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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 Winter | No.26
www.nationaltrust.or.kr
ISSN 1976-2577
2013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정기총회 & 시민공모전 시상식
계사년 새해를 맞아 회원님들을 모시고 지나간 한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한해를 계획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정기총회에 이어 2부는 제10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이곳만은 꼭 지키자’시상식을 진행합니다.
내셔널트러스트가 발굴한 아름다운 자연환경 그리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확인하시고,
2013년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31-29
●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4번출구) 도보 10분/ 4호선 명동역(1번출구) 도보 10분
● 자동차: 남산공원길 - 대한적십자사 앞에서 U턴 - 교통방송국(TBS)를 끼고 우회전 - 교통방송국 정문에서 직진철
● 버 스: 노랑버스 02/ 초록버스 0013, 0211/ 파랑버스 104, 105, 140, 263, 604
(버스하차하는 곳: 명동입구, 한옥마을, 대한극장(퇴계로3가))
● 일시: 2013년 1월 26일(토) 오전 11시
● 장소: 문학의집서울 산림문학관
● 주요 프로그램
○ 1부 (11:00) 2013년 정기총회
대표인사
2012년 활동 영상보고
감사패 수여
2012년 사업 및 결산보고
논의안건 보고
회원제안
○ 오찬(12:00)
○ 2부 (12:45) 제10회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
‘이곳만은 꼭 지키자’시상식
환영사
축사
경과보고
수상작 소개
시상식
기념촬영
발행일 2013년 1월 2일
발행인 김홍남 양병이
편집위원장 이은희
편집위원 강동진 남준기 서왕진 안창모 오충현
유상오 윤인석 임정진 전은정 조명래 한동욱
기획 허주희
편집인쇄 (주)디자인내일
www.nationaltrust.or.kr
페이스북 www.facebook.com/trustkorea
트위터 @ntrustkorea
목차사진 두루미
사진 도연스님
발행처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11길 20 우리빌딩 4층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4가 72-4번지 우리빌딩 4층)
전화 02-739-3131
전송 02-739-9598
1년 정기구독료 20,000원
(정기구독료는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글과 사진, 그림은 무단 전재하거나 복제하여 사
용할 수 없습니다.
※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기증과 기부를
통해보존가치가높은자연환경과문화유산을확보하여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입니다.
C O N T E N T S
2013년 겨울호
집중과 조명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영국NT 이야기
근대문화유산, 삶의 향기를 찾아서
내셔널트러스트 여행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자연이야기
회원인터뷰
내셔널트러스트 추천도서
품안에
신년인사
내셔널트러스트 소식
내셔널트러스트 알림마당
후원해주시는 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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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도요・물떼새 나일 무어스 | 새와 생명의 터 대표, 국제 넓적부리도요 복원 대책위원
서해안의 지속가능한 보전 방법과 대안 모색 주용기 | 전북대학교 전임연구원
최재천 교수 진행 이은희 |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유일한 21세기 유산, 힐리스(Heelis) 조명래 | 단국대 교수, 내셔널트러스트 이사
유교적 질서에서 벗어나 자연을 품은 주택, 김석윤가옥 안창모 | 경기대 건축설계학과 교수
과거로 가는 계단 읍천리 와상절리 서종철 | 대구가톨릭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민초의 손에 잡힌 농기구자루 물푸레나무 고주환 | 작가 겨울
사냥되는 Water Deer, 고라니 도연 | 스님
NT블로그팀의 활약을 보여드릴게요 최상미 회원님
‘우리’를 꿈꾸는 촌장 최재정 회원님
물건의 재구성 전은정 | 조경가, 조경포레(주) 소장
새 생명이 움트는 매화마름 논의 겨울 박도훈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자연유산 부장
온새미로 헌책방을 가다 박수빈 | 온새미로 청소년 기자단, 용인외고
2013년 NT회원님들이 내셔널트러스트에 보내는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소식
공지사항
2012년 9월 ~ 11월 후원내역
표지붉은어깨도요새
사진 나일무어스, 새와 생명의터
4 | 2013년 겨울호 | |
우리는 조수와 계절의 리듬에 맞춰 박차 오르고 내려 앉는 도요・물떼새 군무를 감상
할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인가? 우리는 도요새 노래의 환희와 의미를 이해할 마지막 세
대가 될 것인가?
대한민국에는 약 60여종의 도요・물떼새가 출현하는데 이는 국내에서 기록되는 모
든 조류 종의 10% 이상에 해당된다. 즉 우리나라에서 도요・물떼새는 가장 다양한 조
류종 중 하나인 셈이다. 참새만한 좀도요에서부터 약 60cm의 몸집을 지닌 알락꼬리
마도요에 이르기까지 도요・물떼새 종들은 나름의 특성과 고유함을 지니고 있다. 매
우 섬세한 부리 끝으로 갯벌 표면의 먹잇감을 집어내는 짧은 부리를 지닌 종이 있는가
하면, 날렵하고 가느다란 부리로 얕은 수면에서 작은 물고기나 새우를 잡는 종이 있기
도 하며, 굴을 파고 숨어든 게나 벌레를 끄집어내도록 위쪽으로 또는 아래쪽으로 휘어
진 부리를 지닌 것들도 있다. 이렇듯 특수화된 부리와 섭식 행태로 몇 종들은 홀로 먹
게를 먹고 있는 알락꼬리마도요 ⓒ 새와 생명의 터도요물떼새 무리 ⓒ 새와 생명의 터
한국의 도요・물떼새
나일 무어스 | 새와 생명의 터 대표, 국제 넓적부리도요 복원 대책위원
이 활동에 치중하거나, 붉은어깨도요와 같은 종들은 먹
이가 풍성한 갯벌을 찾아 수만 개체의 무리가 한 곳에
모여 집단적인 먹이활동을 펼친다.
각 종의 생명학적이고 생태학적인 이유에 의해 결정
된 고도의 특수성과 풍부한 생물군의 다양성은 도
요・물떼새가 소중한 생태지표종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존재나 부재, 풍부도나 희소성은 바로
서식 습지의 형질과 건강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것
이다. 몇 종의 물새류와 도요・물떼새 종은 먹이가 풍부
하고 안전하게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장소에서 무리 지어
남아있다. 게, 벌레, 갑각류와 어류가 가득하고 생산성
이 풍부한 습지일 때만 다양한 종의 도요・물떼새들이
찾는다. 형질이 떨어지고 생명력이 없는 습지에는 그들
이 찾아오지 않는다.
새들과 서식지와의 연관성이 이렇듯, 국제적으로 가
장 중요한 습지 파악을 위해 람사르 협약에서는 도
요・물떼새와 타 물새류를 사용한다. 국제적으로 중요
한 습지로서 보전 우선 지역을 파악하는 데에는 천연의
복합적이며 광활한 곳을 정하게 마련이다. 이 곳 국내에
| ✽집중과 조명 |
서 우리가 지닌 가장 중요한 천연 습지는 바로 갯벌이
다. 자연적으로 흘러드는 하천의 양분으로 갯벌은 풍요
로워진다. 갯벌은 수만 개체의 도요・물떼새와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부양하며, 탄소 흡수 및 폭풍 해일을
잠재우고, 해수면 상승 시에는 천연 제방의 역할 등의
환경적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도요・물떼새와 서식지와의 명료한 관계는 2004년
새와 생명의 터가 창립된 이후의 활동을 통해서도 증명
해왔다. 지난 15년간 국내에서 최소한 도요・물떼새 21
종이 람사르가 규정한 국제적으로 중요한 군집을 보이
는 것으로 본 단체의 조사에서 밝혀졌다. 21종 모두는
한반도의 극동지방에서(일부는 알래스카까지) 번식하
며, 월동을 위해 남동아시아와 오세아니아까지 멀리 이
동한다. 한국을 통과하는 이동 기간 중에 21종 모두가
갯벌에서 서식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개체군 감소를 급
격하게 겪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 흑꼬리도요의 90%
미만과 붉은어깨도요의 80% 미만이 국내에서 사라진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이렇듯 급격한 개체군 감소의 이유를 단언하기는 어
렵지 않다. 유사 이래 국내에서는 갯벌의 75%를 이미
잃었으며 이렇게 없어진 갯벌의 3분의 2는 최근 30년간
의“매립”으로 인한 것이다. 국내의 주요 하천 또한 댐
으로 막혔으며, 지난 십 년간 송도(인천)와 남양・아산
만 그리고 새만금의 습지가 람사르가 규정한 국제적인
주요 습지에 부합하는 지역임에도 방조제로 막혔다.
새만금은 단일 지역으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요・물떼새 지역이며, 매년 57만 개체로 추정되는 도
요・물떼새가 서식하고 있다. 엄청난 개체 수를 보이며
서식하는 도요・물떼새의 종 다양성이 시사하는 것은
바로 이곳의 천연적인 생산성과 더불어 복합적인 생태
계로서의 국제적인 중요성이다. 새만금의 방조제 공사
가 진행 중인 동안에 북향 이동 중인 도요・물떼새의 개
체 수는 2000년의 315,000개체에서 2006년에
180,000개체로 추락하였으며, 2008년에는 겨우
51,000개체만이 기록되었다. 해당 지역의 개체 수는 매
년 연이어 떨어지고 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동안‘새와 생명의 터’와 호주・뉴질랜드 도요새 연구
단이 공동 시행한‘새만금 도요・물떼새 모니터링 프로
그램(SSMP)’은 새만금 지역에서 추방당한 도요・물떼
새가 다른 지역에 정착하지 못했음을 명확히 밝혔다. 말라버린 갯벌에서 그들은 먹이
를 찾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요・물떼새들은 끔찍하게 죽어 나간 것이다.
SSMP조사 및 이동경로 상의 유사 프로그램과 동아시아-대양주 이동경로 파트너
십(EAAFP)과 같은 기구를 통해 공유한 자료에 근거하여, 이제는 보다 높은 차원의
과학적 합의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과 중국에서의 대규모 매립은 도요・물떼새
감소를 몰고 온다. 2012년 IUCN(세계자연보전연맹) 보고서는 해당 이동경로 상의 도
요・물떼새 감소는 지구상 다른 어떤 조류 종의 감소보다도 그 감소 비율이 훨씬 높음
을 알렸다. 한 때는 높은 개체 수로 새만금과 낙동강 하구에서 수 백 마리의 무리가 발
견되었던 넓적부리도요는 매년 26%의 감소율로 사라지고 있다. 대략적인 지구상 전
개체군이 고작 400개체 정도이다. 새만금 등의 이전 서식지에 조수가 유입되도록 복
원하는 것과 동시에 주요 서식지를 함께 보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야생에서
이들은 약 2020년쯤에 완전히 멸종할 것이다.
넓적부리도요를 비롯한 타 도요・물떼새종의 멸종이 단지 탐조인과 자연 애호가들
이 겪을 손해일까. 이것은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천연 자산인 습지의 소멸을 나타내
는 신호이다. 이것은 갯벌에 서식하는 방대한 생물종의 멸종과 감소를 알리는 신호이
며,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바로 국내의 보전 정책과 실천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임을 잊
어서는 안될 것이다.
※ 필자가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새와 생명의 터’는 한국 광역의 황해생태권역에 서식하
는 조류와 서식지의 보호에 공헌하고 있다.
5| 2013년 겨울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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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전갯벌의 조개잡이 사진 남준기
해양보호구역 현황
서해안의 지속가능한
보전 방법과 대안 모색
주용기 | 전북대학교 전임연구원
우리나라의 연안습지를 포함한 해양은 계속되는 갯벌
의 간척과 매립, 강 하구둑 건설, 인공적인 해안선의 증
가, 해사 채취, 해안쓰레기와 오염원 증가, 기름유출 증
가 등으로 위협에 처해 있다. 특히 간척과 매립은 연안
습지의 생물다양성 감소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년 보호구역을 조금씩 확대하는 방식 보다는 북해
연안의 와덴해 3개국(덴마크, 독일, 네델란드)이 공동
으로 전체 갯벌과 연안을 람사르 습지와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것처럼 이제라도 한국의 연안습지 전체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일부 개발이 불가피할 때만 면밀한 조사와 이해당사자간 협의를 통해 해양생태
계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안을 세우면서 일부 사업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이는 2009년 3월, 한국의 국토해양부와 와덴해 3국의 장관들이 체결한 갯벌
보전 양해각서(MOU)를 잘 이행하는 신뢰성 있는 자세이다.
더욱이 여러 관련 법과 제도의 개선이 절실히 요구된다.‘습지보전법’과‘연안관
리법’이 1999년에 제정되고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제정되었던‘공유수면매립법’을 비롯한 각종 개발과 관련된 법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보다는 간척과 매립을 더욱 우선시 하는 정책이
| ✽집중과 조명 |
계속되고 있다. 연안습지와 해양환경 관리 전문 부서인 해양수산부를 해체하여 해양
환경보전 부서를 개발부처(당시 건설교통부)에 통합(현재 국토해양부)시켜 버렸다.
이에 따라 해양환경보전 업무가 우선순위에서 차선으로 밀려 개발사업이 더 우선시
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2010년 말까지 제3차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2012년~
2021년)과 2011년 초까지 제2차 연안통합관리기본계획(2011년~2020년)과 2011년
말까지 제2차 국가습지보전기본계획(2012년~2016년)을 수립했다. 그런데 이들 계
획에는 여전히 연안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수립되었다.
따라서 어떠한 연안습지의 훼손행위도 중단하고, 연안습지 파괴를 허용하는 공유
수면매립법 등 관련법 등을 개정 또는 폐기해야 하며, 환경영향평가 제도도 강화되어
야 한다. 특히 야생동식물보호법과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그리고
습지보전법은 해양과 연안습지를 실질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강력한 법이 되도록 개정
하고,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지역 뿐만이 아니라 국내의 모든 습지의 보전과 현명
한 이용을 위한 정책이 적극 수행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모든 연안습지의 정기적인 모니터링과 다양한 보전 및 인식증진 사업
에 적극적으로 예산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람사르 협약의 결의문 X.13항은 람사르습
지와 새만금간척지, 습지보호지역, 습지가 보함된 생태계보호구역에 대해 국제적으
로 중요한 이동물새들의 개체수 변화와 다른 생태학적 영향에 대해 조사보고서를 람
사르 사무국에 보고하도록 했다. 따라서 이를 올바로 이행하고, 다른 전국의 연안습지
에 대해서도 이동물새들의 서식실태와 생태학적 변화에 대해서도 장기적이고 적극적
인 모니터링이 시행되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해양생물종 보전과 복원, 서식지
관리・보전과 복원, 현명한 이용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모니터링을 할 때는 예산
을 더욱 적극 지원하여 광범위한 지역이 시기적절하고 정기적으로 조사되어, 보다 합
리적인 관리계획 수립 등에 활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과거 연안습지를 파괴하던 개발사업비를 연안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 정
책에 맞는 사업(조사・연구사업, 지역주민 지원사업, 복원사업, CEPA 활동사업
등)에 지원될 수 있도록 비용을 전환해 실질적인 연안습지 보전과 현명한 이용이 이루
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양과 연안관리에 있어서 이행당사자들의 의견수렴 확대와 국가습지
심의위원회 위상 강화이다. 현재 습지보전법에서 제시되었듯이 연안습지 주변 지역
의 지역주민, 전문가, NGO,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전국단위 또는 지역단위의 습지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이 위원회
는 자문기구의 역할이 아니라 의결기구 역할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논의된 결과
들은 정책에 반영하고, 이해당사자들 또한 역할에 맞게 연안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
용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습지위원회는 거의 유명무실화 되고 있고,
지역단위 습지관리위원회도 구성만 된 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행정편의적으로 진
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와 각 지자체는 습지위원회의 적극적인 활동과 이
를 통한 정책집행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며, 원활한 운영을 위해 예산지원도 뒷받침되
어야 할 것이다.
