이란인들은 이러한 비밀 아지트를 통하거나 , 프록시 서버 우회 등의 방법을 통하여 간접적으로나마 외국을 접하고 있다 . ‘ 실크로드’의 주인장인 OO 는 단순한 아지트를 넘어서 더 많은 카펫 판매를 위한 주춧돌로써 위험을 무릅쓰고 가게를 운영하고 있 다 . OO 는 이렇게 생각한다 .‘ 더 많은 관광객들이 우리 가게 를 쉼터로 이용하고 , 페이스북을 쓰면서 한번이라도 자기네 가게가 언급될 수 있다면 , 그게 바로 세계에 광고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실로 대단한 포부를 가지고 있는 남자였다 . 우리 아라뷰 팀도 여기에 들러서야 겨우 인터넷을 쓸 수 있었다 .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 이란이라는 국가는 와이파이존도 찾 기 힘들뿐더러 설령 찾는다고 해도 , 웬만한 사이트 , 하다 못해 한국의 네이버 블로그도 들어갈 수 없도록 막아놓아서 마 치 눈과 귀가 막힌 듯 한 느낌이었는데 , 여기에 들러서 겨우 다음에 만날 현지인과 약속을 확정지을 수 있었다 .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서 ...
  • 25. 그러나 위에서 한 설명만으로 실크로드를 마무리 짓기에는 뭔가 부 족하다 . 이 부족함을 채워줄 사람이 바로 사진의 청년이다 . 사진의 청년은 이 가게의 아르바이트생인데 , 손님이 와도 시큰둥 할뿐 아니라 , 뒤치다꺼리는 사장이 전부 다 하고 , 이 친구 는 사장에게 반말을 할 뿐 아니라 , 우리와 얘기하느라 정신 이 없다 . 우리의 시라즈 친구 사이드에 대해 얘기할 때 언급하겠지만 , 우리 의 편견과는 달리 이란은 고용주와 피고용자의 사이가 아주 유 연하다 . 서로 대등한 입장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용주가 고압적인 경우도 거의 없고 , 피고용자의 경우도 마 찬가지라고 한다 . 그러나 이를 몰랐던 우리는 , 이 친구가 아르바이트생이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 사장은 아래층에서 영업하느라 진땀 흘리 고 있는데 , 이 친구는 그저 먼산 바라보듯 손님들을 2 층에 앉아서 쳐다보기만 할 뿐 ,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각설탕 자르는 일 뿐이었다 . 우리가 하도 신기해서 질문했더니 , 이 친구는 변함없이 웃는 표정으로 "It is very very important thing" 이라고 한 다 . 설탕 자르는 일이 카펫 하나 파는 것 보다 중요하다고 하는 이 친 구 . 우리는 이 친구에게서 진짜 여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배 울 수 있었다 . 아래 사진은 아라뷰의 리더인 라일라가 아지트 에서 페이스북을 사용하는 모습이다 . 수상한 카펫가게 - 실크로드
  • 26. couch surfing gathering 과 함께한 문화 토론 이스파한에는 카우치 서퍼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 이 모임을 주도하 는 친구가 바로 아민 (20 세 , 무직 ) 이었다 . 이스파한에 도착한 첫날 , 마흐디 덕분에 제 시간에 분위기 좋은 공 원에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었다 . 가장 오른쪽에 초록색과 흰색이 섞인 옷을 입은 친구가 카우치서퍼 개더링을 주도하는 ‘아민’이라는 친구다 . 이 친구는 스무살이 라는 아주 믿기지 않는 나이를 가진 친구인데 , 한국 문화에 대 한 관심이 우리 아라뷰 보다 훨씬 더 많았다 . 단순히 문화 뿐만 아니라 , 대한민국의 정치 상황까지 , 비록 인터 넷으로 습득한 지식이 대부분이긴 했지만 , 모르는 것이 전혀 없었다 . 게다가 한국어도 수준급으로 한다 . 이란에 도착하기 전 , 아민과 미리 컨택을 취해서 , 이스파한에 도 착한 첫날 , 이렇게나 많은 이란의 젊은 대학생들과 만날 수 있 었는데 , 사람이 많은 만큼 토론도 정말 수준급이었다 . 우리는 우리의 프로젝트 성격에 맞는 질문을 준비해갔고 , 이들은 대한민국 내에서의 이란인들의 이미지와 기타 문화에 대한 질문 을 준비해 와서 토론을 시작했는데 , 앞에서 설명한 내용으로 는 토론이 아닌 토의가 걸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 굳이 토론이 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거다 . 한국인들의 편견에 대한 말을 듣고 갑론을박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
  • 27. 이들은 아랍인들의 대외 인식에 대해 불쾌함의 감정이 아닌 , 안타 까움의 감정으로 답을 대신했다 . 서구 언론에 의해 왜곡된 이미지가 이들에게 있어 정말 큰 타격과 마 찬가지라는 점을 다시 한번 당부하고 싶다 . 특히 같이 토론하던 친구들은 미래에 한국 또는 일본 등의 아시아 국 가에 유학하는 것이 꿈인 친구가 많았는데 , 우리의 얘기를 듣 고 화를 먼저 내기보다 , 이란 정부를 탓하는 경향이 있었다 . 이란 사람들은 개방을 원하고 , 누가 보더라도 현대 사회에서는 폐 쇄가 아닌 개방만이 이란이라는 국가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 인데 , 기득권자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슬람 원리주의 등의 폐쇄 정책을 펼치고 있는게 1 차적인 문제라고 주장했다 . 단순히 서구 언론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들의 말을 듣고 , 우리 아라뷰도 느끼는 점이 상당히 많았다 . 자유를 항상 누리고 있는 우리로서 , 자유가 제한된 이란 사람들과 공감하는 것 자체가 힘든 일이지만 , 이 시간을 통해서 조금이 나마 감정을 공유하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서 다시 한번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에 감사를 표한다 . couch surfing gathering 과 함께한 문화 토론
  • 28. 아르메니아인 마을 방문 이란에는 순수 이란인만 살지 않는다 . 물론 지금도 대부분을 차지하 고 있는 사람들은 순수 이란인이긴 하지만 , 전쟁으로 인해 아프 가니스탄인이 많이 유입되고 ,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인들이 정말 많이 이란으로 피난와서 정착중이라고 한다 . 그리고 옛날 터키에 의해 학살당했던 기독계 아르메니아인으로 이루어진 마을도 이란 이스파한에 있다 . 그러나 우리가 애초에 이곳에 방문할 예정은 전혀 아니었다 . 우리의 호스트인 마흐디가 자신의 여자친구를 만나기 위해 갔던 곳인 데 , 도착한 후에야 마흐디가 이곳이 바로 아르메니아인 마을이라 고 소개해줘서 짤막하게나마 설명을 들었던 곳이다 . 사실 아르메 니아인 마을이라고 해서 별다를 건 없다 . 기독교를 믿는 아르메 니아인이라고는 하지만 모스크도 있고 그냥 보통 마을과 다름없었 다 . 단지 특별했던 건 , 마흐디의 아르메니아인 여자친구였다 . 이곳은 짝퉁 Nescafe 이다 . 그러나 짝퉁 브랜드였음에도 불구하고 상 당히 준수한 커피 맛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 그러나 우리는 마흐디의 데이트에 이용되었던 것이었다 . 토론할때까 지만 해도 표정이 그렇게 좋지 않았던 마흐디가 , 이날 여자친구 앞에서는 토론에서 자신이 중심이었다 , 외국인 친구들도 많다 , 이런 식으로 자랑을 시작하니 , 우리는 그저 부러움 반 , 어이없 음 반으로 마흐디를 쳐다볼 뿐이었다 . 다행히 커피가 맛있어서 이 카페에서 버틸 수 있었지 , 그렇지도 않았 다면 , 이 사랑의 줄다리기 속에서 우리는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