2010년 9월에 유엔이 채택한 새천년개발목표와 2010년 10월 제10차 생물다양성
협약 총회에서 채택한 결의문에서 각 나라마다 2020년
까지 연안해역과 해양 면적의 10%를 보호구역으로 지
정하도록 결의했다. 따라서 정부는 이같은 약속을 지
키기 위해 연차별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단일 생태권으로 간주되는 황해의 생태계
와 해양의 문화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보
전하고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와 중국, 북
한이 서로 협력해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국내 법
제도 개선과 이행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와덴해 3개
국(독일, 네델란드, 덴마크)의 협력 사례를 타산지석으
로 삼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같은 제언들이 받아들여진다면 연안과 해양이 지속
가능하게 보전되고 사람들도 연안과 해양을 지속가능
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세계자연보전총회
(WCC) 개최국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는 길이며, 국제
적으로도 지속가능발전 UN 회의와 람사르협약, 생물다
양성협약, 기후변화협약의 당사국총회에서 결의된 내
용을 잘 이행하는 모범적인 국가가 될 것이다.
송도갯벌
시흥갯벌
서천갯벌
부안줄포만 갯벌
고창 갯벌
무안 갯벌
증도 갯벌
진도 갯벌
보성벌교 갯벌
순천만 갯벌
마산만봉암 갯벌
오륙도 주변해역
문섬 등 주변해역
습지보호지역
해양생태계보호구역
옹진장봉도갯벌
대이작도 주변해역
신두리 사구해역
7| 2013년 겨울호 | |
8 | 2013년 겨울호 | |
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
일시 : 2012년 12월 21일
장소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사무실
진행 : 이은희(서울여자대학교 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편집위원장)
사진 : 김영채(한국내셔널트러스트 간사)
이번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에서는 진화생물학자로 유명
하신 최재천 교수님을 만나 뵙고 내셔널트러스트 회원님들, 청소
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통섭으로
풀어내는 생물학, 사회학, 생명, 과학 이야기와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 깃든 격려의 대화에 초대합니다.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
● 최재천 교수님은 한 번도 과학자가 되리라는 꿈을 꾸지 않았다는 말씀
을 많이 하시고, 시인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생물학
자가 되셨는지 인생을 바꾼 계기가 있다면 한 번 얘기 좀 해주세요.
○ 시인을 꿈꾼 정도가 아니라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그냥 시인으
로 태어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문과와 이과를 나누어
놓는 원시적인 교육제도의 희생물로 잘못해서 이과로 배정받고 그
체제를 도저히 개인의 힘으로 무너뜨리지 못하고 밀려서 가다가 과
학자가 된 건데요. 지금 생각하면 참 저한테 너무나 잘된 일이었지
만, 제가 과학자가 될 만한 성향을 충분히 갖고 태어나지를 못나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생물학이라는 말랑말랑한 분야를 해서
잘 살아남았죠. 늘 인문 쪽에서 발을 못 빼고 왔는데 그러고 나니까
오히려 저한테는 도움이 된 것 같아요.2지망으로 서울대 의과대학
시험 쳤다가 떨어져서 2지망으로 동물학과에 붙었는데 제가 한 번
도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그 공부가 안 들어오는 거죠. 그러다가
헌책방에서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을 우연히 샀는데 재미있는 거예
요. 저자를 보니 생물학 수업 때 들어본 사람이에요. 유명한 생물학
자였는데, 생물학을 해도 철학을 할 수 있구나 깨달은 거죠. 4학년
이 되어서야 드디어 생물학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해서 지금 여
기까지 왔네요.
● 최근에 내신“통찰”은 어떤 책인가요.
○ 제가 기업체에서 교양강좌를 많이 했었는데요. 10여 년 전부터는
기업에서 저에게 전략에 참여해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미래 전략 워
크숍에 불려갔어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졌길래 미
래에 대해서 얘기를 하나 살펴보니 미래학이라는 학문이 있더라고
요. 그래서 저도 나름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래도 저는 진화, 즉 과
거를 연구하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미래연구를 한다는 것이 불편
하더라고요. 그래서 과거를 얘기하면서‘과거에 그랬으니까 미래에
이럴 것이다.’라고 적극적이지 못한 태도를 취하다가 어느 날 굉장
히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는데요. 마일즈 먼로 목사가 <비전>이라는
책을 쓰셨어요. 예수님은 어떻게 그 미래를 보실 수 있었을까를 설
명한 거예요. 이 분이 비전이라는 말을 굉장히 간단하게 정의를 내
리셨는데, Foresight with Insight based on Hindsight, 즉 과거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얻으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거
죠. 이걸 보는 순간, 과거도 모르면서 미래를 말하는 것이 오히려 이
상하다고 깨달았어요. 저도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재밌더라고요.
이 책의 제목을 지을 때 그 개념이 떠오르더라고요. 사실은 통찰이
라는 게 키를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공부하고 연구하고 책을 읽고
하는 게 이를테면 보는 눈 생각하는 통찰의 눈을 키워나가려고 하는
건데, 기업에서도 상대 기업보다 먼저 미래를 예측하면 이기는 거
고요. 통찰력을 가지려면 자연과학만 봐서도 안 되고 인문학도 들여
다보고 예술도 들여다봐야 하는데, 혹시 독자가 이 책을 읽고‘아,
이런 분야 좀 쫓아 다녀보고, 이런 것 좀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
각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목을 이렇게 붙였어요.
최
재
천
9| 2013년 겨울호 | |
10
● 공감, 공유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이 말을 언급하시면서 새로운 젊
은 세대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신 바 있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하
고 공유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 저는 5년 정도 전에 젊은 세대를 규정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공감
의 세대라고 규정을 해봤는데, 2년 전부터 공감이라는 말이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태안반도에 기름이 유출됐을 때도 젊은 사람들은 많
은 생각을 하지 않고 가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앞 뒤 분간을 못하는
어리석은 세대인거죠. 그것보고 있다가 저 친구들이 잘못된 걸까라
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의 세대는 뭔가 굉장히 다른 세대라는 생
각이 들었어요. 우리 인류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들은 충고가 뭔
가 생각해 보았을 때 끊임없이 나오는 말이 나보다는 남을 아끼라
는 말이잖아요. 고백하자면 우리 세대는 그렇지 못했던 세대에요.
우리는 지금 움켜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
아온 세대에요. 쥐고 있다가 너무 많이 가졌나 싶으면 조금 내놓은
거고, 이게 자선 사업이죠. 그런데 지금의 세대는 그걸 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게 어떻게 가능할 까 생각해보니까
굶어보지는 않았잖아요. 그래서 내가 나누고, 내가 힘들면 누군가
나처럼 도와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는 게 아닐까요. 혹독한
어려움을 겪고 살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게 역설적으로 가능한
세대가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면 어쩌면 이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
역이 됐을 때, 우리의 인류가 그렇게 꿈꾸던 나누는 일류의 첫 세대
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 생태계 엇박자가 파급력을 가지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각심
을 일깨워줄만한 예를 들어주신다면?
○ 운동을 할 시간이 없어 집에서 학교까지 3km 정도 걷고 있어요. 차
를 안타면 저도 건강해 지고 환경도 더 건강해 지는 거잖아요. 제인
구달 선생님도 누구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늘 하시죠. 작
은 시도 하나 하나가 큰 변화를 일으킨다. 이 환경이 정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나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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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적어도 우리
환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으니까요. 앨
고어 미국 부통령이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과 다큐멘터리를 만들
어서 노벨평화상을 받았잖아요. 하지만 진실은 훨씬 더
불편합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불편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세대
는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만약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다면 그 아이는 분명 피해를 봅니다. 다음 세대가 우리세대보다 더
안 좋은 환경에서 살 가능성이 너무도 농후하니까요. 지금 당장 어
떤 일이든 지구를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셔야해요.
● 싸인을 요청하면“알면 사랑한다”라고 써주시는데요, 지식이 온도를
지니고 있는 느낌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써주시는지요?
○ 우리가 잘 몰라서 미워하는 거지 충분히 알고 나면 미워하기 참 힘
들잖아요. 서로 흉을 보는 사람고도 얘기하다보면 미워할 수 없죠.
알고 나면 반드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게 우리 심성이 아닐까요.
그걸 환경에 적용해보면 너무나 잘 들어맞아요. 환경보호도 환경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서 전 국민이 하나라도 더 알아가는 과정을
겪게 되면 언젠가는 알아서 자기가 사랑하고 보호하게 되리라 생각
합니다.
● 오늘 참가자들 중에는 청소년들도 많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미래를 책
임질 이 친구들에게 한마디 조언해 주신다면요?
○ 이제 100세 시대가 오고 있는데 100세를 살면서 60에 은퇴하고 40
년 놀고 먹을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정년이 없어지고 대부분이
90세까지 일하고 돈 벌면서 살게 되요. 요즘 청년실업이 문제인데
그 해결방법만 찾는다면 은퇴는 없는 거죠. 미래학자들은 7~8개의
직업을 전전할 거라고 얘기해요. 물론 한 우물은 파야해요. 한 우물
은 팔줄 알아야 하고 여러 우물에 기웃거릴 줄 알아야 멀티플레이
어가 될 수 있어요. 앞으로는 첫 직장을 잘 얻으려고 좋은 대학을 가
려 하는 필요가 점점 없어질 거예요. 혹여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얻었다 해도 그 사람이 50세에 퇴직해서 여전히 유리할 수는 없거
든요. 그래서 길게 보고 전략을 세우는 게 훨씬 현명한 거죠.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거라는 데
확신이 섰어요. 남을 도우면서도 나를 다듬을 수 있는 이 두 개를 함
께 해나가면서 이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만드시길 바랍니다.
● 내셔널트러스트에 격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저는 내셔널트러스트 같은 운동이 제대로 된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환경운동이라던가 시민운동이라던가 본질적으로 어려움이 있잖아
요. 예를 들면 환경운동하는 사람이 기업을 고발을 해야 하는데 아
직은 모금운동이 문화가 잘되어있지 않으니 그 기업을 공격하기 힘
들지요. 내셔널트러스트는 기본적으로는 국민이 십시일반모아서
보호해야할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전할 수 있게 하자는 것 아니예요.
영국에서 온 거지만 정착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모법을 보여주고 있
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하시고 국민에게 잘 알리셔서 모두가 동참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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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NT 이야기 |
영국내셔널트러스트(NT)는 런던에서 발족했다. 본부도 당연히 런던에 있을 것이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2005년까지는 그랬지만, 지금은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스윈돈(Swidon)에 있다. 그곳으로 옮기기 전까지 런던 본부(head of-
fice)는 런던의 중심부에 있었다. 버킹검 궁과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을
잇는‘더 몰(th Mall)’이란 도로(여왕이 마차타고 사열하는 도로로 유명) 끝에 있는
‘퀸엔 게이트(Queen Ann’s Gate)’근방에 있었다. 그래서 그 본부를‘퀸엔 게이트
사무소(Queen Ann’s Gate office)’로 부르곤 했다. 그곳으로부터 남쪽으로 약간 떨
어진 곳에 수상관저가 있다. 런던의 관청가 한 가운데
본부 사무실이 있었다는 것은 영국 NT의 높은 위상을
말해주었다.
1968년 제출된 벤슨보고서(the Benson Report)에
따라 영국 NT는 업무를 지방조직들로 이양하기 시작했
다. 잉글랜드(England) 지역의 경우, 11개의 지역사무
소를 중심으로 NT활동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유일한 21세기 유산
힐리스(Heelis)
조명래 | 단국대 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
본부는 이사회, 평의회, 사무국 등의 조직을 중심으로
전국 활동의 총괄 기획 및 조정, 연구지원, 재정관리 등
과 같은 행정업무를 관장한다. NT운동이 급속하게 확
장하면서 본부업무 또한 폭증함에 따라 런던 본부 사무소
만으로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런던에
이어 윌트셔(Wiltshire)와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
런던으로부터 서쪽으로 1시간에서 1시간 반 떨어져 있
음)에도 본부 사무소가 설치되었다. 윌트셔 사무소는 자연자산 보전과 관련된 전문적인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런던 본부의 관리비용이 점증하는 가운데 3곳으로 흩어진 본
부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통합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졌다. 이에 영국NT는 2002년 1월
윌트셔의 스윈돈에 450여명의 본부직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통합본부 건립 계획
을 발표했다.
윌트셔는 다른 두 본부가 있는 런던과 글로스터셔로부터 1시간 이내 거리에 있어
양 지역의 직원들이 출퇴근하거나 이주하는 데 무리가 없는 입지로 판단되었다. 윌
트셔에서도 스윈돈의 선택은 새 건물을 짓기 위한 폐부지(brown field), 즉‘브루넬
(Brunel) 철도공작소’터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전성기였던 1900년대 초엔
14,000여명의 근로자가 일할 정도로 공작소의 규모는 컸다. 부지면적만도 326에이
커(약 40만 평)달 했는데 지금은 38에이커(약 4만 6천 평)에 옛 건물들이 남아 있다.
영국NT는 이곳에 역사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신개념의 친환경적인 건축물을 지었
다. 이 건물은 영국 NT가 보유하고 있는‘유일한 21세기 자산(only 21st century
property)’이다.
건물의 명칭‘힐리스(Heelis)’는 동화 만화작가인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가 결혼 뒤 얻은 이름인‘윌리암 힐리스 부인(Mrs William Heelis)’에서 따온
것이다. 힐리스 여사는 1930년대 잉글랜드 북서부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
영국 1호 국립공원)에 거주하면서 지역토속농업을 육성하기 위해 애썼을 뿐 아니라,
동화만화를 그려 얻은 막대한 수입금으로 농장을 사서 지역농민들에게 저렴하게 임대
를 줘 그들의 생업을 유지하도록 돕는 일을 했다. 1943년 운명하면서 힐리스 여사는 4
천 에이커(약 49만 평)의 땅(농장 등)을 영국NT에 기증해, 역대 최대 기증자의 한사
람이 되었다. 힐리스는 그녀의 기증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붙여진 것이다.
힐리스의 설계는 필덴 크레그 브래들리(Feilden Clegg Bradly)란 건축가와 영국
NT 설계팀의 합작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힐리스는 혁신적이면서 지속가능한 설계
개념을 반영하면서 영국NT 사이트에서 생산된 목재와 양모 등을 이용해 건축되었다.
그 결과 19세기에 출범했지만 21세기 보전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영국NT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요소들을 최대한 반영하는‘21세기 지혜의 건축물’이 되었다. 기존 역사
경관을 보완하기 위해 힐리스는 주변 건축물의 형태나 각도와 조화를 이루도록 했고,
개방공간을 둬 주변 건물의 선형이 온전히 살아나도록 했다. 새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는 공장건물과 동시대의 건축물로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설계적 배려 때문이
다. 건물 속의 공간배치, 시설, 이용방식 등은 영국NT가 지향하는 활동목표와 내용을
정교하게 담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러면서 500여 명의 직원과 70여 명의 자원봉사
자들이 일상적으로 추진하는 업무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도록 해 놓았다.
2005년 7월 4일 개관한 힐리스는 그동안 16개의 상을 수상했다. 여기에는 영국왕
립건축가협회의‘특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상’, 시빅트러스트의‘지속가능
성 상’, 빌딩 메거진의‘올해의 지속가능한 빌딩 상’등 친환경적인 건물로서 상뿐만
아니라 영국건물관리협회‘건물관리국제대상 등과 같은 사무실의 지속가능한 관리
운영에 관한 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영국 NT는 이 자랑스러운 21세기 유산을 누구나
방문해 투어(tour)를 할 수 있도록 안내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1. 영국NT사이트에서 생산된 목재와 양모 등으로 통해
건축된 힐리스. 출처 Ben Ellwood
2. 전체 단지 사진
3. 옛 공장그림
4. 지붕의 채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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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Ben Ell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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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NT 홈페이지에서 올려 있는 영상투어를 통해 누
구나 힐리스에 숨겨진 설계의도나 내부공간의 특성을
읽을 수 있다. 바닥형태로 보면 힐리스는 삼각형에서
한 꼭지가 약간 잘라나간 모습이다. 이러한 바닥에 경
사진 공장지붕이 여러 줄 길게 배열되어 있는 형태로
건축물이 앉혀 있다. 건물 중간에는 두 개의 중정(내부
정원)이 만들어져 있다. 유리로 둘러싸여 있고 작은 조
경정원도 꾸며져 있는 중정을 통해 채광도 하고 자연의
경관요소를 내부공간으로 끌어드린다. 삼각형태의 바
닥면적에서 밑변에 해당하는 건축선은 남향을 향하고
있고, 그 전면에는 긴 화단과 오픈스페이스가 조성되
어 있다. 오픈스페이스 건너편에는 옛 공장건물이 단
정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어 그곳이 산업공간이었음
을 자연스럽게 연출되도록 해 놓았다. 이러한 경관구
성 자체가‘지속가능성’, 즉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보
여주는 것으로 영국NT가 추구하는‘영구 보전’개념
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삼각형태의 다른 두 변은
서북면과 동북면을 각각 향한다. 주차장은 서북면에
있다. 면적을 최소화하고 후면에 두어 자동차를 뒤로
숨김으로써 사람 중심성이 단지구성에 확연히 드러나
도록 했다.
힐리스는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에는 안내실, 상점, 식당, 심방(atrium), 사무실, 영
조실(plant room) 등이 있다. 안내 데스크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따라서 좌우
에 상점과 카페가 있다. 상점에는 영국NT 엔터프라이즈가 조달하거나 생산한 기호
품이나 선물(모두 영국NT로고가 들어감) 등이 판매되는 데, 상품의 기본개념은 대부
분‘녹색문화상품’이다. 영국 NT가 보유한 환경(자산)과 문화(자산)를 상품화하여,
한편으로 환경과 역사문화를 지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를 경제가치화 하는 NT운
동의 원리가 반영된 것이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먹을거리도 원자재 70%가 인근 지역
에서 조달된 것들이다. 푸드 마일리즈를 줄여 환경보전에 기여하면서 로컬 경제를 살
리기 위한 지혜의 반영이다.
일층 중간엔 일종의 내부 공공공간으로 심방(atrium)이 있다. 만나고 대화하며 쉬
는 등 다목적 사회공간으로 설계자가 각별하게 고려해 열어 놓은 공간이다. 목재로
짜여진 긴 벽면을 따라 다양한 모양의 의자가 자유롭게 놓여 있고, 이층까지 열려 있
는 천정에는 영국NT 운동이 전개하는 5개의 활동영역(해안선, 숲, 정원, 농장, 빌
딩)을 무늬와 색깔로 표현하는 타페스트리(tapestry)가 걸려 있다. 이 타페스트리 자
체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그러면서 심방에서 나누는 대화의 소리가 천정으로 솟아
이층 공간으로 퍼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공중에 걸려 있는 방음벽’기능도 한다.
배경을 이루는 벽면은 영국NT 사이트에서 생산된 11종류의 목재로 짜여 있다. 나무
벽면 중간에는 영국NT의 운동 슬로건인‘영원히, 모든 사람을 위해(For Ever, For
Everyone)’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글귀는 1907년 의회입법으로 제정된 영국NT
법에 나오는 것이다.
본부 직원들은 인력개발, 재정, 커뮤니티 학습, 자원봉사, 고객관리, 법률, 매거진,
내부소통, 소매 및 기업활동, 사업개선, 정보시스템 및
서비스, 보전, 자산관리, 사무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다.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공간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열려 있는 개념으로 설계되었다. 건물 벽면의 많
은 부분이 유리 창문으로 되어 있어 공간의 안과 밖이
서로 열려 있다. 내부로 막혀 있는 벽면 유리 너머로는
내부 정원이 있다. 또한 일층 사무실 공간은 유리가 달
린 지붕까지 열려 있어, 하늘의 빛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물론, 이층에 있는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 함께 하
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사무실 공간에 깔린 카펫
또한 영국NT 사이트에서 생산된 면양의 털을 염색하지
않고 짠 것이다. 때가 묻어도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한 지
혜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양모로 짜진 카펫 소비를 촉
진해 지방 목축업을 돕고자 하는 의도도 숨겨져 있다.
공조실(plant room)에는 건물 관리를 위한 각종 계
측 및 제어기기들로 가득차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
은 건물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15%(최대 40%)를 생산하
는 태양광발전기기다. 매순간 얼마만큼의 태양광 전기
가 생산되고, 이를 사용함으로써 얼마만큼의 탄소배출
저감 효과가 있는 등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
나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기후
변화시대 에너지 지속가능성을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인 셈이다.
일층 중앙에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이층에 이른다. 이층에는 미팅 룸(meet-
ing rooms), 사무공간, 비즈니스센터(business center), 티룸(tea room) 등이 있다.
개인 직원이 일하는 책상은 개방공간에 놓여있는 반면, 회합은 폐쇄 공간인 미팅 룸
에서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4~20명을 수용하는 미팅 룸이 총 19개가 있는데, 각각
에 영국NT 사이트의 이름이 붙어 있다. 개인적인 미팅이 필요할 경우 온라인을 통해
미팅 룸을 누구나 예약할 수 있다.
이층의 사무공간은 지붕의 채광정(일종의 지붕창문)을 중심으로 구획되어 있고, 연
결통로로 연결되며, 연결통로 양 켠으로 공간을 비워 지붕에서 1층 바닥까지 열어 놓
았다. 사무공간 구성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채광과 환기다. 사무실 공간에
있는 모든 책상은 창문으로부터 7m 이내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자연광을 최대한 접
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또한 지붕의 채광정을 통해 들어 온 자연광은 1층까지 침투
하도록 해 내부 공간 전체에 자연채광이 극대화하도록 했다. 창문도 채광은 최대화하
되, 번쩍임이나 반사 등은 제어해 그로 인한 불편이나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있다. 지
붕엔 52개의 환기용 굴뚝이 있어, 실내외로부터 공기가 들어오고 나오도록 하여 환
기와 함께 내부의 적정 온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 모두는 컴퓨터로 자동 제어된다. 덕
분에 본부 건물의 사무공간에는 에어콘이 없다.
힐리스 내부에는 비즈니스센터가 6개소(1층 3개, 2층 3개) 있다. 각 센터에는 복사
기, 프린터, 문구류, 봉투, 종이파쇄기 등이 비치되어 있다. 200여 개의 데스크 탑 컴
퓨터는 옛 사무실에서 쓰던 것을 재활용한 것이고, 15개의 복사기나 프린트도 마찬가
지로 재활용 기기다. 복사기는 자동적으로 양면 복사가 되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
다. 사무실 공간의 전등은 모두 인공지능 등이어서 불필요할 때는 자동 소등이 된다.
폐기물 재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무공간 책상 주변엔 쓰레기통이 없다. 모든 직원
들은 사무실에 발생한 종이, 유리, 플라스틱, 병, 스템프, 이동전화, 카트리지, 깡통,
봉투 등을 비즈니스센터의 장비들을 이용해 직접 재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층에는 티 룸(tea room)이 있다. 영국 사람들은 홍차를 하루에 여러 잔을 나누어
마신다. 대부분 홍차 물을 끓이기 위해 전기 주전자를 사용하는 데, 이는 용량에 관계
없이 주전자 전체를 데워야 함으로써 그만큼 많은 전기를 쓰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운 물과 차가운 물을 필요한 만큼 직접 공급하는 기계를 비치시켰다. 사용한
컵은 한꺼번에 모아 세척하도록 해 개별 세척에 따른 전기사용을 줄이도록 했다.
이렇듯 힐리스는 건축물로서만 아니라 내부에서 이용하는 개별공간과 설비 하나하
나에 NT의 지혜를 담고 있다. 그 지혜는 크게 보면 21세기의 화두인‘지속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영국NT운동이 비록 19세기 운동이지만, 21세기에도 계속 번창하고 있
는 것은 19세기 사고나 관행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21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운동의
창의성을 늘 고민하고 구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힐리스는 건축물의 디자인 등으로
도 유명하지만, 사실 더 중요하면서 유명한 것은 바로 21세기를 향한 영국 NT의 혜안
과 지혜를 구성원 모두가 몸소 실천하고 있는 점이다.
사진출처 http://virtualtours.nationaltrust.org.uk/heelis/home.html
1. 내부 공간은 벽과 지붕이 유리 창문으로 되어있어 안과 밖이 하나의 공간으로 열려 있다.
2. 영국NT는 역사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신개념의 친환경적인 형태로 힐리스를 지었다.
3. 영국NT가 추구하는‘지속 가능성’,‘영구 보전’개념을 공간 구성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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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문화유산, 삶의 향기를 찾아서 |
유교적 질서에서 벗어나
자연을 품은 주택, 김석윤가옥
안창모 | 경기대 건축설계학과 교수
지난 2월 눈보라와 밝은 햇살이 함께하는 날 제주도를 찾았다. 눈이 많은 제주도인
줄은 알았지만 한반도의 최남단에서 밝은 햇살과 함께 맞이한 눈보라 속의 제주 풍
경은 특별했다. 건축가들과 제주의 현대건축을 답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한
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제주도 올레 길도 걷고 마지막 일정으로 제주도 민가도 방문
했다. 제주도 특별자치도 지정 민속자료 제4호인 김석윤 가옥이었다. 건축가 김석윤
도 함께 집을 찾았다. 매거진<내셔널트러스트>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소유주와 함
께 주택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상했다. 집 앞에 놓인 넓은 길도 어색
했지만 길과 대문간의 만남이 비스듬했기 때문이다. 김석윤 가옥 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집들도 길과 비스듬하게 놓여있었다. 이유는 도시계획에 따른 신작로 개설 때문
이었다. 구획정리사업계획에 따라 큰 길을 내는 과정에서 제주의 옛 풍취를 담고 있
는 올레길이 신작로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오래된
마을에게는 가히 폭력적이라 할 만큼 무지막지한 신작
로였다. 예전에는 18m에 달하는 올레길을 따라 드나들
었던 주택이었지만, 올레길이 쭉쭉 뻗은 신작로에 자리
를 내주면서, 원주인인 올레길은 그 틈새로 간간히 비
스듬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고, 주택은 느닷없이 민낯을
대로변에 내밀고 있는 형상이 되었다. 김석윤 가옥이
신작로를 살짝 빗겨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할 정도다.
올레길을 따라 걷다가 만나야할 집을 큰 길가에서 접하
게 되니 다소 생뚱맞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김석윤 가
옥에 다소 위안이 되는 것은 대문 칸을 지키는 향나무
의 존재였다. 수령이 족히 100년은 되었음직한 고목이 집의 연혁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 나무 덕분에 김석윤 가옥은 길가에 그대로 나앉는 수모는 면하고 있다.
대문간을 거쳐 모거리(행랑채)에 이르는 바깥마당, 안거리(안채)와 밖거리(사랑
채) 사이에는 안마당이 있고, 안거리 뒤에는 뒷마당이 위치해 있다. 이 정도의 주택
이면 여느 전통건축에는 있음직한 사랑채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채로
구성되는 전통적인 주택과 마찬가지로 마당의 구성이 명확한 주택이다.
그렇지만 김석윤 가옥에 사랑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밖거리의 용도가 접객과 바
깥주인의 거처이니 밖거리가 사랑채인 셈이다. 그런데 사랑채가 사랑채로 보이지 않
는 것이 제주도 주택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사랑채인 밖거리가 안마당을 사이에 두
고 안채인 안거리와 대칭적으로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채의 규모 및 공간구성도 거
의 같다. 거기에 안거리가 기와지붕인데 반해 밖거리의 지붕이 초가였었다. 이러한
안거리와 밖거리의 관계와 모습은 전통적인 조선시대의 안채와 사랑채의 관계와 전
혀 다른 모습이다. 마치 안채의 위상이 사랑채 보다 더 높았을 듯 해 보이는 이러한
독특한 주택 구성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집주인인 김석윤에 따르면 제주에는 유교적 위계가 없다고 한다. 조선이 유교적
질서 속에 움직여왔다는 사실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말이
지만, 제주여성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궁리하고 도전하며 헤쳐 나가는
의지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 있고, 이러한 제주 여성의 가정 내 입지가 뭍에 비해 세
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충분히 수궁이 가는 주택 구성이기도 하다.
이제 주택의 면면을 살펴보자.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주에는 바람이 많고 세다. 그
래서 제주 사람들은 바람과 함께 공존하는 주택을 만들어왔다. 담장의 높이와 지붕의
경사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담장의 높이는 집밖의 시선
으로부터 집안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담장을 타고 너
머 집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적절하게 지붕 너머로 흘려보내기 위한 최적의 위치에
서 결정된다. 담장을 타고 넘어온 바람은 경사도를 낮춰 절대 높이를 낮춘 지붕 위로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의 주택 지붕이 급경사이지
만, 눈 많은 제주임에도 지붕의 물매가 낮고 무겁게 만들어진 것은 눈보다 바람이 제
주의 집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작은 성채처럼 굳건하게
주택의 벽체를 구성하고 있는 석조 벽체는 한번 내리면 오랜 시간동안 쌓여있는 눈으
로부터 제주인의 삶과 집을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육지의 흙과 나무로 구성된
벽체로는 제주의 눈과 바람을 이겨낼 수 없기에, 제주만의 자연환경과 공존하는 제주
의 주택이 만들어졌고, 김석윤가옥은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대문간을 지나 만나는 모거리(행랑채)는 초가로 구성이 되어있고, 안거리는 기와
그리고 밖거리(사랑채)는 초가로 구성되었다.