  • 29. 자메 (Jameh) 모스크 우리가 방문했던 자메 모스크는 이스파한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 도시가 세워질 때는 모스크가 먼저 세워지고 그 주위에 바자르가 형성된다 . 즉 이란인의 삶은 모스크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 자메 모스크의 자메는 영어로   Congregational 이라는 뜻으로 회중이 모이는 모스크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 자메 모스크는 우리가 그 전에 방문했었던 모스크 와 느낌이 색달랐다 . 화려한 타일이나 장식은 없 지만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그 분위기가 우리를 압 도했다 . 그리고 모스크 내부의 건물 하나하나 심 지어 기둥 하나하나 마저 역사적 의미를 갖고 우리 에게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맛보게 해 주었다 . 그러나 자메 모스크를 방문했을 때 손님은 우리 말 고 거의 없었다 . 터키에서 본 블루모스크와 비교 해 봐도 전혀 뒤지지 않을 것 같은 이 웅장하고 화 려한 모스크에 관광객이 우리밖에 없다니 .. 정치상황 때문에 전 세계의 다른 사람들이 이런 훌 륭하고 아름다운 문화 유산을 알지 못한다는 게 너 무 안타까웠다 . 모스크에서 우리를 가이드해 준 아저씨가 있었다 . 옥스포드 영어사전을 옆에 낀 아저씨는 유창한 영 어로 한참을 모스크에 대해 설명해주다가 끝날 때 가 되니까 우리에게 돈이 있냐고 물었다 . 우리는 여행지에 빈번한 사기 가이드가 아닐까 의 심했지만 그 아저씨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그 나라 의 돈을 받아 조금씩 수집하고 있었다 . 우리도 한 국 돈을 조금 드렸다 . 세계와 소통하고 싶어하는 이란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
  • 30. 체헬소툰 궁전과 이희수 교수님과의 만남 자메 모스크를 나와 이란인 친구들과의 약속시간까지 시간이 조금 남 아 우연히 들리게 된 체헬소툰 궁전 . 거기서 만난 이들은 이란 청소년 대회 ( 무슨 대회인지는 모르겠다 ) 에서 뽑힌 여학생들의 무리였다 . 학생들은 우리를 둘러싸더니 한국과 이란에 대해 엄청난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 주로 이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많이 물었는데 , 이런 걸 보면 이란 사람들은 참 순수하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 나라 사람들의 이란에 대한 인식이 안타깝게 느껴지면서 꼭 이란에 대해 똑바로 알려야 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 그리고 체헬소툰 궁전에서 아라뷰 팀은 엄청난 인연을 만나게 된다 . 바로 한국이슬람학회 학회장이시자 자타공인 국내최고의 이슬람 전문가이신 이희수 교수님과 체헬소툰 궁전에서 아주 우연히 마 주치게 된다 . 교수님께서는 다른 일행 분들과 이란 여행을 즐기 시던 중이었는데 , 우리가 그 동안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를 준비하며 중동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 이희수 교수님의 책과 글을 많이 읽고 큰 도움을 받았었다 . 그래서인지 교수님과의 만남은 탐험으로 인해 지쳐있던 우리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어 주셨다 . 우리들에게 격려의 말씀과 약간 의 용돈 (!) 그리고 한국음식들을 주셨고 이것이 우리가 무사히 중동 여행을 마칠 수 있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교수님 , 감사합니다 !
  • 31. 아민과 그의 친구들과의 두번째 만남 - 전통 음식 교류 - 이희수 교수님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우리는 어제 만났던 아민과 그의 친구들과의 한 - 이란 문화 교 류를 위해 다시 만나게 되었다 . 이날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많은 이란인 친구들이 우리들과의 소 통을 위해 와주었다 . 이날 모임은 전날 과는 달리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 속 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진행되었다 . 서로에 대해 평소 궁금했던 것들에 대해 질문하며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서 조금은 벗어 날 수 있었다 . 특히 이란인 친구들은 한국의 문화에 대해 많은 관 심을 보였는데 한국 드라마와 한국 가수들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 특히 이날 모임의 하이라이트는 한국음식 체험이었 다 . 여름이라 한국음식을 많이 준비해 가지도 못 했고 이슬람을 믿는 그들이기에 먹을 수 있는 음식 에 제약이 많았지만 채소로만 만들어진 깻잎절임 에 다들 많은 관심을 보였고 여러 친구들이 직접 깻잎절임을 먹어보았다 . 물론 그들의 반응은 우 리가 이란 전통 음식을 먹었을때의 반응과 매우 비 슷했지만 그래도 서로의 음식을 체험하고 서로의 문화에 대해 교류 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
  • 32. 자얀데 강 다리 우리가 여행 중이었던 7 월의 이란은 정말 덥다 . 이란의 산 에는 나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이란은 뜨거운 태양과 건 조한 기후를 가진 나라이다 . 그럼에도 우리는 이스파한에서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 . 바로 이스프한을 가로지르는 자얀데강을 통해서이다 . 페르시아어로 ‘자얀데 루드’라고 불리는 이 강은 저이단 ( 생명을 주다 ) 이란 동사에서 온 자얀데 ( 생명을 주 는 ) 라는 형용사와 강을 뜻하는 루드가 합성된 말이다 . 다리는 두 개가 있는데 모두 몇 백년 전에 지어진 것이다 . 그 옛날에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건설하다니 .. 페 르시아인들의 건축 기술에 다시금 놀랐다 . 그 이름에 걸맞게 자얀데 강은 이스파한 사람들에게 생명력을 공급해 주고 있었다 . 이른 시간부터 자얀데 강 주변에 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 우리나라의 청계천 (?) 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셈이다 . 가족끼리 , 친구들끼 리 혹은 연인들끼리 함께 모여 이란의 살인적인 무더위를 피하고 자얀데강의 시원함을 만끽하고 있었다 . 우리도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란 친구들과 함께 강에서 놀며 무더위를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다 . 자얀데 강 다리를 마지막으로 결코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아쉬 움을 뒤로 하고 우리는 요르단으로 떠났다 .