제주도의 기와집은 육지의 기와집과는 많이 다르다. 바람이 많고 센 제주도이기에
제주집의 기와는 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크기가 크고 무거울 뿐 아니라, 바람에 날리
는 것을 막기 위해 처마 끝과 용마루 주변에 회땜질이 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옥이면
누구나 연상하는 지붕의 곡선도 없다. 이로 인해 기와집이 연출하는 분위기도 육지
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안채와 사랑채 역시 한 켜로 구성되어 있는 육지와 달리 3
개의 켜가 중첩되어 있는 통통한 안거리와 밖거리는 눈에 싸인 추운 겨울을 지내기
에 적합하게 공간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석윤 가옥은 제주도 기와집의 대표하는 훌륭한 문
화유산이지만, 잘 보존되어 있는 현재의 모습에는 많
은 아쉬움이 남는다. 제주도의 거친 현무암으로 만들
어진 안거리(안채)의 벽체가 지나치게 반듯하고 매끈
하다는 점이다. 제주도의 돌을 기계장치의 도움 없이
수작업으로 다듬음으로써 연출되었던 거칠지만 만든
이의 손맛이 전해지는 석조 벽체의 선형이 기계 절삭장
치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각(角)이 생기지
않는 돌쌓기가 바람의 영향을 감소시키기 효과까지 가
지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리 보수된 석벽의
반듯함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다.
제주 성읍민속마을에 가면 제주 특유의 마을과 주택
을 볼 수 있지만, 김석윤 가옥의 경우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 있고, 도시의 변화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는 점
에서 독특한 경험을 갖게 하는 제주의 문화유산이다.
특히, 유교적 규범과 위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제
주 사회의 특징과 거친 자연환경을 품에 안은 김석윤
가옥은 제주주택의 참 모습을 전해주는 소중한 문화유
산이다.
1. 신작로에 비스듬히 면한 대문간과 대문칸과
큰길의 어색함을 완화시켜주고 있는 향나무
2. 안채, 곡선 없는 지붕과 석조벽체
3. 김석윤가옥 배치 평면도,
출처 김태일(2008), 제주 도시건축을 이야기하다, 제주대학교 출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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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2013년 겨울호 | |
| 2013년 겨울호 | |18
| ✽내셔널트러스트 여행 |
과거로 가는 계단
읍천리 와상절리
서종철 | 대구가톨릭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지중해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거대한 기둥, 부석사 무량
수전의 배흘림 기둥은 저에게 있어 동서양을 대표하는 건물 기둥에 대한 이미지입니
다. 그런 기둥을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돌들이 바닷가에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쓰러
져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다면, 어떤 상상을 할 수 있을까요? 혹시 신전의 기둥을 만
들기 위해 누군가가 미리 조각을 해 놓은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신의 작품일까요?
우리나라 곳곳에는 화산 활동이 남긴 흔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주도,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백두산이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사람들이 알
고 있을 것입니다. 겨울의 진객 재두루미가 찾아오는 한탄강 일대의 철원 평야가 흐
르던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용암대지(용암으로 만들어진 높고 평평한 땅)라는 것
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경상북도 청송
의 주왕산,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경북 의성의 금성산, 정상부의 입석대와 서석
대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광주의 무등산, 그리고 다도
해 조망이 일품인 경상남도 통영의 미륵산과 전라남도
고흥의 팔영산 등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지
만 이 지역이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러한 화산 활동의 흔적들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백두산이나 제주도처럼 비교적 가
까운 시기에 형성된 것들은 용암이 분출해 굳어진 화산
의 몸체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훨씬 더 오래전에 분출
된 것들은 화산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깎이거나 변형되
어 원래의 모습과 달라졌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화산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
은 읍천리의 주상절리(柱狀節理)가 화산 활동의 결과
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지형이기 때문입니다. 용암이
분출할 때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기로 하죠! 용암이
분출하면 지표를 따라 넓게 퍼지면서 흐르다 서서히 굳
어져 바위가 됩니다. 용암이 식을 때는 공기와 접하는
표면부터 식기 시작하는데, 액체 상태의 용암이 고체
상태인 바위가 되면 수축이 일어나 식는 면과 직각 방
향으로 깊게 갈라집니다. 이때 만들어진 기둥 모양의
지형을 주상절리 지형이라고 합니다. 가을걷이 후 축
축했던 논바닥이 마르면서 쩍쩍 갈라지는 것과 같은 원
리입니다.
뚜렷한 형태를 가진 주상절리는 화산 활동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매우 보기 드문 지형・지질 자원입니다.
읍천리의 주상절리를 비롯하여 제주도 대포동의 주상
절리대, 입석대와 서석대를 포함한 무등산 정상의 주상
절리대, 그리고 포항시 달전리의 주상절리 등이 천연기
념물로 지정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주상절리는 이름 그대로 기둥이 서 있는 모습으로 나
타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부분의 주상절리가 그렇
습니다. 그런데 읍천리의 주상절리는 특이하게도 누워
있는 모습이고, 높은 곳에서 보면 마치 펼쳐 놓은 부챗
살처럼 보이기도 하고,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내려가 가까이 가면 거대한 돌기둥이
첩첩이 쌓여져 있는데, 그 위를 걷다 보면 어딘가를 향
하는 계단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잘려진
돌기둥의 단면은 벌집 모양의 다각형으로 사각형에서
팔각형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부챗살 모양의 주상절리가 왜 이
제야 알려지게 된 것일까요?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남・북한
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최전방 지역을 휴전
선과 DMZ로 국한시켜 인식하고 있지만, 국토를 방어
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해안선은 DMZ와 조금도 다
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안가에는 사람들의 이용이나
출입이 잦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해안 경계를 위해
철조망이 쳐져 있고, 밤이 되면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읍천리의 주상절리 옆에는 바로 그 해안을
지켜왔던 군부대의 주둔지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있습
니다. 출입이 제한된 곳이므로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
었고, 필자 역시 이 일대의 해안을 대부분 조사했었지
만 읍천리 주상절리의 존재를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
러다가 해안을 경계하던 부대가 철수를 하자 세상에 알
려진 것입니다.
그 동안 읍천리 주상절리의 가치에 주목하여 학술적
으로 연구한 학자도 있었고, 이곳의 아름다움을 이용
하여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최하는‘이곳만은 꼭
지키자’시민 공모전에서 수상한 것을 계기로, 언론을
통해 정부와 대중에게 읍천리 주상절리가 알려진 것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보호지역으로 지정한 문화재청의 발 빠른 대처에도 고
마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읍천리 주상절리의 보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이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인근
지역을 무분별하게 개발할 수도 있고, 관리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주상절리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자연 자산에 애정을 가지고 있
는 시민의 눈이 관리의 사각지대를 메울 수도 있고, 모금 운동으로 이 일대의 땅을 매
입하여 지켜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시민의 손으로 지정된 우리의 자연
자산을 이제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켜 주는 것을 어떨까요?
1. 제주도 대포동의 주상절리
2. 경주 읍천리의 와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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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2013년 겨울호 | |
민초의 손에 잡힌 농기구자루
물푸레나무
산소와 식량에서 마을 어귀 정자목의 그늘에 이르기까
지 나무가 인간과 공존하면서 주는 혜택은 수없이 많다.
거기에 땔감에서 소소한 생활용구를 비롯해 재목에 이
르기까지 주검으로 곳곳에 녹아 있는 삶 속의 흔적들을
더하면 나무는 인류문명의 모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우리 농경문화의 도구에 약방의 감초처럼 쓰였던 것
이 물푸레나무이다. 물푸레나무는 불과 몇 십 년 전 화
석연료와 함께 공산품의 홍수시대가 본격 도래하기 전
까지, 수 천 년 아니 그 보다도 더 오랜 세월동안 민초
의 생활 속에서 이용되어 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 산의 계곡이나 능선을 가리지 않고 조금 깊숙한
곳이면 어디에든 분포하는 물푸레나무는 용담목 물푸
레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 교목으로 아름드리까
지 크기도하며 회색의 수피에 얼룩얼룩 불규칙하게 나
있는 흰 반점이 특징이다. 5월에 마치 상고대모양의 흰
꽃이 피었다가 꽃이 진 자리에 기다란 구두주걱모양의 열매가 촘촘히 열려 여름내
바람에 사그락 거리다가 8월쯤에 갈색으로 익는다.
물푸레나무라는 이름은 겉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을 푸르게 물들이는데서 비
롯됐다고 하는데 실제로 다른 나무에 비해 파란 정유성분이 유난히 많이 우러나온다.
이 나무의 한자이름을 살펴보자면 외관상 가장 큰 특징인 잿빛의 수피에 얼룩얼룩 나
있는 흰 띠나 반점으로 인해 진백목(秦白木), 그 얇은 겉껍질 속에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르른 속껍질이 있어 청피목(靑皮木), 그리고 수청목(水靑木), 수창목(水蒼木), 수정
목(水精木)등은 우리말 이름처럼 물과의 섭생을 담고 있다.
이 나무의 민초식 발음은 문푸레나무 이다.‘물푸레나무’가 오랜 세월 표준어로
통용 되었음에도 오대산 신배령이나 경북 임하면 등 여러 곳에서‘문푸레골’이라는
전래의 지명이 고수된 곳이 적지 않으며 목수였던 필자의 부친을 비롯해 영서지방
대부분의 옛 어른들은 아직도 문푸레나무로 부르고 있다. 이 나무의 학명 Fraxinus
rhynchophylla HANCE 중 앞부분의 Fraxinus의 라틴어가‘이 나무로 만든 창
(窓)’이라는 점과, 잘 부러지지 않아 산막의 문살이나 감옥의 창살 등으로 많이 이용
되어 목창목(木倉木,창고를 짓는 나무)라는 한자이름도 가지고 있으니 문(門)푸레나
무로서의 미련 또한 쉽게 털어내지 못하게 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물푸레나무의 가장 큰 특성은 적당히 단단한데다 질기고 탄력성이 좋다는 것인데 이
성질이 손에 쥐기 적당한 굵기의 어린가지에도 이미 완성돼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웬만큼 굵어져도 갈라지지 않는 엠보싱 느낌의 껍질이 목질부에 단단히 들러붙어 있
어 요즘말로 그립감 까지 좋으니 도끼자루를 비롯해 망치, 괭이, 떡메, 쟁기 등 일부
분에 힘이 집중되는 기구의 자루나 손잡이 용도로서는 그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이
다. 그 외에도 송아지의 코뚜레, 설피, 지게의 세장, 도리깨의 휘추리 등 휨과 내구성
을 동시에 요하는 기구의 곳곳에 쓰였으며 잘 갈라지지 않는 성질로 인해 굵은 나무
로는 제기(祭器)나 벼루를 만들기도 하였다. 한방에서는 물푸레나무의 껍질을 진피
(秦皮)라 하여 눈 질환이나 소염 진해에 이용해 왔으며 현대에는 스키나 고급 가구재
야구배트 등의 용도에 활용되고 있다.
물푸레나무의 영명은 애쉬(ash)이다. 서양에서도 일찍이 이 나무를 방패의 손잡
이나 창자루 등에 활용한 기록이 있으며 그리스 신화 속 아킬레스의 물푸레나무 창
으로도 유명하다. 북유럽이나 홋카이도 등 추운지방에서 활용도가 크다보니 신화에
등장하는 신성한 나무로서 우주수가 되기도 하고 악귀를 물리치는 주술행위에 등장
하기도 한다.
이 나무에 관한 우리나라의 공식 기록은 아마도 고려후기의 권문세족인 이인임,
임견미, 염홍방 등이 자신의 종을 시켜 남의 토지를 빼앗을 때 휘두른 몽둥이를 일컫
는‘수정목공문(水精木公文)’이라는 사건에서 처음 등장하는 듯하다. 이후 조선 예
종 때 형조판서 강희맹이 올린 상소 중에“지금 사용하는 버드나무와 가죽나무곤장
은 죄인이 참으면서 자백을 하지 않으니 수정목 만을 사용하게 하소서”라는 기록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그 단단하고 질긴 성질이 곧잘 인간을 고문하는 몽둥이로도
쓰여 왔음에 씁쓸한 소회를 가지게도 된다.
물푸레나무는 겨울에 돋보이는 나무이다. 푸른빛이 살짝 도는 잿빛바탕에 얼룩얼
룩 대비되는 흰 반점의 수피색이 더욱 선명해져, 암갈색이 대부분인 황량한 겨울산
이나 눈 덮인 설산을 배경으로도 신선한 느낌으로 눈길을 끌어당긴다. 겨울나기를
고주환 | 작가
가리왕산 중봉계곡의 물푸레나무 거대목 사진 남준기
20 | 2013년 겨울호 | |
|✽자연이야기 |
21| 2013년 겨울호 | |
위해 수분을 거의 뿌리로 내려보내, 못이 들어가지 않
을 정도로 단단하고 부름켜의 활동이 거의 정지 상태라
껍질이 목질부에 단단히 들러붙어있으니 주로 손잡이
로 사용되는 용도에 적합한 채취시기 이기도해서 겨울
산을 내려오는 농부의 손에 두어 도막쯤 들려 있기 십
상이었다.
물푸레나무!
원시 수렵시대의 창에서 맹수의 공격을 막던 산막의
문살을 거쳐 메이저리그의 야구배트까지! 서슬 퍼렇던
권력의 몽둥이로, 신선놀음에 썩던 나무꾼의 도끼자루
로, 콩밭을 매던 아낙네의 호미자루로, 저물어가는 고
개를 힘겹게 넘던 등짐장수의 손에 들린 지게작대기로
우리의 문화 속에서는 주로 고단한 민초의 손아귀에 잡
혀 땀과 노동을 우려내던 나무이다.
생활 속에 함께한 유구한 역사의 흔적으로 경기도 화
성이나 파주 적성면의 물푸레나무처럼 마을 어귀의 정
자목이나 신목으로 수백 년을 함께 하다가 천연기념물
로 지정된 노거수도 있다. 꽃과 열매도 아름다우며 무
성한 잎에 수형도 깔끔해서 쓰임새에서 보임새로 가치
의 패러다임이 옮겨가는 이 시대의 어떤 용도에 견주어
도 전혀 손색이 없는 나무이다.
※ 고주환 작가는 <나무가 민중이다>의 저자로 민초의 삶에 깃든 풀
과 나무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며, 숲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22 | 2013년 겨울호 | |
|✽자연이야기 |
사냥되는 Water Deer
고라니
2012년 6월 24일 일요일 아침 6시,
창문 밖에서 새끼 고라니의 비명소리와 어미 고라니
의 고함소리가 동시에 들렸습니다.
창문 밖 풀숲에서는 해마다 고라니가 새끼를 낳아 기
르고 있습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새끼 고라니가 포식
자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속옷 바람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 때 풀숲으로 달아나는 들고양이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새끼를 잃은 어미 고라니가 슬
프게 울부짖었습니다. 나는 어미를 위로할 셈으로 어
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어미 앞에는 목에서 피
를 철철 흘리고 쓰러져있는 새끼 고라니가 쓰러져 있었
습니다.
새끼는 태어난 지 사나흘이나 됐음직한 아주 작은 녀
석이었습니다. 다행히 새끼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
다. 그러나 어미가 손댈 수 없을 만큼 부상이 컸습니다.
도연 | 스님
금방 피 냄새를 맡고 쉬파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구더기가 생길
테고 구더기는 살을 파먹어 새끼의 생명을 위협할 것입니다. 어미가 물러나자 나는
조심스럽게 새끼를 안고 들어왔습니다. 어미는 언덕에 서서 내가 새끼를 데리고 가
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새끼는 목덜미를 깊이 물렸고 정수리는 피부가 뜯겨나가 하얗게 두개골이 보였습
니다. 서둘러 약을 발라 지혈을 하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동물병원 수의사
도 부상이 심해 절망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숨이 붙어 있는 녀석을 그대로 방
치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녀석은 살 의지조차 없어보였습니다. 우선 신생아 우유
부터 준비해 먹였습니다. 낮 동안은 돌볼 수 있었지만 밤이 더 큰일이었습니다. 아직
어린 녀석이라 최소한 두세 시간에 한 번은 우유를 먹여야 했지만 중상을 입은 녀석
이 다음날 아침까지 살아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구조 후 24시간이 지났습니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도란이’라고 지었습니다. 나
와 새끼 고라니 이름에서 한 글자씩 땄는데 도란도란 살자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도
란이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끊어진 힘줄을 미처 잇지 못하고 봉합하는
바람에 고개 가누기가 힘겨웠습니다. 하루 24시간을 꼬박 도란이 간호에 매달린 결
과 이틀 후 녀석이 일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수의사도 기적이라고 격려했습니다.