  • 33. 이스파한 공항  작고 , 약간 낡았고 , 우리에게 ‘주몽’을 얘기 하며 웃어주던 시라즈 공항의 직원들은 없었 다 . 이스파한공항은 에어컨이 아주 강해서 춥고 엄청나게 넓었다 .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의 표정에서 긴장을 읽을 수 있었다 .  그러나 .. 긴장에도 불구하고 졸음은 왔다 . 일정상 공항에서 밤을 새야 했던 우리는 번갈 아가면서 씻고 먼저 나온 사람들은 골아떨어 지고 말았다 . 때문에 제일 마지막에 씻은 정 욱오빠가 우리를 지켜야 했다 . 나중에 오빠 말을 들으니 한국에서 챙겨온 고추장을 먹으 면서 버텼다고 한다 . 오빠 , 미안 !  출국 심사도 여자와 남자 따로 받아야 했는 데 , ‘ 히잡을 다시 써라’는 요구를 받았다 . 게 다가 온 몸 검색을 당했는데 아주 무섭게 생 긴 차도르를 쓴 할머니들이 내 몸 구석구석을 손으로 만지면서 훝었다 .  비자걱정을 했을때 신양섭 교수님의 경고가 떠올랐다 . 만약 우리가 이스파한으로 들어 왔으면 ? 100 퍼센트 입국비자는 커녕 구류 됐을수도 있다 . 우리가 운이 좋았다는 생각 과 함께 ‘이란은 아직 어려운 나라구나’는 생 각이 들었다 .
  • 34. 마다바 우리가 요르단에서 숙소를 잡았던 마다바라는 도시는 매 우 특이한 곳이었다 . 이슬람국가인 요르단 내에서 마다바는 기독교를 믿는 사 람들만의 공간으로서 존재해왔다 . 마다바에는 예 전부터 기독교인들이 살아왔는데 로마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순교하기도 했다 . 그리고 이후 많은 교회 들이 마다바 내에 세워졌고 이러한 교회들과 유적들 이 중동이 아닌 색다른 곳으로서의 느낌이 들게 만들 었다 . 마다바는 성경에도 나올 정도로 기독교에서 갖는 의미가 매우 큰 도시이고 도시 전체가 교회들과 기독교 유적 들로 가득하다 마다바에는 아직까지 많은 기독교인들이 살아가고 있다 . 기독교 신자와 이슬람 신자간의 갈등은 적은 편이며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며 평화롭게 살아간다고 한다 . 그러나 요르단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그 비율이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지금은 20% 정도밖에 안된다고 한 다 . 마다바에는 초기 기독교 , 로마 제국 , 비잔틴 , 이슬 람 시대 유적들이 한 장소에 함께 섞여 있다 . 이처 럼 현재의 요르단도 다양성을 인정하는 모습이 되었 으면 좋겠다 .
  • 35. Fadi 아저씨 집 우리를 마다바로 초대했던 분이 바로 Fadi 아저씨이다 . 이분은 예전에 요 르단 국방성에서 일하셨고 지금은 은퇴 하셔서 우리와 같은 여행객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취미로 하는 분이셨다 . Fadi 아저씨 덕분에 마다바에 대한 역 사적 설명과 숨겨진 유적들까지 제대로 볼 수 있었다 . 특히 아저씨께서는 하루종일 걸어다녀 지 친 우리를 직접 집으로 초대해주셔서 쉴 공간을 마련해 주셨다 . Fadi 의 집 은 정말 크진 않지만 아늑했고 옥상에 는 베두인 전통 텐트가 있어 그늘 속에 서 쉴 수 있었다 .
  • 36. 지브릴의 아픔 마다바에 도착한 다음날 , 그러니까 전날 새벽에 굳게 닫혀있던 호텔 문 을 두드리고 체크인을 한 다음날 , 우리는 계획대로 미리 컨택했던 기독교인 요르단 Fadi 를 만났다 . 예전에 요르단 국방부에서 일하시다가 은퇴하신 ,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셨는데 , 정말 열정적이셨다 . 우리의 프로젝트에 대해 정 말 궁금증을 많이 가지고 계셔서 , 밖에 나가기 전에 호텔에서도 열 띤 토론을 펼치느라 힘이 들었다 . 그러나 이분이 짰던 하루 계획은 지브릴의 몸살로 인해 모두 백지로 돌아가버렸다 . 맨 처음 우리는 할아버지와 함께 성 조지 교회에 들러서 요르단에서의 기 독교의 위상과 현실에 대해 설명을 듣는 중이었는데 , 지브릴의 안 색이 점점 나빠지더니 , 전혀 추운 날씨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춥다고 하여 먼저 호텔에 보낼 수 밖에 없었다 . 지브릴은 자신의 강철체력을 강조하며 , 조금만 쉬다 오면 된다고 거의 으름장 (?) 을 놓고 호텔로 돌아갔으나 , 우리는 전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기에 , 할아버지께 양해를 구하고 지브릴의 방으로 향했 다 . 결과는 위 사진과 같다 . 이 더운 날에 이불을 목까지 덮고 에어컨까지 끄고 혼자 끙끙대며 잠 을 자고 있던 그는 , 당장 탈수 증세에 시달린다 하더라도 의심치 않을 상태였다 . 결국 이날 하루는 지릴의 병간호를 위해 모든 활동 을 중지할 수 밖에 없었다 . 다행히 열이 오르거나 하는 상태는 아니어서 , 인터내셔널 SOS 에 연락 은 하지 않았으나 , 몇시간이면 된다고 했던 그는 이불을 뒤집어쓰 고 도통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서 , 덕분에 아라뷰 팀도 본 의 아니게 힘든 일정 중 푹 쉴 수 있었던 하루가 되었다 .
  • 37. 페트라 • 요르단에서 가장 유명하며 세계 7 대 불가사의중 하나인 페트라 , 우리는 비록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시간을 쪼개 페트라에 갈 수 있었다 . • 페트라의 입장 요금은 일인당 50JD, 한화로 80000 원 정 도였다 .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유적이며 요르단 세수의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 • 페트라는 정말 넓다 . 그리고 현재 발굴된 부분이 전체의 극히 일부분이라고 한다 . • 페트라에 대한 감상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다 . 보는 순간 이걸 인간이 만들었을까 라는 느낌이 들고 보는 내내 감탄 을 금치 못했다 . • 페트라 내부 깊숙히에는 아직도 베두인족들이 산다 . 그 들은 페트라 안에서 직접 먹을 것을 구하며 예전의 모습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살아간다 . 우리 일행이 페트라 안에 서 길을 잃어 헤메고 있을때 베두인족들의 도움을 통해 무 사히 빠져나왔다 . 관광객들은 상대로 하는 장사꾼들이 아닌 순수한 모습 그대로의 베두인족들을 만날 수 있어 참 좋았다 .
  • 38. 와디럼 • 와디란 아랍어로서 겨울에는 강이 되지만 비가 내리지 않 는 우기에는 마른 계곡이나 땅이 되어버리는 곳을말한다 . 즉 와디럼은 말그대로 사막이다 . 중동의 가장 큰 지형적 특징은 바로 사막이 많다는 것이다 . 그리고 우리 팀은 이 러한 중동의 사막을 직접 체험해보고자 와디럼에가게 되었 다 . • 사막은 사람이 매우 살기 힘든 환경이다 . 그러나 이곳에서는 많은 베두인족들이 살아왔고 지금까지 도 살아가고 있다 . 그들은 사막이라는 인간이 살기 힘든 환경을 극복하고 살아가고 있었다 . • 그리고 이곳 와디럼에서 우리는 사막과 베두인족 문화 모 두를 체험 할 수 있었다 . 베두인족 텐트에서 그들과 함께 먹고 , 춤도추고 차도 마시며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살 아가고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이해 할 수 있었다 . • 그들은 사막이라는 환경을 즐기며 손님들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 . 비록 하룻밤 동안의 짧은 체험이었지만 사막에 서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 할 수 있었다 .
  • 39. 씨타델 • 야잔이 우리를 데려가준 씨타델은 암만 시내에 있 는 유적지로서 요르단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었다 . 이 곳은 과거 로마 - 오스만투르크 - 현재 요르단으로 이어지는 유적들이 함께 어우러 져 있는 곳이었다 . • 암만 시내 곳곳에는 이탈리아에서만 볼 수 있을거 같은 로마시대 유적들이 많았다 . 또한 과거 찬란 했던 오스만 투르크들의 유적들도 찾아 볼 수 있었 다 . 상반대는 성격을 가진 두 거대 제국들의 흔 적들이 공존하는 도시라는 느낌을 받았다 . • 암만은 그렇게 유명하거나 화려한 도시는 아니 다 . 하지만 모든 서양의 역사가 이곳에 있었다 .
  • 40. 순수 요르단 청년 야잔 • 우리를 암만으로 초대해준 야잔은 요르단에 있는 한국 남부발전소에서 일하며 올해 8 월이면 한국 에서 공부를 하게 될 청년이었다 . 그래서인지 그 는 우리에게 그 누구보다 친절하고 자상하게 대해 주었다 . 야잔 덕분에 우리는 복잡한 암만의 시내를 쉽고 안 전하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 • 야잔은 순수 요르단 혈통으로 보통 우리가 생각하 는 중동사람들과는 달리 영어를 매우 유창하게 구 사했다 . 그의 어머니는 현재 요르단 국세청에서 일하시는 분이셨는데 이분 역시 매우 유창한 영어 실력과 지식들을 가지신 분이셨다 . • 야잔에게는 우리 말고도 현지의 한국인 친구들이 많았고 우리는 야잔을 통해 요르단에서 일하고 있 는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 요르단에서 일하 는 한국인들이 매우 힘든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아 가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존경스러워 졌다 .
  • 41. 이란사람들의 차도르에 대한 생각  계율이 엄격하다고 알려져 있는 이란 . 그러나 차 도르를 쓴 사람은 대부분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고 대부분의 젊은 여성들은 알록달록한 히잡을 자신 의 취향 대로 쓰고 다녔다 . 이슬람 계율에 따르면 ‘ 머리카락이 보여서는 안된다’고 했는데 , 대부분은 정수리 저 넘어서 히잡을 걸치고 선글라스를 쓰는 게 이란의 유행인 것 같았다 .  이란 여성들에게 차도르나 히잡에 대한 의견을 물 어보자 , 이들은 거침없이 ‘싫다’며 부정적인 의견 을 토해냈다 . 마숙메씨는 수영을 하거나 등산 할 때도 히잡을 써야 한다고 했다 . 마흐디의 두 번째 여자친구는 취미가 보디빌딩인데 보디빌딩을 할 때에도 히잡을 쓰는 것이 너무 불편하고 힘들다고 했다 . 마르잔은 해외 여행만 가면 히잡을 벗는단 다 .  우리 생각에는 종교적인 이유이고 , 어렸을 때부터 쓰는 거니까 별 거부감이 없는 줄 알았다 . 그러나 여성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정부만 아니면 이 히 잡을 벗어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  남자들도 여자들의 히잡에 부정적이었다 . 아름다 움은 보여져야 하고 , 여자들이 히잡을 벗는다면 남자들은 환영할 것이란다 . 무슬림 안으로 알록달록한 히잡을 느슨하게 착용한 여성들 . 이들에게 히잡은 하나의 패션 도구다 .  하지만 이란에는 곳곳에 사복경찰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밖에서 히잡을 안 썼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 다 .  1960 년대 이란 여성들은 이미 미니스커트를 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멋쟁이 중의 하나였다 . 언제까 지 정부는 이런 톡톡 튀는 사람들을 가둬둘 수 있을 까 ?  하지만 이란에는 곳곳에 사복경찰이 돌아다니기 때문에 밖에서 히잡을 안 썼다가는 큰일이 날 수 있 다 .  1960 년대 이란 여성들은 이미 미니스커트를 입은 전 세계에서 가장 멋쟁이 중의 하나였다 . 언제까 지 정부는 이런 톡톡 튀는 사람들을 가둬둘 수 있을 까 ? 무슬림 여성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도르를 쓰고 다 니며 , 차도르를 벗으면 남자들이 싫어한다 ?
  • 42. 무슬림 안으로 차도르 체험  재미있는 것은 차도르를 쓴 우리를 본 이란 사람들 의 반응이었다 .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나중에는 우 리가 재밌는지 우리 사진을 찍고 막 웃었다 . 그런데 많은 여성들이 하는 말이 “이거 왜 썼니 ? 이거 별로야 .. 벗어 ! 딴 거 예쁜 거 많아”우리가 잘 몰라 서 썼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 여성들이 차도르 를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  차도르를 벗을 때 시원했지만 뭔가 아쉽기도 했다 . 이틀 쓴 내가 그럴진대 지금 불평하는 여성들도 자 유의 시대가 온다면 자기들이 원하는대로 바로 히 잡을 벗어버릴 수 있을까 ? 아니면 그냥 익숙하게 살아갈까 ?  무슬림을 알고 싶어 중동으로 떠난 나조차도 터키 에서 차도르를 쓴 여인들을 봤을 때 느낀 감정은 위 압적이다 , 폭력적이다 , 답답하다 등이었다 . 그러나 내가 직접 써보고 다른 사람들을 보니 그렇 게 무섭지 않았다 . 역시 뭐든지 그 입장이 되어 봐 야 아는 것 같다 . 무슬림 여성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도르를 쓰고 다 니며 , 차도르를 벗으면 남자들이 싫어한다 ?