‘도란이 구조 일기’는 페이스북을 통해 중계되었고 페이스북 친구들이 기저귀와 동
물 초유를 보내거나 사들고 왔습니다. 새끼 고라니의 문병을 온 것입니다.
기적은 또 있었습니다. 바로 도란이가 밤마다 어미와 대화를 하는 거였습니다. 밤
마다 어미는 창가에 와서 울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도란이가 반응했습니다. 어미와
새끼는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주파수로 교신한 게 분명합니다. 이렇게 한 달이 지
났습니다. 도란이를 돌보는 한 달 내내 나는 24시간 어미가 된 심정으로 도란이 곁을
지켰습니다.
고라니는‘고라니과’의 동물로 세계적으로는 중국 동북부와 우리나라에만 살고
있고‘중국고라니’와‘한국고라니’로 분류되는 특산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체
수가 흔해 사냥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여 보호하
고 있습니다.
크기는 약 1미터 이내이고 몸무게는 11kg 내외로 알려졌습니다. 숲이 우거지기 시
작하면 어미는 서너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새끼를 풀섶에 숨겨놓고 젖을 먹이러 오
갑니다. 이 때 삵이나 들고양이, 멧돼지 등의 천적에게 해를 입기도 하지요.
고라니는 물사슴(Water Deer)이라고도 합니다. 물을 좋아하고 수영도 잘해 하천
이나 강가 갈대밭에서 자주 목격되는데 민통선 부근 습지에서는‘노랑어리연’의 어
린 잎을 따먹는 고라니를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어떤 녀석들은 가정집 정원에까지 출
몰해 연못에 있는 수련잎을 먹어치우기도 합니다.
또 가장 빈번하게 로드킬(자동차와 충돌)을 당하는 종이 바로 고라니입니다. 개체
수가 늘어난 까닭도 있지만 산자락을 잘라 도로를 만들면서 동물들의 이동통로가 단
절된 까닭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비극적인 일은 농부들과 실랑이 끝에 기어이‘유해조수류’로‘낙인’
찍혀 사냥감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고라니의 개체는 단순히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 뿐이지 아직까지 파악조차 안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닙니다. 다만 행동거리가 2km를 넘지 않는다는 연구결
과가 있어 이를 토대로 과학적으로 개체수를 조절할 필
요가 있을 것입니다.
부상당한 고라니 새끼 한 마리에게 많은 사람들이 응
원을 보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생명은 하나같이 소
중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더불어 자연, 즉 야생과 생태
는 인간이 정복하고 마음대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요. 일본은‘기러기보호협회’까지 있
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모내기가 시작되어도 돌아가
지 않는 기러기 때문에 농부들에게 미움을 사는 녀석들
이 일본에서는‘유동자산’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다른 것에 놀라울 뿐입니다.
잔인하게 총을 쏘아 살육하여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
은 생명존중의 측면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
더라도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일이겠고 비교육적인 일임
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이쯤에서 야만스러운 방법으
로 고라니를 제거하는 방법과 야생동물을 보호함으로
써 얻게 되는 반사이익을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
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
로 접근해야하지 않을까요.
이 시간에도 숲에서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겨울에 짝을 짓는 녀석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일 것입
니다.
23| 2013년 겨울호 | |
| ✽회원인터뷰 |
NT블로그팀의
활약을 보여드릴게요
NT(내셔널트러스트)블로거로활동을시작하셨는
데 NT블로거 소개 좀 부탁드려요.
NT블로거 활동은 올해 처음 시작했어요. 내셔널
트러스트 대의원 회의에서 내셔널트러스트에 대
한 홍보의 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NT블
로거를 운영하는 안건이 수락되었고, 저를 포함한
6명의 블로거들이 선발되어 내셔널트러스트 블로
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NT블로거 활동의 주 목
적은 내셔널트러스트 홍보를 통한 회원 수 증대
및 기부 활성화 등인데, 내셔널트러스트 같은 훌
륭한 시민단체가 일반 시민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예전보다 활동이 활성화 되지 않은 것 같아
서 결국 이러한 활동을 시작했어요.
파워블로거이신데 아무나 되는 게 아니잖아요. 특
별한 노하우를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최상미회원 블로그 http://blog.naver.com/hoho
sm) 저는 포토샵으로 사진을 조작하는 것도 멋진
표나 지도를 따로 제작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
만 그 만큼 글을 정성들여서 쓰고 최대한 객관적
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지요. 글을 조리
있게 쓰면서 글이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조정
하고 독자들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기 위해 충분
한 사진 자료를 활용하도록 노력해요. 블로그의
원칙은 전문성이에요. 블로그 운영에 있어 블로그
의 정체성 확립은 그 블로그를 키우는데 큰 원동
력이 되요.
즉 다양한 주제를 얕게 파기 보다는 하나의 주제
를 전문적으로 파서 블로그의 테마를 잡아가는 과
정이 중요해요. 제 블로그에는 주로 여러 가지 공
연과 NT, 환경, 그리고 체험학습을 위주로 포스팅
이 되어있어요. 특히 국립 국악 공연 등이 많은데
생각보다 매우 재미있고 사람들이 충분히 즐길만
한 요소가 많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보러 오지 않
아 3개월 연습하고 3일 공연하는 현상이 반복되
어 매우 안타까워요. 이는 국립 극장의 이미지 자
체가 상당히 경직되어 있고 딱딱한데다가 오페라
의 유령 같은 유명한 외국 공연처럼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홍보도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
아요. 요즘 창극은 퓨전식에다 여러 가지 요소를
섞어서 기존의 창극과 다른 재미를 내서 한 번쯤
가보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그 전에도 내셔널트러스트 행사나 프로그램에 많
이 참가하셨는데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드셨나요?
정기 총회는 정말 좋아요. 평소 만날 수 없는 대단
한 분들도 많이 만나서 몰랐던 것도 알고‘氣’를
받는 느낌이 들거든요. 또한 다양한 대화를 통해
새로운 사람과 관점을 알아가는 과정이 대단한 즐
거움을 주는 것 같아요.
처음내셔널트러스트를알게되신계기가궁금해요!
자녀들을 일본에 보내는 캠프를 내셔널트러스트
가 주최한 적이 있는데 그 캠프에 아이를 보내면
서 내셔널트러스트에 관심이 생겼어요. 직장에 다
니지 않는 일반 주부들은 생각보다 남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그러한 시간적 여유를 통해 다른
활동을 하길 원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그게 내
셔널트러스트 활동으로 이어졌지요.
저희 온새미로 기자단에게 파워블로거로서 조언
해 주실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없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아요. 1년만 하는 것은 너무 기간이
짧으니 이왕 할 거면 꾸준히 오래 했으면 해요. 기
자단 역시 많은 홍보를 통해 기자단이 하는 일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지원해 줬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내셔널트러스트에 격려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지금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
한 것 같아요. 내셔널트러스트 자체는 굉장히 훌
륭한 단체지만, 시민단체의 주축인 시민이 이 단
체를 대부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영국과 같은 외국은 홍보 등이 잘 되어 있어 NT가
굉장히 효율적으로 잘 운영되고 기부 문화도 기본
적으로 잘 형성 되어 있는데 반해, 한국은 그게 상
당히 부족해요. 그런 의미로 여러 가지 행사를 하
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일단은 홍보를 통해
서 내셔널트러스트 자체를 알리고 회원 수를 늘리
는게 더 우선인 것 같아요. 특히 어린이 회원들을
늘려 그들을 장차 차기 회원으로 육성해 재능 기
부 등을 통한 홍보를 활성화시키고 현 시점에서
NT가 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활용해 최대한 홍보
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행 김여진(용인외고), 김영민(성보고)
| 온새미로 청소년 기자단
최근 NT블로그팀이 인터넷 홍보사절단으로 활동을 시작
했습니다. 그 중 한분인 파워블로거이기도 한 최상미님은
예전부터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에 열심히 참여해주셨던 회
원님이시랍니다. 멋진 일상의 행복을 채워가고 계신 최상
미 회원님을 만나뵈었어요.
최상미 회원님
25| 2013년 겨울호 | |
27| 2013년 겨울호 | |
| ✽회원인터뷰 |
내셔널트러스트
에코 드라이버
캠페인
전화 한 통화로 자동차 보험료의 연 8%를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기부하세요.
우리나라 국민 2명당 1명꼴로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승용차 1대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평균 198/㎢라고 합니다.
우리 생활에 유용한 교통수단인 자동차. 환경을 생각한다면 자동차보험료를 기부할 수 있는
내셔널트러스트 에코 드라이버 캠페인에 참여하세요.
보험료의 인상 없이 납부하는 요금의 연 8%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자연환경보전 기금으로 사용됩니다.
(주)이인슈벨 02)554-9856
(담당: 박혜경 팀장)에 전화해서,
‘자동차 보험료를 내셔널트러스트에
기부합니다.’
라고 전해주세요.
01
차량번호 및
간단한 개인정보
확인과 접수
02
자동차 보험료의 연 8%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기부
03
기부금에 대한
연말정산 세제혜택
04
※ 자동차보험 계약 만료 전이라도 연락하시면, 재계약시 보험료를 기부하실 수 있도록 처리해 드립니다.
※ 보험설계사가 지인일 경우, 수수료가 해당 설계사에 지급되지 않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자동차 보험 가입자에게 권장)
※ 에코드라이버 캠페인의 기부금은 연말정산 세제혜택이 있습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지정기부단체로 개인은 소득범위의 30%, 법인은 소득범위의 10%의 세제혜택이 있습니다.
※ 자동차보험 계약 만료 전이라도 연락하시면, 재계약 시 보험료를 기부하실 수 있도록 처리해 드립니다.
※ 신청 및 문의: 02-554-9856 박혜경 팀장
‘우리’를 꿈꾸는 촌장
어떤 일을 하시는지 소개해주세요.
환경디자인이라고 하면 크게는 지구환경, 축소
해 들어가면 국토환경개선, 도시환경개선, 주거
환경개선, 공원, 도로 같은 공간을 개선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는 좀 다른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
고 있어요. 보통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일이 진행
되는데, 우리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두고 고민
을 많이 합니다. 스마트 아키텍쳐, 스마트 랜드스
케이프, 이렇게 표현하면 정확할 것 같아요. 즉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영리해 진 것이
죠. 옛날에는 공간에 대해 디자이너들의 시각이
훨씬 중요했다면, 지금은 공간 자체가 훨씬 중요
해졌다는 사실이죠.
회사의 분위기가 가족적이에요.
저는 우리 회사를‘행복 비지니스 소사이어티’라
부르고 있어요. 여기서 저는 촌장이고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한다는 것은 산업화 시절에 있었던
기업관인데 21세기 기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라
도 이제는 우리 시민들이든 고객들이든 그들에
게 유용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일들을 찾는 게
가장 성공한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회사가 시민단체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
데 시민단체 같아야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해고
없고, 쳐지는 사람 당겨주고, 성과를 나누는 등
우리끼리의 공동체 규칙을 가지고 가고 있어요.
이윤추구를 하는 기업에서도 이렇게 갈 수 있다
고 봐요.
사업도 처음에는 좋은 시민운동을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해서 시작했는데, 하다보니까 이제 기
업을 잘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운동이라는 생각
이 많이 들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기업관은
돈 버는 것보다도 직원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일을 해나가야 하는가에 있어요.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시간도 걸리
고 초조하고 두려워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왔는
데 되더라고요.
저는 좋은 세상 한 번 만들어보는 게 꿈이었어요.
어린 시절 꿈치고는 좀 컸죠. 근데 사업에서 망하
다 보니, 회사라도 좋은 조직을 만드는 것 만해도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게 됐지요. 이 세상은 너무
너무 불확실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내
주변의 구성원들이 공동체가 되어 서로 위로가
된다면 덜 불안하죠.
어려운 상황에서 근시안적인 호흡에 매몰되지
않고 가치를 꾸준히 지키고 갈 수 있었던 원동력
이 무엇이었나요?
중요한 질문인데요. 가족이나 직원들, 정세 상황
들이 내가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
나 싶어요. 저도 가끔은 두렵고 의지가 약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생각지도 못한 직원 동료,
아이에게서 용기를 느낄 때가 있어요. 아이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애들은 너무 간단하게
“아빠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데 그 까짓 걸로 걱
정을 해? 내가 있는데 안 행복해?”라고 해요. 이
런 이야기가 저에게는 굉장히 크게 마음에 와 닿
았어요.
가족분들과 최순우 옛집에 들러보셨는데 어떠셨
나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어요. 집사람이 화가이
고 저도 미학을 공부해서 최순우 선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요. 최순우 선생님이라면 우리나
라 미술사에 중요한 획을 그으신 분인데 그분의
집이니 굉장히 감동스럽더라고요. 그 분이 살았
던 집의 형태, 뜰, 마당, 툇마루를 보면서 미적인
성향과 삶이 다르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소박하
고 단아하면서 절제되어있는 점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닮아있더군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어떻게 응원하고 계신지요?
사실 저도 여러 시민단체와 캠페인, 교육 등의 활
동을 많이 했었어요. 시민운동을 해보니 시민운동
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넓어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은 좋은 본보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단체
가 각자 가지고 있는 이슈에 대해서 시대에 맞는
진화를 해야 한다고 보는데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많이 정체되어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이듯, 좋은 생각은 참 많아도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운동이
중요한 매개가 되는 거죠. 아마 이런 매개가 없었
다면 좋은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시민운동하시는 분
들은 굉장히 포지티브하고 폭도 넓어야 될 것 같
아야 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내셔널트
러스트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고, 건강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진행 허주희 | 홍보 부장
2012년 후원의밤에 초대받은 최재정 JSB 사장님은 내셔
널트러스트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시며, 직원 100여
명의 회원가입을 이끌어주셨답니다.
함께 나누고 의지하는 공동체를 가꾸고 계신 최재정 회원
님을 만나뵈었습니다.
최재정 회원님
28 | 2013년 겨울호 | | 29| 2013년 겨울호 | |
물건의
재구성
물건과 노동과 세상의 진짜 주인이 되는 법
나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목수가 되었을 거라고 친구
들에게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무아지경에 빠지는 감정은 마치 중독처럼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고, 내 생각이 오롯이 담겨진 결과물을
마주하게 되면 아무리 못났더라도 세상에 둘도 없는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저자 연정태는 이처럼 재활용
으로 물건을 직접 만들어 봄을 통해 우리들의 시각이
물건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인도하며‘물건의 진
짜 주인이 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재활용은 버림받은 물건과 산업과 사람과 공간과 시간을 살려내는 일
‘물건의 재구성’은 단순히 물건을 재활용하자는 매뉴얼을 나열하고 있는 책이 아
니다. 저자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재활용을 정의하고자 한다.‘쓸모없는 물건을
쓸모 있게 만드는 일’에서 더 나아가 재활용의 개념을‘물건’에서‘시간’과 공간‘으
로 확장한다.