  • 43. 무슬림 안으로 우리의 기도 체험이 실패한 까닭  우리는 무슬림 하면 생각나는 것이 , 하루에 5 번 메카를 향해 기도드리는 것이다 . 우리 팀도 그들 과 함께 기도를 하려고 마음의 준비를 해갔다 .  그러나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도 우리의 카우 치서퍼 사이드와 하메드들은 기도를 할 생각이 없 어보였다 . 시라즈보다 엄격하다는 이스파한에 가 도 마찬가지였다 .  자메 모스크에 갔을 때 , 남자들이 엎드려 있는 걸 보았다 . “ 아 , 열심히 기도를 드리는 구나” 가까이 가보니 그들은 모스크 그늘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 다 .  또한 이스파한 토론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 중 이슬 람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 이란에도 교 회가 꽤 있고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한다 .  이렇듯 의외로 이란을 비롯한 중동 국가에서 종교 가 삶에 차지하는 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이 우리를 놀라게 했다 . 오히려 매주 꼬박꼬박 교회에 가고 십일조를 드리고 성가대나 봉사활동을 다니는 우 리나라 기독교인들이 중동 사람들보다 훨씬 신실 하고 삶과 종교를 연관시키는 것 같다 .  중동에서는 운전중이라도 기도소리가 들리면 차에서 내려서 모두들 기도한다 ? 우리 생각보다 훨씬 세속적이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는 중동의 무슬림들
  • 44. 무슬림 안으로 라마단 , 금식하기 ?  우리가 요르단으로 들어갔을 때 , 막 이슬람 최고의 명 절 라마단이 시작되었다 . 라마단 때에는 이슬람 규율 에 따라 가난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기 위해 해가 떠 있는 동안 식사를 금지된다 .  우리도 요르단 친구 야잔과 함께 다니면서 해가 지기 전 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 그러나 더운 날씨로 떨어 진 입맛 그리고 끔찍했던 이란의 음식을 거부하면서 작 아진 위장 덕에 우리는 배가 많이 고프지도 , 힘들지도 않았다 . 다만 목이 마를 때에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해 안 보는 곳에서 조심스럽게 마셨다 .  문제는 해가 지고 난 후였다 . 마침내 먹은 요르단 전통 음식 만사프는 정욱 오빠와 강심 언니의 속을 뒤집어 놓 았고 마지막 날 터키에서 두 사람은 끙끙 앓아야 했다 . 그리고 우리는 야잔의 집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밤을 새야 했는데 , 무슨 라마단 음식을 이렇게 많이 주는 지 .. 자정을 넘겨가며 기름지고 단 음식들이 끊임없이 나왔다 . 야잔 말에 의하면 밤에 많이 먹기 때문에 라마 단 때 살이 찌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  밖에서 라마단을 축하하는 폭죽이 터지고 우리는 그렇 게 배고픔은 커녕 배가 터질 듯한 기분으로 다음날을 맞 았다 .  라마단 때 모든 무슬림들은 강제로 굶어야 한다 ? 윗사진은 빨리 7 시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야잔의 안타까운 표 정 . 우리를 데리고 하루종일 암만 관광을 다녔는데 물 한모 금 마시지 못했다 . 밑의 사진에서 마침내 마실 수 있는 시간이 되어 생수를 두 통째 비우고 행복해하고 있다
  • 45. 중동 사람들 속으로 에미넴 , 축구 , 군대 , 페이스북  ‘ 한국 드라마’ 열풍 외에 이란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가장 먼저 언급하는 것은 바로 얼마 전에 있었던 이란 과 한국 간의 축구 경기였다 . 사실 한국과 이란은 아주 오 래 전부터 아시아의 라이벌이다 . 남자들이 축구에 열광하 는 것은 우리나라나 이란이나 똑같았다 .  사실 중동 사람들은 서양 문화 , 특히 미국 헐리우드 문화 를 싫어할 거라는 편견이 있었다 . 그러나 젊은이들은 미국 영화와 음악에 열광했다 . 사이드는 에미넴과 리한나를 즐 겨 들었다 .  이란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남자는 군대를 의무적으로 2 년 다녀와야 한다 . 군대 가기 싫어하는 건 우리나라와 똑 같았다 . 군대 안 가고 버틸 거라는 친구도 있었고 , 대학원 생이라 군대를 미룬 친구 , 그리고 집에 돈이 많아서 군대 를 뺀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까지 ..!  “ 실크로드”에서도 언급했지만 , 이란에서는 페이스북이 금 지다 . 그러나 실제로 아라뷰 팀이 여행을 다니면서 만난 이란인들 중 페이스북이 없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 페이스북은 기본이고 왓츠앱에 트위터까지 .. 세계와 소통 하고 트렌드를 좇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의 특성은 우리나라 와 똑같았다 . 다를 게 전혀 없다 !  중동사람들은 서구 문화를 덮어놓고 싫어한 다 ?  중동 젊은이들은 과격하다 ?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중동의 젊은이들
  • 46. 중동 사람들 속으로  중동여성들은 철저하게 억압 받는 다 ? 이혼한 여자도 잘 살 수 있다  요르단에서 만난 야잔의 어머니는 오래전 야잔의 아버지와 이혼하셨다 . 흔히 우리는 중동 사람들은 이혼이 어렵고 특히 이혼한 여자는 가난하거나 힘 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  하지만 야잔의 어머니는 내가 만난 그 어떤 중년 여 성보다 품위 있고 유식하신 분이셨고 , 훌륭한 아 티스트셨다 . 아버지를 제외한 야잔의 가족은 고급 아파트에서 잘 살고 있었다 . 이란엔 ‘공대 아름이’가 없다  마숙메에겐 세명의 여자 형제와 한 명의 남자 형제 가 있었다 . 여자 형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큰언니 는 변호사 , 둘째 마숙메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 셋 째 동생은 엔지니어 , 넷째 동생은 광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이었다 . 시라즈에서 만난 마르잔의 직업도 엔지니어였다 .  테헤란 대학교 정치학과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라 고 한다 . 이렇듯 이란에서 여자라고 못 가지는 직업 은 없다 . 오히려 우리나라보다 이공계에 대해 여성 들이 느끼는 거부감이 적다 .
  • 47. 가정적인 중동 남자들  옛날 우리나라 남자들보다 더 가부장적이고 여자 를 억압할 거 같은 중동 남자들 . 우리는 이 편견을 깨기 위해 중동에 갔지만 중동 남자들의 다정함은 상상 이상이었다 .  우리의 세번째 서퍼 아크바르씨는 직접 차를 타오 거나 , 부엌에 들어가서 식사 후 뒷정리를 했다 . 또 처가에도 아주 잘하고 처형 , 그러니까 마숙메 의 언니와 동생들에게도 친근하게 대했다 . 이스파 한의 마흐디의 집에서도 우리에게 차를 가져다 주 시는 건 늘 마흐디의 아버지셨다 .  중동을 여행하면서 항상 보는 것이 아버지가 아이 를 안거나 데리고 있는 장면이다 . 아이들은 아버 지를 어려워하지도 아버지에게 혼나지 않는다 .  이런 면들을 봤을 때 중동 남자가 가부장적이라는 것은 정말이지 편견이다 . 사우디 아라비아 같은 나라는 모르겠다 . 하지만 우리가 여행한 이란 , 요 르단 , 터키의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친절하고 , 아 이에게 다정하며 , 가정일도 하고 남자다울 땐 남 자다운 멋진 ‘상남자’였다 . 중동 사람들 속으로 중동 남자들은 다 가부장적이 다 ?
  • 48. 중동 사람들 속으로  중동여성들은 철저하게 억압 받는 다 ? 4 명의 부인이란 있을 수 없다  내가 중동에 간다고 했을 때 친구들이 나를 이렇게 놀 렸다 . “ 너 중동사람의 100 번째 부인 되는 거 아니 냐 ?” 그러나 이란에서 두 번째 부인을 둔다는 것은 도덕적 으로 잘못되고 타락한 행동이라는 관념이 이란 사람들 에게 깊이 박혀 있다 .  게다가 가정에서 여성의 힘이란 상상 이상으로 강하 다 . 요르단에서 만난 파디 아저씨는 국방부 요직에서 근무하셨음에도 불구하고 , 아내에게 차를 빼앗겨 가 끔씩 딸을 학원에 데려다주러 아내에게 차를 ‘빌리는’ 수준이니 .. 적극적인 중동 여성들  중동 여행 책 가이드에 보면 “남성들은 중동 여성에게 말 걸지 마세요 . 여성들이 당혹스러워 하고 , 괜히 중동 남 성들과 시비가 붙을 수도 있습니다 .” 라고 나와 있다 . 확실히 오빠들은 중동 여성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 왜냐 면 그쪽에서 먼저 걸어왔기 때문이다 !  중동 여성들은 상상 이상으로 적극적이었다 . 우리를 보 자마자 달려와서 ‘어느 나라에서 왔냐’ , ‘ 이란을 어떻게 생각하냐’ , ‘ 이란 여자 어떠냐’라고 물었다 . 이런 일이 여행하는 내내 있었다 .
  • 49. 중동 사람들 속으로 친절한 중동 사람들  앞에서 몇번이나 강조했지만 사람들이 정말 친 절하다 . 길을 물어보면 택시까지 꼭 태워서 보내준다 . 때로는 우리가 묻지 않아도 먼저 와서 가르쳐주 려고 하고 우리와 가까워지려 했다 .  오기 전에 사기를 당하거나 안좋은 상황에 몰릴 까봐 걱정한 것이 미안하거나 무색해질 만큼 중 동 사람들은 순수하고 다정했다 . 중동 사람들은 배타적이 다 ?
  • 50. 중동에 부는 한류바람 사실 아라뷰팀도 철저한 조사를 거치고 예상도 했지만 , 이 렇게 심할 (?) 줄은 몰랐다 . 바로 중동에서의 한국 인기 다 . 빅 히트를 친 ‘대장금’ ,’ 주몽’은 물론 그냥 한국 드라마 채널 자체가 자막만 입혀져 그대로 이란 / 요르단의 채널에 방 송되고 있었다 . 아예 MBC 가 그대로 자막을 달고 나오 는 채널도 있었다 . 중동 사람들은 그야말로 안방에서 한국 문화를 접하는 셈이다 . 요르단에서 만난 카우치서퍼 야잔의 여동생은 우리나라 에서 저조한 시청률로 급하게 막을 내렸던 “아가씨를 부 탁해”의 팬이었다 . 앞에서 언급한 아크바르씨네 두 처제들은 말할 것도 없 다 . 마흐디는 소녀시대의 Gee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즐거워했 고 , 마흐디의 여자친구 ( 중 하나 ) 는 동방신기의 엄청 난 팬으로 우리에게 동방신기에게 전해달라고 선물을 주었다 . 그녀는 한국어를 하나도 할 줄 모르지만 유튜 브에 가면 페르시아어 자막이 입혀진 동영상을 전부 구 할 수 있다고 한다 . 이렇듯 중동에 부는 한류바람을 경험한 우리는 한류 컨텐츠 가 전 세계에서 통한다는 사실을 느끼며 뿌듯함을 느끼 는 한편 , 이게 단지 우리나라의 연예 컨텐츠 수출이 아 니라 이란과 대한민국의 쌍방향 문화 교류의 활성화 그 리고 나아가 두 양국간 사이를 앞당겼으면 하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 동방신기 (TVXQ) 를 가방에 수놓은 마흐디의 여자친구 동방신기의 이란 포스터 날개가 인상적이다
  • 51. 중동에 부는 한류바람 우리나라 기업 브랜드의 힘도 실감했다 . 아무리 구석진 곳엘 가도 <SAMSUNG> 의 파란 로고가 붙여져 있 었다 . 그리고 이란 사람들이 우리 생각보다 한국에 대한 관심 이 지대하고 한국에 대한 이해가 다른 나라들 보다 깊다는 사실에 굉장히 놀랐다 . 많은 나라를 여행했 지만 보통 일본인이거나 중국인인줄 알고 , 한국이 라는 나라를 잘 모른다 . 하지만 이란인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다음에 나오 는 말은 “ North or South?” 였다 . 그리고 우리나라 브랜드나 역사에 대한 것도 굉장히 잘 알고 있었다 .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어떤가 . 서구가 주입한 왜곡되 고 편향된 시선으로 이란을 북한과 같이 “악의 축”으 로 보고 있을 뿐이다 .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진행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이란 인들에게 무한한 친절을 받은 사람으로서 꼭 돌아가 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을 바로잡을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
  • 52. 이란 사람들에게 카우치 서핑이 가지는 의미 1970 년대에 찍혀진 이란 사진 . 미니스커트에 세련된 스타일을 뽐내는 여자들이 보인다 . 하지만 현재의 이란은 모든 여성과 심지어는 외국인까지도 히잡의 사용이 의무화 되어 있다 . 1979 년 이맘 호메이니 혁명 이후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이란 국민들의 일상 생활이 얼마 나 급격하게 변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부분이다 . 하지만 정치와 제도가 변한다고 해서 사람들의 의식까지 같은 속도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 그래서인지 중년 이상의 어른들의 경우 생각 이 매우 열려있고 , 자유주의 시대를 살던 당시의 영향 탓인지 지금 세대의 젊은이들보다 다양한 문화에 더욱 친근감을 표현한다고 한 다 . 그런데 그런 부모님의 영향 아래에 자라난 지금의 젊은 세대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더욱 다양한 세상을 만나고 소통할 기회가 없 는 상황이라고 한다 . 우리의 호스트였던 93 년생의 사이드 친구는 젊은 남성의 경우에 돈이 매우 많지 않은 이상 병역을 마치기 전에는 해외를 나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고 했다 .