즉 불필요한 공간을 되살리는 것도 재활용이고 낭비되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재
활용이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재활용은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쉽게 버림받는 수많은 물건과 산업과 사
람과 공간과 시간을 살려내는 건강한 일인 것이다.
전은정 | 조경가, 조경포레(주) 소장
| ✽추천도서│
물건의 재구성 | 연정태 지음 1. 의자 두개를 뒤집어 만드는 화장대
2. 페트병으로 만든 기와지붕
범 지구환경을 위해 일상과 예술 속으로 깊이 파고 든 재활용
재활용의 재미는 내 맘대로 내키는대로 만들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다. 저자는 페
트병을 모아 기와집모양의 지붕을 만들기도 하고 의자 두 개로 아름다운 화장대로 변
신시키거나 오래된 냉장고를 합판으로 마감해 친환경적 부류로 종속시키고 망가진
전자렌지를 우체통으로 활용하는 등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례를 보여주며 재활용
에 있어 잠시 물건의 용도를 망각하면 새로운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저자가 이러한 사례를 나열하는 배경에는 우리가 재활용을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이 숨
어있다. 모아진 고철을 다시 이용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된다는 모순을 우리는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까…. 최근 재활용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 삶 깊
숙이 파고들어와 있다. 최근 모 의류기업은 빠르고 쉽게 버려지는 인테리어 공사의
폐단에 경종을 울리고자 디자이너들과 협업하여 폐건축자재를 활용한 컨셉매장을
건축하는 모범적 시도를 보여주었고, 많은 예술가들도 지구환경을 살리는 캠페인에
동참하고자 폐자재를 사용하여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예술가가 아니더라
도 한 개인에게 있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그에겐 예술품 이
상의 희소성을 갖는 것이 되며,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은 희소성의 가치와 더
불어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좋은 생각을 전파하므로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된다. 범 지구 환경에 대한 관심과 의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현 시점에서‘물건의
재구성’은 일상의 작은 습관부터 생각의 큰 틀까지 다시 되짚어 보게 만든다.
생각의 재구성
좋은 생각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의 씨앗과 같아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저기 퍼져서 먼 곳까지 흘러간다. 저자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과 좋은 문화
의 씨앗을 나누고자 자신이 만든 재활용의 사례를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자신의 아
이의 돌잡이를 지켜보며 아버지로서의 바람을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대개 손을
많이 쓰는 디자이너는 생각을 적게 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물건의 재구성’을 위한 컨셉을 전개하기에 앞서 치밀한 분석 즉 세심한 재료의 물성
파악과 구조계산, 적정 공법의 검토, 그리고 그 활용과 지속 가능성, 심지어 이용자
가 느껴줬으면 하는 소망을 담으면서, 디자인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장인정신과
가끔은 유머까지 곁들이느라 치열하게 고민한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요즘 개
그프로에 등장하는 말처럼‘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생각마저 들게 되는 순
간이 있다. 저자는 그 답을 책의 마지막 장‘생각의 재구성’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속
내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책의 중간 중간‘생각의 비늘’이라는 편린을
통해서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재활용’은 디자인에 앞서 생각과 가치가 올
바로 서야 함을 다시금 잡아주는 대목들이다.
조화로운 인간이 되기를 바라며
책을 읽고 나니 초등학교 시절 공작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구청이나 시청에
도서관도 중요하지만 공작학교가 시급하다고 건의하
고 싶다. 문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재를 양성하려면,
사물의 이치와 노동의 가치를 몸소 부닥쳐 깨닫고 이해
하는 조화로운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저자의
말에 백배공감하기 때문이다. 다시 남자로 태어나기를
기다리느니 내안에 웅크리고 있던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만드는 인간)가 말을 걸어올 것을 기대
하며 당장 공구도 사고 창고를 뒤져 이것저것 짜 맞춰
봐야겠다.
1
2
멸종위기식물 보존 캠페인
멸종위기식물 매화마름이 피는 꽃논을 분양합니다
※ 후원계좌 외환은행 630-007729-669(예금주: 한국내셔널트러스트)
※ 신청 및 문의 02-739-3131(담당 박도훈 부장)
※‘꽃논사랑 후원금’은 연말정산 세제혜택이 있습니다.
6평의 매화마름 꽃논(30,000원)을 사주시면 매화마름과 지역주민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분양받으신 매화마름 꽃논 만큼의 면적에서 생산된 유기농 매화마름 쌀(5kg 1포/ 6평 기준)을 보내드립니다.
30 | 2013년 겨울호 | |
새생명이움트는
매화마름논의겨울
매화마름의 가장 중요한 생태특징, 논에서 자란다
매화마름(Ranunculus kadzusensis MAKINO)은 미
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다년생 수생식물이다. 지름 1cm
의 하얀 꽃은 물 위로 피어나며, 꽃은 물매화를 닮고 잎
은 붕어마름을 닮아 매화마름이라 한다. 4월말에서 5월
말까지 군락(群落)을 이루며 개화하는 환경부 지정 멸
종위기야생식물 관찰종이다.
매화마름은 발아, 생장, 결실까지 모든 과정을 육상
과 수중에서 거칠 수 있는 독특한 식물이다. 여기에서
육상이라 함은 수분을 머금은 논두렁 등을 가리킨다.
수생식물이기 때문에 생육환경 조건 중 물이 가장 중
요하나, 물가 주변의 수분량이 높은 흙에서도 짧은 줄
기와 잎의 형태로 자란다.
매화마름은 경작 중인 논에서 자란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한 매화마름 군락지의 생태적 특징이다. 매화마름
군락지는 주로 서해안을 따라 있는 논에서 자생하고 있
다.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이후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는 서식지를 살펴보면 강화도, 김포, 경기 화성시 시
화호 일대, 충남 태안, 전북 고창 변산반도 일대, 전남
영광군 법성면 일대 등지다. 발견된 모든 지역은 경작
중인 논이며, 현재 보고된 전국 25곳의 서식지도 모두
경작지이다.
경작 중인 논이 매화마름 서식에 중요한 점은 바로
농부의‘경작’행위를 통해 매화마름이 다른 식물과의 경
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직 개화 상태에
있거나 종자를 퍼뜨리지 못한 매화마름을 배려한다고
그 상태를 지속한다면, 매화마름 서식지는 곧 다른 풀
과의 경쟁에서 밀려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이러한 이
유로 휴경논에서는 매화마름이 자라지 못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모내기 전의 트랙터 작업은 매화마름을 꺾고
밀어버리는 훼손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매화마름 입장
에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종자를 퍼뜨리고 종자가
떨어진 논바닥에 벼 이외의 다른 식물이 침입을 차단함
으로써 다음번 발아기회를 획득하기 때문에 농부의
‘경작’은 매화마름 서식지 보존의 방어막으로 작용하
는 것이다.
가을에 싹트는 매화마름, 기특한 생애주기
매화마름의 또 다른 생태적 특징은 성장주기이다. 매
박도훈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자연유산 부장
| ✽품안에│
좌 벼베기 후 겨울의 논 우 11월에 새싹을 틔우는 매화마름
화마름은 가을에 벼 베기가 끝난 논에서 물을 대기 시
작하는 11월쯤 발아를 시작한다. 겨울에 물속에서 발아
를 시작한 후 3월부터 빠른 성장을 시작하여 4월 중순
에 개화하기 시작한다. 5월 중순부터 모내기 전인 5월
말까지 열매를 맺어 씨앗을 퍼뜨린다.
겨울 논의 주인은 매화마름
매화마름이 발견되는 논은 대개 1970년대에 간척된
논으로 최근까지도 수리조건이 좋지 않아 겨울동안 논
마다 물을 담고 있었고 이른 봄에는 경작을 하지 않는
다. 매화마름은 0℃ 이상, 20℃ 이하의 수중에서 발아
하고 생장한다. 물온도가 20℃ 이상이 되는 여름철은
발아도 되지 않고 줄기와 잎은 녹아버린다.
겨울의 매화마름 논, 이제 주인이 바뀌었다. 벼가 주인
이었던 6월~10월을 뒤로하고 이듬해 봄 5월까지, 논의
주인은 매화마름이다. 물을 가득 채운 논은 논습지 생명
들의 쉼터가 되고 얼음이 얼면 아이들의 썰매장이 된다.
매화마름의 또 다른 이름‘개말’
강화도 초지리에서 매화마름은 논두렁에 자라는 식
용‘말’과 달리 먹을 수도 없고 농사를 방해한다고‘개말’이라 불렸다. 대다수 지역사
람들에게 매화마름의 가치는 아직도‘개말’이라는 평가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매화마름 자체가 농민들에게 필요한 자연자원이 아닌 상태이고, 이들이 매
화마름 보존에 기울여야 할 노력에 비하면 그에 비해 되돌아올 혜택은 불명확하다.
이런 이유에서 매화마름 관리를 도모하는 데 여러 장애가 존재하고 있지만 매화마름
이 인간에게 어떠한 가시적 혜택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 부족 자체가 매화마름
멸종의 위협요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과 작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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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trust026 2013겨울

  • 1. 2013 | Winter | No.26 www.nationaltrust.or.kr ISSN 1976-2577 2013년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정기총회 & 시민공모전 시상식 계사년 새해를 맞아 회원님들을 모시고 지나간 한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한해를 계획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정기총회에 이어 2부는 제10회 한국내셔널트러스트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이곳만은 꼭 지키자’시상식을 진행합니다. 내셔널트러스트가 발굴한 아름다운 자연환경 그리고 소중한 문화유산을 확인하시고, 2013년 새롭게 시작하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격려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가회동 31-29 ● 지하철: 3, 4호선 충무로역(4번출구) 도보 10분/ 4호선 명동역(1번출구) 도보 10분 ● 자동차: 남산공원길 - 대한적십자사 앞에서 U턴 - 교통방송국(TBS)를 끼고 우회전 - 교통방송국 정문에서 직진철 ● 버 스: 노랑버스 02/ 초록버스 0013, 0211/ 파랑버스 104, 105, 140, 263, 604 (버스하차하는 곳: 명동입구, 한옥마을, 대한극장(퇴계로3가)) ● 일시: 2013년 1월 26일(토) 오전 11시 ● 장소: 문학의집서울 산림문학관 ● 주요 프로그램 ○ 1부 (11:00) 2013년 정기총회 대표인사 2012년 활동 영상보고 감사패 수여 2012년 사업 및 결산보고 논의안건 보고 회원제안 ○ 오찬(12:00) ○ 2부 (12:45) 제10회 보전대상지 시민공모전 ‘이곳만은 꼭 지키자’시상식 환영사 축사 경과보고 수상작 소개 시상식 기념촬영
  • 2. 발행일 2013년 1월 2일 발행인 김홍남 양병이 편집위원장 이은희 편집위원 강동진 남준기 서왕진 안창모 오충현 유상오 윤인석 임정진 전은정 조명래 한동욱 기획 허주희 편집인쇄 (주)디자인내일 www.nationaltrust.or.kr 페이스북 www.facebook.com/trustkorea 트위터 @ntrustkorea 목차사진 두루미 사진 도연스님 발행처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11길 20 우리빌딩 4층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4가 72-4번지 우리빌딩 4층) 전화 02-739-3131 전송 02-739-9598 1년 정기구독료 20,000원 (정기구독료는 후원금으로 사용됩니다.) ※ 본지에 게재된 글과 사진, 그림은 무단 전재하거나 복제하여 사 용할 수 없습니다. ※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은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산기증과 기부를 통해보존가치가높은자연환경과문화유산을확보하여시민의 소유로 영구히 보전하고 관리하는 시민운동입니다. C O N T E N T S 2013년 겨울호 집중과 조명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영국NT 이야기 근대문화유산, 삶의 향기를 찾아서 내셔널트러스트 여행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자연이야기 회원인터뷰 내셔널트러스트 추천도서 품안에 신년인사 내셔널트러스트 소식 내셔널트러스트 알림마당 후원해주시는 분들 04 08 12 16 18 20 25 28 32 35 36 38 37 한국의 도요・물떼새 나일 무어스 | 새와 생명의 터 대표, 국제 넓적부리도요 복원 대책위원 서해안의 지속가능한 보전 방법과 대안 모색 주용기 | 전북대학교 전임연구원 최재천 교수 진행 이은희 | 서울여자대학교 교수 유일한 21세기 유산, 힐리스(Heelis) 조명래 | 단국대 교수, 내셔널트러스트 이사 유교적 질서에서 벗어나 자연을 품은 주택, 김석윤가옥 안창모 | 경기대 건축설계학과 교수 과거로 가는 계단 읍천리 와상절리 서종철 | 대구가톨릭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민초의 손에 잡힌 농기구자루 물푸레나무 고주환 | 작가 겨울 사냥되는 Water Deer, 고라니 도연 | 스님 NT블로그팀의 활약을 보여드릴게요 최상미 회원님 ‘우리’를 꿈꾸는 촌장 최재정 회원님 물건의 재구성 전은정 | 조경가, 조경포레(주) 소장 새 생명이 움트는 매화마름 논의 겨울 박도훈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자연유산 부장 온새미로 헌책방을 가다 박수빈 | 온새미로 청소년 기자단, 용인외고 2013년 NT회원님들이 내셔널트러스트에 보내는 격려와 희망의 메시지!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소식 공지사항 2012년 9월 ~ 11월 후원내역 표지붉은어깨도요새 사진 나일무어스, 새와 생명의터