  • 53. 페이스북 사용도 정부가 금지한 상황이고 , 언론이나 일상 생활이 검열 당하는 이란 사람들에게 카우치 서핑은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 먼저 그들이 직접 해외를 나가지 않고도 넓은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게이트였고 , 내부적으로는 " 더 넓은 세계에 대한 관심 " 이라는 공통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의 동호회 역할을 하고 있었다 . 그래서인지 우리가 팀 소개를 하고 , 우리의 이란 방문 목적을 카우치 서핑 사 이트에 업로드했을 때 , 수많은 이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연락을 받았었다 . 더욱이 한류에 힘입어 다들 한국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 우리가 공항 이미그래이션을 지날 때 조차 직원분들은 환하게 웃으며 우리에게 주몽 , 소서노를 외치곤 하셨다 . 그렇게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공항 분위기는 처음이었다 . 그래서일까 우리들은 환한 마음으로 이란에서의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 이란에서 4 일 동안 함께 토론을 하고 여행을 하며 만난 Hamed, Saeed, Marjan, Kiyan, Terme, Asal, Nazanin, Amin, Mahdy 등의 친구들은 카우치 서핑을 통해 오래 전부터 이미 독일 , 미국 , 중국 , 영국 등 다양한 세계를 만나고 있었다 . 그래서인지 식견이 매우 넓고 , 다른 문화 도 관대하게 수용하는 바다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 서로의 삶에 대한 질문을 나누며 우리는 양국의 정치 , 제도적인 측면이 극적이다 싶으 리만큼 다름에도 불구하고 우리네의 삶은 매우 닮았다는 것을 깨달으며 더욱더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었다 . 이방인과 손님을 귀하고 반갑게 여 기는 관습 때문인지 , Hamed 같은 경우는 우리가 그를 방문하겠다고 했을 때 , 많은 이란 친구들이 우리를 함께 보고 , 놀고 싶다고 말했었고 그래서 우리는 이란에서 일종의 갱처럼 늘 10 여명의 무리와 함께 시끌벅적한 나날을 보낼 수 있었다 . 같은 지역 카우치 서핑 회원들이 여럿 모 여 우리를 반겨주고 , 함께 식사하고 , 여행하면서 우리와 그들뿐만 아니라 , 그들도 서로 소통하며 소소한 즐거움들을 누려가고 있었다 . 10 대 학생 , 60 세 할아버지 , 엔지니어 , 박사 , 대학생 , 인공지능 연구원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서로의 나이 , 배경을 초월하여 함께 떠 들고 웃는 모습이 ,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마저 훈훈하게 만들었다 . 게다가 자연스럽게 남녀간의 교류도 오갈 수 있기에 사교의 장 노릇도 하고 있었다 . 이란 사람들에게 카우치 서핑이 가지는 의미
  • 54. • 중동 지역은 역사적으로 주요 강대국 사이에서 오랜 각축전장이 되어 왔다 . 그리스 , 로마 , 페르시아 , 아랍 , 포르투갈 , 터키 , 영국 , 미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국가 와 문화권이 이곳에서 첨예한 대립을 하기도 했었다 . 특히 중동의 페르시아만은 아시아 , 아프리카 , 유럽 3 대륙과 대서양 , 인도양 , 태평양 등 3 대양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해왔다 . 제국주의 시대에는 무역 및 교통의 중심지로 , 1-2 차 세계 대전시에는 전쟁물자 보급로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로 , 그리고 오늘날은 세계 경제의 대동맥이라 할 수 있는 석 유 수송로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 따라서 페르시아만은 강국들의 이해 관심 지역으로 전 략적 가치가 높은 위험지대이다 . • 세계은행에 올려진 2009 년 pewforum 전 세계 무슬림 인구 조사 데이터에 따르면 2009 년 전세계 무슬림 인구는 15 억 7 천만 명으로 전 세계 200 여 국가에 퍼져있으며 전 세계 인구의 23% 를 차지하고 있다 .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무슬림 인구의 60% 는 아시아에 거주하고 있고 , 20% 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거주하고 있다 . 2011 년엔 향후 20 년 동안 무슬림의 인구가 비무슬림에 비해 두배 정도 빠른 속도로 증가할 것으로 예측된다 . CIA factbook 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 성장률은 연간 1.12% 인 것에 반해 무슬림이 대다수인 국 가들의 인구 성장률은 1.8% 이다 . 따라서 2030 년엔 전 세계 인구의 26.4% 이 무슬림이 된다는 전망이다 . 최근 중앙 및 동부 유럽으로의 무슬림 이민 인구 증가 및 유럽 내에 정 착한 무슬림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있고 , 프랑스 내 무슬림 여성의 히잡 착용 논란 같이 무슬림과 비무슬림간의 상이한 문화 차이로 인해 갈등이 증폭되고 있는 실정이다 . • 그 동안 폐쇄적인 문화와 정권을 유지해 왔던 중동에도 아랍의 봄을 비롯한 변화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 여성 인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움직임 , 스마트몹 같은 대중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 그와 동시에 중동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앞으로 카페베네를 비롯한 더 많 은 국내 기업이 이곳에 진출하고 있고 , 외국의 관심 또한 증대되고 있다 . 알면 이해하는 것이고 , 모르면 오해하는 것이라는 말처럼 중동에 대한 이해의 결여는 앞으로 수많은 오 해와 갈등을 낳을 것이다 . 2030 년 사회의 주역이 될 우리 모두 중동에 더욱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 중동의 가치 및 중요성 중동 여성 인권 향상 움직임
  • 55. 지브릴의 중간보고 지금 이 시점에서는 ‘아쉽다’라는 감정밖에 들지 않는다 . 돌이켜보면 , 하나도 쉽게 풀린 일이 없었다 . 우리가 준비했던 활동을 위해서도 , 이란 입국이 가장 중요한 문 제였는데 , 일이 잘 풀렸기에 망정이지 , 이란의 시라즈 공항에서 무턱대고 앉아있던 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떨린다 . 어디 그뿐이랴 , 택시기사들은 어찌나 운전을 험하게 하고 , 중동 남성들은 왜 이렇게 무서운지 , 생 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 며칠 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한 데다가 , 우리 팀원 4 명이 땀 뻘뻘 흘 리고 나서 좁디 좁은 방에서 부대껴서 잘 땐 , 정말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밖엔 없었다 . 열악한 환 경에서 벗어나서 겨우 숨 돌릴 만 하면 , 몸이 아팠고 , 내가 괜찮아지면 친구들 상태가 나빠지고 , 정말 어려 웠다 . 그러나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이 ‘아쉬움’이라는 것은 , 그곳에서 우리가 했던 모든 일들이 가치가 있었음을 반증 하지 않나 싶다 . 게다가 사람에 대한 그리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건만 , 이젠 외국인 친구들 의 웃음짓는 표정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 사이드 , 마흐디 , 무함마드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아쉬움’이라는 감 정의 제공자라고 생각한다 . 그리고 함께한 아라뷰 팀원 , 정욱 , 강심 , 소현 모두 최고의 팀원이었다 . 친한 친구와 짧게 여행을 다녀와 도 한 번은 싸우게 되는데 , 우리 아라뷰 팀은 13 박 14 일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기간동안 단 한번도 싸 우지 않고 서로를 보조하면서 활동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가장 좋았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 1 년 전에는 다들 얼굴도 모른 채 각자 갈 길을 걸었을 사람들이 ,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라는 기회를 통해 의기 투합하여 이렇게 무사히 활동을 끝마쳤다는 것이 , 정말 신기하다 .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 아직도 현재진행형이기에 , 소감이 아닌 ‘중간보고’ 정도로 해 두겠다 .