  • 3. 4 | 2013년 겨울호 | | 우리는 조수와 계절의 리듬에 맞춰 박차 오르고 내려 앉는 도요・물떼새 군무를 감상 할 마지막 세대가 될 것인가? 우리는 도요새 노래의 환희와 의미를 이해할 마지막 세 대가 될 것인가? 대한민국에는 약 60여종의 도요・물떼새가 출현하는데 이는 국내에서 기록되는 모 든 조류 종의 10% 이상에 해당된다. 즉 우리나라에서 도요・물떼새는 가장 다양한 조 류종 중 하나인 셈이다. 참새만한 좀도요에서부터 약 60cm의 몸집을 지닌 알락꼬리 마도요에 이르기까지 도요・물떼새 종들은 나름의 특성과 고유함을 지니고 있다. 매 우 섬세한 부리 끝으로 갯벌 표면의 먹잇감을 집어내는 짧은 부리를 지닌 종이 있는가 하면, 날렵하고 가느다란 부리로 얕은 수면에서 작은 물고기나 새우를 잡는 종이 있기 도 하며, 굴을 파고 숨어든 게나 벌레를 끄집어내도록 위쪽으로 또는 아래쪽으로 휘어 진 부리를 지닌 것들도 있다. 이렇듯 특수화된 부리와 섭식 행태로 몇 종들은 홀로 먹 게를 먹고 있는 알락꼬리마도요 ⓒ 새와 생명의 터도요물떼새 무리 ⓒ 새와 생명의 터 한국의 도요・물떼새 나일 무어스 | 새와 생명의 터 대표, 국제 넓적부리도요 복원 대책위원 이 활동에 치중하거나, 붉은어깨도요와 같은 종들은 먹 이가 풍성한 갯벌을 찾아 수만 개체의 무리가 한 곳에 모여 집단적인 먹이활동을 펼친다. 각 종의 생명학적이고 생태학적인 이유에 의해 결정 된 고도의 특수성과 풍부한 생물군의 다양성은 도 요・물떼새가 소중한 생태지표종임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들의 존재나 부재, 풍부도나 희소성은 바로 서식 습지의 형질과 건강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것 이다. 몇 종의 물새류와 도요・물떼새 종은 먹이가 풍부 하고 안전하게 수면을 취할 수 있는 장소에서 무리 지어 남아있다. 게, 벌레, 갑각류와 어류가 가득하고 생산성 이 풍부한 습지일 때만 다양한 종의 도요・물떼새들이 찾는다. 형질이 떨어지고 생명력이 없는 습지에는 그들 이 찾아오지 않는다. 새들과 서식지와의 연관성이 이렇듯, 국제적으로 가 장 중요한 습지 파악을 위해 람사르 협약에서는 도 요・물떼새와 타 물새류를 사용한다. 국제적으로 중요 한 습지로서 보전 우선 지역을 파악하는 데에는 천연의 복합적이며 광활한 곳을 정하게 마련이다. 이 곳 국내에 | ✽집중과 조명 | 서 우리가 지닌 가장 중요한 천연 습지는 바로 갯벌이 다. 자연적으로 흘러드는 하천의 양분으로 갯벌은 풍요 로워진다. 갯벌은 수만 개체의 도요・물떼새와 수많은 사람들의 생계를 부양하며, 탄소 흡수 및 폭풍 해일을 잠재우고, 해수면 상승 시에는 천연 제방의 역할 등의 환경적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도요・물떼새와 서식지와의 명료한 관계는 2004년 새와 생명의 터가 창립된 이후의 활동을 통해서도 증명 해왔다. 지난 15년간 국내에서 최소한 도요・물떼새 21 종이 람사르가 규정한 국제적으로 중요한 군집을 보이 는 것으로 본 단체의 조사에서 밝혀졌다. 21종 모두는 한반도의 극동지방에서(일부는 알래스카까지) 번식하 며, 월동을 위해 남동아시아와 오세아니아까지 멀리 이 동한다. 한국을 통과하는 이동 기간 중에 21종 모두가 갯벌에서 서식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개체군 감소를 급 격하게 겪고 있다. 지난 10년 사이에 흑꼬리도요의 90% 미만과 붉은어깨도요의 80% 미만이 국내에서 사라진 것이 바로 그 예이다. 이렇듯 급격한 개체군 감소의 이유를 단언하기는 어 렵지 않다. 유사 이래 국내에서는 갯벌의 75%를 이미 잃었으며 이렇게 없어진 갯벌의 3분의 2는 최근 30년간 의“매립”으로 인한 것이다. 국내의 주요 하천 또한 댐 으로 막혔으며, 지난 십 년간 송도(인천)와 남양・아산 만 그리고 새만금의 습지가 람사르가 규정한 국제적인 주요 습지에 부합하는 지역임에도 방조제로 막혔다. 새만금은 단일 지역으로는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도요・물떼새 지역이며, 매년 57만 개체로 추정되는 도 요・물떼새가 서식하고 있다. 엄청난 개체 수를 보이며 서식하는 도요・물떼새의 종 다양성이 시사하는 것은 바로 이곳의 천연적인 생산성과 더불어 복합적인 생태 계로서의 국제적인 중요성이다. 새만금의 방조제 공사 가 진행 중인 동안에 북향 이동 중인 도요・물떼새의 개 체 수는 2000년의 315,000개체에서 2006년에 180,000개체로 추락하였으며, 2008년에는 겨우 51,000개체만이 기록되었다. 해당 지역의 개체 수는 매 년 연이어 떨어지고 있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3년 동안‘새와 생명의 터’와 호주・뉴질랜드 도요새 연구 단이 공동 시행한‘새만금 도요・물떼새 모니터링 프로 그램(SSMP)’은 새만금 지역에서 추방당한 도요・물떼 새가 다른 지역에 정착하지 못했음을 명확히 밝혔다. 말라버린 갯벌에서 그들은 먹이 를 찾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요・물떼새들은 끔찍하게 죽어 나간 것이다. SSMP조사 및 이동경로 상의 유사 프로그램과 동아시아-대양주 이동경로 파트너 십(EAAFP)과 같은 기구를 통해 공유한 자료에 근거하여, 이제는 보다 높은 차원의 과학적 합의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국과 중국에서의 대규모 매립은 도요・물떼새 감소를 몰고 온다. 2012년 IUCN(세계자연보전연맹) 보고서는 해당 이동경로 상의 도 요・물떼새 감소는 지구상 다른 어떤 조류 종의 감소보다도 그 감소 비율이 훨씬 높음 을 알렸다. 한 때는 높은 개체 수로 새만금과 낙동강 하구에서 수 백 마리의 무리가 발 견되었던 넓적부리도요는 매년 26%의 감소율로 사라지고 있다. 대략적인 지구상 전 개체군이 고작 400개체 정도이다. 새만금 등의 이전 서식지에 조수가 유입되도록 복 원하는 것과 동시에 주요 서식지를 함께 보전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경우, 야생에서 이들은 약 2020년쯤에 완전히 멸종할 것이다. 넓적부리도요를 비롯한 타 도요・물떼새종의 멸종이 단지 탐조인과 자연 애호가들 이 겪을 손해일까. 이것은 우리나라의 가장 중요한 천연 자산인 습지의 소멸을 나타내 는 신호이다. 이것은 갯벌에 서식하는 방대한 생물종의 멸종과 감소를 알리는 신호이 며, 가장 분명한 메시지는 바로 국내의 보전 정책과 실천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임을 잊 어서는 안될 것이다. ※ 필자가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새와 생명의 터’는 한국 광역의 황해생태권역에 서식하 는 조류와 서식지의 보호에 공헌하고 있다. 5| 2013년 겨울호 | |
  • 4. 6 | 2013년 겨울호 | | 거전갯벌의 조개잡이 사진 남준기 해양보호구역 현황 서해안의 지속가능한 보전 방법과 대안 모색 주용기 | 전북대학교 전임연구원 우리나라의 연안습지를 포함한 해양은 계속되는 갯벌 의 간척과 매립, 강 하구둑 건설, 인공적인 해안선의 증 가, 해사 채취, 해안쓰레기와 오염원 증가, 기름유출 증 가 등으로 위협에 처해 있다. 특히 간척과 매립은 연안 습지의 생물다양성 감소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매년 보호구역을 조금씩 확대하는 방식 보다는 북해 연안의 와덴해 3개국(덴마크, 독일, 네델란드)이 공동 으로 전체 갯벌과 연안을 람사르 습지와 보호구역으로 지정하고 관리하는 것처럼 이제라도 한국의 연안습지 전체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 일부 개발이 불가피할 때만 면밀한 조사와 이해당사자간 협의를 통해 해양생태 계 피해를 최소화 하는 방안을 세우면서 일부 사업을 허용하는 방식으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이는 2009년 3월, 한국의 국토해양부와 와덴해 3국의 장관들이 체결한 갯벌 보전 양해각서(MOU)를 잘 이행하는 신뢰성 있는 자세이다. 더욱이 여러 관련 법과 제도의 개선이 절실히 요구된다.‘습지보전법’과‘연안관 리법’이 1999년에 제정되고 환경영향평가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제정되었던‘공유수면매립법’을 비롯한 각종 개발과 관련된 법이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하여 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보다는 간척과 매립을 더욱 우선시 하는 정책이 | ✽집중과 조명 | 계속되고 있다. 연안습지와 해양환경 관리 전문 부서인 해양수산부를 해체하여 해양 환경보전 부서를 개발부처(당시 건설교통부)에 통합(현재 국토해양부)시켜 버렸다. 이에 따라 해양환경보전 업무가 우선순위에서 차선으로 밀려 개발사업이 더 우선시 되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2010년 말까지 제3차 공유수면매립기본계획(2012년~ 2021년)과 2011년 초까지 제2차 연안통합관리기본계획(2011년~2020년)과 2011년 말까지 제2차 국가습지보전기본계획(2012년~2016년)을 수립했다. 그런데 이들 계 획에는 여전히 연안개발에 초점이 맞추어져서 수립되었다. 따라서 어떠한 연안습지의 훼손행위도 중단하고, 연안습지 파괴를 허용하는 공유 수면매립법 등 관련법 등을 개정 또는 폐기해야 하며, 환경영향평가 제도도 강화되어 야 한다. 특히 야생동식물보호법과 해양생태계의 보전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그리고 습지보전법은 해양과 연안습지를 실질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강력한 법이 되도록 개정 하고,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지역 뿐만이 아니라 국내의 모든 습지의 보전과 현명 한 이용을 위한 정책이 적극 수행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부는 모든 연안습지의 정기적인 모니터링과 다양한 보전 및 인식증진 사업 에 적극적으로 예산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람사르 협약의 결의문 X.13항은 람사르습 지와 새만금간척지, 습지보호지역, 습지가 보함된 생태계보호구역에 대해 국제적으 로 중요한 이동물새들의 개체수 변화와 다른 생태학적 영향에 대해 조사보고서를 람 사르 사무국에 보고하도록 했다. 따라서 이를 올바로 이행하고, 다른 전국의 연안습지 에 대해서도 이동물새들의 서식실태와 생태학적 변화에 대해서도 장기적이고 적극적 인 모니터링이 시행되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해양생물종 보전과 복원, 서식지 관리・보전과 복원, 현명한 이용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모니터링을 할 때는 예산 을 더욱 적극 지원하여 광범위한 지역이 시기적절하고 정기적으로 조사되어, 보다 합 리적인 관리계획 수립 등에 활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더욱이 과거 연안습지를 파괴하던 개발사업비를 연안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용 정 책에 맞는 사업(조사・연구사업, 지역주민 지원사업, 복원사업, CEPA 활동사업 등)에 지원될 수 있도록 비용을 전환해 실질적인 연안습지 보전과 현명한 이용이 이루 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해양과 연안관리에 있어서 이행당사자들의 의견수렴 확대와 국가습지 심의위원회 위상 강화이다. 현재 습지보전법에서 제시되었듯이 연안습지 주변 지역 의 지역주민, 전문가, NGO, 지방정부와 중앙정부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전국단위 또는 지역단위의 습지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이 위원회 는 자문기구의 역할이 아니라 의결기구 역할이 되도록 해야 한다. 여기서 논의된 결과 들은 정책에 반영하고, 이해당사자들 또한 역할에 맞게 연안습지의 보전과 현명한 이 용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하지만 국가습지위원회는 거의 유명무실화 되고 있고, 지역단위 습지관리위원회도 구성만 된 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행정편의적으로 진 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정부와 각 지자체는 습지위원회의 적극적인 활동과 이 를 통한 정책집행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며, 원활한 운영을 위해 예산지원도 뒷받침되 어야 할 것이다. 2010년 9월에 유엔이 채택한 새천년개발목표와 2010년 10월 제10차 생물다양성 협약 총회에서 채택한 결의문에서 각 나라마다 2020년 까지 연안해역과 해양 면적의 10%를 보호구역으로 지 정하도록 결의했다. 따라서 정부는 이같은 약속을 지 키기 위해 연차별 이행계획을 수립하고 실행에 나서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단일 생태권으로 간주되는 황해의 생태계 와 해양의 문화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 체계적으로 보 전하고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나라와 중국, 북 한이 서로 협력해 MOU(양해각서)를 체결하고 국내 법 제도 개선과 이행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와덴해 3개 국(독일, 네델란드, 덴마크)의 협력 사례를 타산지석으 로 삼는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이같은 제언들이 받아들여진다면 연안과 해양이 지속 가능하게 보전되고 사람들도 연안과 해양을 지속가능 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세계자연보전총회 (WCC) 개최국으로서의 자격을 인정받는 길이며, 국제 적으로도 지속가능발전 UN 회의와 람사르협약, 생물다 양성협약, 기후변화협약의 당사국총회에서 결의된 내 용을 잘 이행하는 모범적인 국가가 될 것이다. 송도갯벌 시흥갯벌 서천갯벌 부안줄포만 갯벌 고창 갯벌 무안 갯벌 증도 갯벌 진도 갯벌 보성벌교 갯벌 순천만 갯벌 마산만봉암 갯벌 오륙도 주변해역 문섬 등 주변해역 습지보호지역 해양생태계보호구역 옹진장봉도갯벌 대이작도 주변해역 신두리 사구해역 7| 2013년 겨울호 | |
  • 5. 8 | 2013년 겨울호 | | 이화 여자 대학교 교수 일시 : 2012년 12월 21일 장소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사무실 진행 : 이은희(서울여자대학교 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편집위원장) 사진 : 김영채(한국내셔널트러스트 간사) 이번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에서는 진화생물학자로 유명 하신 최재천 교수님을 만나 뵙고 내셔널트러스트 회원님들, 청소 년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통섭으로 풀어내는 생물학, 사회학, 생명, 과학 이야기와 미래 세대에 대한 희망 깃든 격려의 대화에 초대합니다. |✽내셔널트러스트가 만난 사람 | ● 최재천 교수님은 한 번도 과학자가 되리라는 꿈을 꾸지 않았다는 말씀 을 많이 하시고, 시인을 꿈꾸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생물학 자가 되셨는지 인생을 바꾼 계기가 있다면 한 번 얘기 좀 해주세요. ○ 시인을 꿈꾼 정도가 아니라 중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그냥 시인으 로 태어난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의 문과와 이과를 나누어 놓는 원시적인 교육제도의 희생물로 잘못해서 이과로 배정받고 그 체제를 도저히 개인의 힘으로 무너뜨리지 못하고 밀려서 가다가 과 학자가 된 건데요. 지금 생각하면 참 저한테 너무나 잘된 일이었지 만, 제가 과학자가 될 만한 성향을 충분히 갖고 태어나지를 못나서 고생을 많이 했어요. 그래도 생물학이라는 말랑말랑한 분야를 해서 잘 살아남았죠. 늘 인문 쪽에서 발을 못 빼고 왔는데 그러고 나니까 오히려 저한테는 도움이 된 것 같아요.2지망으로 서울대 의과대학 시험 쳤다가 떨어져서 2지망으로 동물학과에 붙었는데 제가 한 번 도 생각해보지 않았으니까 그 공부가 안 들어오는 거죠. 그러다가 헌책방에서 우연과 필연이라는 책을 우연히 샀는데 재미있는 거예 요. 저자를 보니 생물학 수업 때 들어본 사람이에요. 유명한 생물학 자였는데, 생물학을 해도 철학을 할 수 있구나 깨달은 거죠. 4학년 이 되어서야 드디어 생물학 공부를 열심히 하기 시작해서 지금 여 기까지 왔네요. ● 최근에 내신“통찰”은 어떤 책인가요. ○ 제가 기업체에서 교양강좌를 많이 했었는데요. 10여 년 전부터는 기업에서 저에게 전략에 참여해달라고 그러는 거예요. 미래 전략 워 크숍에 불려갔어요. 도대체 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가졌길래 미 래에 대해서 얘기를 하나 살펴보니 미래학이라는 학문이 있더라고 요. 그래서 저도 나름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래도 저는 진화, 즉 과 거를 연구하는 사람인데 이런 사람이 미래연구를 한다는 것이 불편 하더라고요. 그래서 과거를 얘기하면서‘과거에 그랬으니까 미래에 이럴 것이다.’라고 적극적이지 못한 태도를 취하다가 어느 날 굉장 히 흥미로운 책을 발견했는데요. 마일즈 먼로 목사가 <비전>이라는 책을 쓰셨어요. 예수님은 어떻게 그 미래를 보실 수 있었을까를 설 명한 거예요. 이 분이 비전이라는 말을 굉장히 간단하게 정의를 내 리셨는데, Foresight with Insight based on Hindsight, 즉 과거에 대한 고찰을 바탕으로 통찰력을 얻으면 미래를 예견할 수 있다는 거 죠. 이걸 보는 순간, 과거도 모르면서 미래를 말하는 것이 오히려 이 상하다고 깨달았어요. 저도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재밌더라고요. 이 책의 제목을 지을 때 그 개념이 떠오르더라고요. 사실은 통찰이 라는 게 키를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공부하고 연구하고 책을 읽고 하는 게 이를테면 보는 눈 생각하는 통찰의 눈을 키워나가려고 하는 건데, 기업에서도 상대 기업보다 먼저 미래를 예측하면 이기는 거 고요. 통찰력을 가지려면 자연과학만 봐서도 안 되고 인문학도 들여 다보고 예술도 들여다봐야 하는데, 혹시 독자가 이 책을 읽고‘아, 이런 분야 좀 쫓아 다녀보고, 이런 것 좀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 각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제목을 이렇게 붙였어요. 최 재 천 9| 2013년 겨울호 | |