  • 56. 라일라의 후기 • 한 명의 친구를 사귀는 일은 하나의 세계가 걸어들어 오는 일이라고 한다 . 13 박 14 일이라는 짧은 여정 동안 우리는 3 개국을 돌았지 만 , 우리가 만난 세계는 20 여개가 넘는다 . 그 세계들이 모두 각양각색으로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 그 환한 빛 덕분에 우리는 더 욱 많은 것들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매우 소중한 기회를 얻었다 . 공간은 사람이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 유구한 역사와 대국의 기질을 가지 고 있던 페르시아의 후예들이 만든 이란이라는 공간은 우리에게도 호연지기를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 생동감이 넘치는 표정으로 느긋하게 앉아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 기다려주고 , 배려해주는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예뻐보였는지 모른다 . 어디를 가지 않더라도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소통하는 것 자체가 기쁨이었다 . 성경에서 다양한 위인들이 거쳐간 발자취를 비롯해 로마인 , 오스만 투르 크족 등의 흔적이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요르단은 , 여전히 다양한 문화의 교차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 암만에서 홈스테이했던 Yazan 네 어머니께서는 요르단이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분쟁 국가의 피난민들을 대부분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유입되고 그로인한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고 하셨다 . 하지만 피난민들을 외면할 수 없기에 이 딜레마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 르겠다며 고뇌하고 계셨다 . • 우리가 그 곳 땅을 밟기 전에 요르단은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분쟁을 비롯한 중동 갈등에 있어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국가였고 , 이 란의 경우 시아파 및 정교 일치 사회로 인해 때로 극단적인 행보로 국제 사회의 주목을 받는 국가에 불과했다 . 우리는 더 넓은 세계를 만나기 위해 뉴스와 미디어를 접하지만 , 미디어라는 프레임은 이해관계로 복잡하게 얽혀 있다 . 특정한 사건을 전달하는 현지 특파원 조차도 사건의 윤곽을 알지 못하더라도 기존의 틀에 맞춰 사건을 재구성해 보도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 그 동안 우리는 코끼리의 가장 못난 부분만을 돋보기 안경을 쓰고 보는 것처럼 중동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입국 전까지도 이란과 터키에서 발생한 사 건 , 사고 보도 등으로 인해 걱정을 많이 했었지다 . 그러나 우리가 몸소 느껴본 중동은 여유가 넘치고 , 따뜻한 정과 배려가 오가는 휴 머니스트들이 사는 세상이었다 . 어쩌면 내가 종종 한국에서 꿈꿨던 유토피아가 그 곳에 숨어있진 않을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가 없었다면 , 용기를 내서 분쟁과 테러로 점철된 것처럼 보이는 중동이란 나라에 덥썩 뛰어들 수 없었을 것이다 . 이제 중동은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 내가 중동이란 이름을 부를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준 동원육영재단에 진심으로 감사드린 다 . 이 꽃을 잘 가꾸기 위해 나의 열정과 재능을 쏟고 ,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 2030 년 무슬림이 전 세계의 26.4% 가 되는 그날 나는 중동과 한국의 교량 역할을 하면서 , 중동과의 첫 만남 , 뜨거웠던 지난 7 월을 그리고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 러를 기억할 것이다 .
  • 57. 여행을 마치며 by 무함마드 여행을 마치며 ..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2 주간의 여행이 막을 내렸다 . 짧은 준비 과정 속에서 여러 시행 착오를 겪었고 출발하는 그 순간까지 걱정 을 많이 했던 여행이었지만 , 우리 팀원들 모두의 운이 좋았던 덕분인지 큰 사고 없이 무사히 여행을 끝마칠 수 있었다 . 우리가 선택했고 여행했던 중동은 아직 우리나라의 많은 여행가들에게는 낯선 곳이다 . 특히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점을 절실하게 체감 할 수 있었다 . 중동에 제대로 된 여행 책 하나 없는 상황이었고 정보는 오직 인터넷을 통해서 , 그것도 매우 제한적으로만 얻 을 수 있었다 . 또한 중동을 간다고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말할 때 마다 중동이 절대 위험한 곳이 아니라는 점을 설명해야만 했다 . 하지만 중동이 절대 위험하지 않은 곳이라고 설명 하면서도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곳 에서 2 주 동안 버티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 그러나 이 모든 걱정과 불안을 뒤로하고 시작한 여행은 우리들에게 잊지 못 할 기억들을 선물해 주었다 . 우리의 여행은 결코 편한 여행은 아니었다 . 시작부터 비자 문제 때문에 여러 문제가 생겼고 , 이란의 살인적인 더위와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들 때문에 음식 조차 마음껏 먹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 또한 무리한 스케줄로 인해 체력적으로도 많이 힘들었고 , 제대로 씻지도 못했고 잠도 제대로 된 장소에서 잔 것이 손에 꼽을 정도로 강행군을 펼쳤다 .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나 즐거웠던 여행이었다 . 우리가 만났던 한 사람 한사람 모두 우리에게 잊지 못할 추억들을 남겨주었다 . 우 리는 그들에게 낯선 이방인이었지만 그들은 우리를 가족처럼 대해주었다 . 우리가 그들에 대해 관심도 별로 없고 잘 모르는 만큼 그 들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 그들은 우리에 대해 과분할 만큼 많은 관심과 호의를 배풀어 주었다 . 우리의 여행은 사람들 로 가득 차 있었다 . 여행은 항상 무언가를 남긴다 . 그리고 이번 중동 여행 역시 나에게 많은 것들을 남겨 주었다 .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 그리고 만 남을 통해 얻은 추억들과 새로운 생각들은 나를 한 단계 성장하게 만들어 주었다 . 비록 우리의 짧았던 여행은 끝이 났지만 , 2 주 동안의 좋았던 기억들과 깨달음을 통해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에 한 발자국 더 다가간 것 같다 . 이제부터가 진짜 여행의 시작이란 마음가짐으로 한국에서 내가 여행을 통해 얻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중동에 대한 편견이 가득한 우리나라를 변화시키는 그 시작점이 바로 이번 여행이었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더 많은 사람 들이 중동에 대한 관심을 갖고 서로가 서로를 올바른 시각으로 바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
  • 58. 파티마의 여행노트 내가 히잡쓰는 걸 어려워하는 걸 지나가다 보고 도와준 여성 . 중동 사람들의 인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 사실 가기 전까지 많은 고민과 걱정이 있었다 . 피랍 당하면 어쩌지 (?) 하는 무거운 고민부터 피부가 엄청 탈텐데 어떻게 되돌려야 하나는 고민까지 .. 그리고 내가 안전하다고 부모님 , 친구들 , 그리고 동원 사람들까 지 설득했지만 과연 자신이 없었다 . 나 또한 책이나 블로그에서 읽은 것이 다였으니까 . 사실 나 또한 피상적인 정보만을 접한 채 ‘ 중동은 안전하다니까 ? 그리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거 다 편견 이에요’ 라고 외치면서 비행기를 탔지만 , 나 자신도 편견과 두려 움에서 전혀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 중동은 ‘정말 안전 하고’ , ‘ 정말 생각과는 달랐다 .’ 짧다면 짧은 내 22 년 인생은 이 13 박 14 일 전과 후로 나뉜다 . 이 기간 동안 나는 많이 받았다 . 세상을 넓게 보는 눈과 , 남들이 가지 않은 곳을 간 담대함 , 중동 사람들로 부터 전해 받은 따뜻한 마음 , 앞으로 더 많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결심까지 .. 오기 전까지 미래에 대해서 많이 방황한 나지만 이 여행을 통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는 생각이 든다 . 이 자리를 빌어 나에게 이렇게 소중한 기회를 준 동원 글로벌 익스플로러 그리고 못난 동생을 데리고 여행하느라 너무너무 고생한 민규오빠 , 정욱오빠 , 강심언니에게 무한한 감사와 사랑을 전한 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