  • 6. 10 ● 공감, 공유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이 말을 언급하시면서 새로운 젊 은 세대에 대한 기대감을 표현하신 바 있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하 고 공유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 저는 5년 정도 전에 젊은 세대를 규정할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공감 의 세대라고 규정을 해봤는데, 2년 전부터 공감이라는 말이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태안반도에 기름이 유출됐을 때도 젊은 사람들은 많 은 생각을 하지 않고 가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앞 뒤 분간을 못하는 어리석은 세대인거죠. 그것보고 있다가 저 친구들이 잘못된 걸까라 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의 세대는 뭔가 굉장히 다른 세대라는 생 각이 들었어요. 우리 인류가 살아오면서 가장 많이들은 충고가 뭔 가 생각해 보았을 때 끊임없이 나오는 말이 나보다는 남을 아끼라 는 말이잖아요. 고백하자면 우리 세대는 그렇지 못했던 세대에요. 우리는 지금 움켜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 아온 세대에요. 쥐고 있다가 너무 많이 가졌나 싶으면 조금 내놓은 거고, 이게 자선 사업이죠. 그런데 지금의 세대는 그걸 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요. 게 어떻게 가능할 까 생각해보니까 굶어보지는 않았잖아요. 그래서 내가 나누고, 내가 힘들면 누군가 나처럼 도와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는 게 아닐까요. 혹독한 어려움을 겪고 살지 않았기 때문에 어쩌면 그게 역설적으로 가능한 세대가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면 어쩌면 이 세대가 우리 사회의 주 역이 됐을 때, 우리의 인류가 그렇게 꿈꾸던 나누는 일류의 첫 세대 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 생태계 엇박자가 파급력을 가지고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각심 을 일깨워줄만한 예를 들어주신다면? ○ 운동을 할 시간이 없어 집에서 학교까지 3km 정도 걷고 있어요. 차 를 안타면 저도 건강해 지고 환경도 더 건강해 지는 거잖아요. 제인 구달 선생님도 누구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말을 늘 하시죠. 작 은 시도 하나 하나가 큰 변화를 일으킨다. 이 환경이 정말 나빠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는 거죠. 그러면 나라도 11 무슨 일을 해야 하는 거예요.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을 적어도 우리 환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너무나 분명하게 알고 있으니까요. 앨 고어 미국 부통령이 <불편한 진실>이라는 책과 다큐멘터리를 만들 어서 노벨평화상을 받았잖아요. 하지만 진실은 훨씬 더 불편합니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불편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세대 는 그럭저럭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만약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다면 그 아이는 분명 피해를 봅니다. 다음 세대가 우리세대보다 더 안 좋은 환경에서 살 가능성이 너무도 농후하니까요. 지금 당장 어 떤 일이든 지구를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셔야해요. ● 싸인을 요청하면“알면 사랑한다”라고 써주시는데요, 지식이 온도를 지니고 있는 느낌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써주시는지요? ○ 우리가 잘 몰라서 미워하는 거지 충분히 알고 나면 미워하기 참 힘 들잖아요. 서로 흉을 보는 사람고도 얘기하다보면 미워할 수 없죠. 알고 나면 반드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게 우리 심성이 아닐까요. 그걸 환경에 적용해보면 너무나 잘 들어맞아요. 환경보호도 환경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해서 전 국민이 하나라도 더 알아가는 과정을 겪게 되면 언젠가는 알아서 자기가 사랑하고 보호하게 되리라 생각 합니다. ● 오늘 참가자들 중에는 청소년들도 많이 자리하고 있는데요, 미래를 책 임질 이 친구들에게 한마디 조언해 주신다면요? ○ 이제 100세 시대가 오고 있는데 100세를 살면서 60에 은퇴하고 40 년 놀고 먹을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정년이 없어지고 대부분이 90세까지 일하고 돈 벌면서 살게 되요. 요즘 청년실업이 문제인데 그 해결방법만 찾는다면 은퇴는 없는 거죠. 미래학자들은 7~8개의 직업을 전전할 거라고 얘기해요. 물론 한 우물은 파야해요. 한 우물 은 팔줄 알아야 하고 여러 우물에 기웃거릴 줄 알아야 멀티플레이 어가 될 수 있어요. 앞으로는 첫 직장을 잘 얻으려고 좋은 대학을 가 려 하는 필요가 점점 없어질 거예요. 혹여 좋은 대학과 좋은 직장을 얻었다 해도 그 사람이 50세에 퇴직해서 여전히 유리할 수는 없거 든요. 그래서 길게 보고 전략을 세우는 게 훨씬 현명한 거죠. 저는 여러분을 믿습니다. 여러분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갈 거라는 데 확신이 섰어요. 남을 도우면서도 나를 다듬을 수 있는 이 두 개를 함 께 해나가면서 이 사회를 밝고 아름답게 만드시길 바랍니다. ● 내셔널트러스트에 격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 저는 내셔널트러스트 같은 운동이 제대로 된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환경운동이라던가 시민운동이라던가 본질적으로 어려움이 있잖아 요. 예를 들면 환경운동하는 사람이 기업을 고발을 해야 하는데 아 직은 모금운동이 문화가 잘되어있지 않으니 그 기업을 공격하기 힘 들지요. 내셔널트러스트는 기본적으로는 국민이 십시일반모아서 보호해야할 자연과 문화유산을 보전할 수 있게 하자는 것 아니예요. 영국에서 온 거지만 정착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모법을 보여주고 있 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하시고 국민에게 잘 알리셔서 모두가 동참할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 2013년 겨울호 | | | 2013년 겨울호 | |
  • 7. | 2013년 겨울호 | |1212 | ✽영국NT 이야기 | 영국내셔널트러스트(NT)는 런던에서 발족했다. 본부도 당연히 런던에 있을 것이라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2005년까지는 그랬지만, 지금은 런던에서 서쪽으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스윈돈(Swidon)에 있다. 그곳으로 옮기기 전까지 런던 본부(head of- fice)는 런던의 중심부에 있었다. 버킹검 궁과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을 잇는‘더 몰(th Mall)’이란 도로(여왕이 마차타고 사열하는 도로로 유명) 끝에 있는 ‘퀸엔 게이트(Queen Ann’s Gate)’근방에 있었다. 그래서 그 본부를‘퀸엔 게이트 사무소(Queen Ann’s Gate office)’로 부르곤 했다. 그곳으로부터 남쪽으로 약간 떨 어진 곳에 수상관저가 있다. 런던의 관청가 한 가운데 본부 사무실이 있었다는 것은 영국 NT의 높은 위상을 말해주었다. 1968년 제출된 벤슨보고서(the Benson Report)에 따라 영국 NT는 업무를 지방조직들로 이양하기 시작했 다. 잉글랜드(England) 지역의 경우, 11개의 지역사무 소를 중심으로 NT활동이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유일한 21세기 유산 힐리스(Heelis) 조명래 | 단국대 교수,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이사 본부는 이사회, 평의회, 사무국 등의 조직을 중심으로 전국 활동의 총괄 기획 및 조정, 연구지원, 재정관리 등 과 같은 행정업무를 관장한다. NT운동이 급속하게 확 장하면서 본부업무 또한 폭증함에 따라 런던 본부 사무소 만으로 이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런던에 이어 윌트셔(Wiltshire)와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 런던으로부터 서쪽으로 1시간에서 1시간 반 떨어져 있 음)에도 본부 사무소가 설치되었다. 윌트셔 사무소는 자연자산 보전과 관련된 전문적인 업무를 담당했다. 그러나 런던 본부의 관리비용이 점증하는 가운데 3곳으로 흩어진 본 부업무의 효율화를 위해 통합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졌다. 이에 영국NT는 2002년 1월 윌트셔의 스윈돈에 450여명의 본부직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는 통합본부 건립 계획 을 발표했다. 윌트셔는 다른 두 본부가 있는 런던과 글로스터셔로부터 1시간 이내 거리에 있어 양 지역의 직원들이 출퇴근하거나 이주하는 데 무리가 없는 입지로 판단되었다. 윌 트셔에서도 스윈돈의 선택은 새 건물을 짓기 위한 폐부지(brown field), 즉‘브루넬 (Brunel) 철도공작소’터를 활용하기 위해서였다. 전성기였던 1900년대 초엔 14,000여명의 근로자가 일할 정도로 공작소의 규모는 컸다. 부지면적만도 326에이 커(약 40만 평)달 했는데 지금은 38에이커(약 4만 6천 평)에 옛 건물들이 남아 있다. 영국NT는 이곳에 역사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신개념의 친환경적인 건축물을 지었 다. 이 건물은 영국 NT가 보유하고 있는‘유일한 21세기 자산(only 21st century property)’이다. 건물의 명칭‘힐리스(Heelis)’는 동화 만화작가인 베아트릭스 포터(Beatrix Potter)가 결혼 뒤 얻은 이름인‘윌리암 힐리스 부인(Mrs William Heelis)’에서 따온 것이다. 힐리스 여사는 1930년대 잉글랜드 북서부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 영국 1호 국립공원)에 거주하면서 지역토속농업을 육성하기 위해 애썼을 뿐 아니라, 동화만화를 그려 얻은 막대한 수입금으로 농장을 사서 지역농민들에게 저렴하게 임대 를 줘 그들의 생업을 유지하도록 돕는 일을 했다. 1943년 운명하면서 힐리스 여사는 4 천 에이커(약 49만 평)의 땅(농장 등)을 영국NT에 기증해, 역대 최대 기증자의 한사 람이 되었다. 힐리스는 그녀의 기증정신을 기리기 위해서 붙여진 것이다. 힐리스의 설계는 필덴 크레그 브래들리(Feilden Clegg Bradly)란 건축가와 영국 NT 설계팀의 합작으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힐리스는 혁신적이면서 지속가능한 설계 개념을 반영하면서 영국NT 사이트에서 생산된 목재와 양모 등을 이용해 건축되었다. 그 결과 19세기에 출범했지만 21세기 보전운동을 선도하고 있는 영국NT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요소들을 최대한 반영하는‘21세기 지혜의 건축물’이 되었다. 기존 역사 경관을 보완하기 위해 힐리스는 주변 건축물의 형태나 각도와 조화를 이루도록 했고, 개방공간을 둬 주변 건물의 선형이 온전히 살아나도록 했다. 새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옆에 있는 공장건물과 동시대의 건축물로 느껴지는 것은 이러한 설계적 배려 때문이 다. 건물 속의 공간배치, 시설, 이용방식 등은 영국NT가 지향하는 활동목표와 내용을 정교하게 담고 표현하고 있다. 또한 그러면서 500여 명의 직원과 70여 명의 자원봉사 자들이 일상적으로 추진하는 업무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도록 해 놓았다. 2005년 7월 4일 개관한 힐리스는 그동안 16개의 상을 수상했다. 여기에는 영국왕 립건축가협회의‘특별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상’, 시빅트러스트의‘지속가능 성 상’, 빌딩 메거진의‘올해의 지속가능한 빌딩 상’등 친환경적인 건물로서 상뿐만 아니라 영국건물관리협회‘건물관리국제대상 등과 같은 사무실의 지속가능한 관리 운영에 관한 상 등이 포함되어 있다. 영국 NT는 이 자랑스러운 21세기 유산을 누구나 방문해 투어(tour)를 할 수 있도록 안내 동영상을 제공하고 있다. 1. 영국NT사이트에서 생산된 목재와 양모 등으로 통해 건축된 힐리스. 출처 Ben Ellwood 2. 전체 단지 사진 3. 옛 공장그림 4. 지붕의 채광정 1 2 3 4 출처 Ben Ellwood 13| 2013년 겨울호 | |
  • 8. | 2013년 겨울호 | |14 15| 2013년 겨울호 | | 영국 NT 홈페이지에서 올려 있는 영상투어를 통해 누 구나 힐리스에 숨겨진 설계의도나 내부공간의 특성을 읽을 수 있다. 바닥형태로 보면 힐리스는 삼각형에서 한 꼭지가 약간 잘라나간 모습이다. 이러한 바닥에 경 사진 공장지붕이 여러 줄 길게 배열되어 있는 형태로 건축물이 앉혀 있다. 건물 중간에는 두 개의 중정(내부 정원)이 만들어져 있다. 유리로 둘러싸여 있고 작은 조 경정원도 꾸며져 있는 중정을 통해 채광도 하고 자연의 경관요소를 내부공간으로 끌어드린다. 삼각형태의 바 닥면적에서 밑변에 해당하는 건축선은 남향을 향하고 있고, 그 전면에는 긴 화단과 오픈스페이스가 조성되 어 있다. 오픈스페이스 건너편에는 옛 공장건물이 단 정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어 그곳이 산업공간이었음 을 자연스럽게 연출되도록 해 놓았다. 이러한 경관구 성 자체가‘지속가능성’, 즉 과거와 현재의 연결을 보 여주는 것으로 영국NT가 추구하는‘영구 보전’개념 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삼각형태의 다른 두 변은 서북면과 동북면을 각각 향한다. 주차장은 서북면에 있다. 면적을 최소화하고 후면에 두어 자동차를 뒤로 숨김으로써 사람 중심성이 단지구성에 확연히 드러나 도록 했다. 힐리스는 2층으로 되어 있다. 1층에는 안내실, 상점, 식당, 심방(atrium), 사무실, 영 조실(plant room) 등이 있다. 안내 데스크를 중심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따라서 좌우 에 상점과 카페가 있다. 상점에는 영국NT 엔터프라이즈가 조달하거나 생산한 기호 품이나 선물(모두 영국NT로고가 들어감) 등이 판매되는 데, 상품의 기본개념은 대부 분‘녹색문화상품’이다. 영국 NT가 보유한 환경(자산)과 문화(자산)를 상품화하여, 한편으로 환경과 역사문화를 지키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를 경제가치화 하는 NT운 동의 원리가 반영된 것이다. 카페에서 판매하는 먹을거리도 원자재 70%가 인근 지역 에서 조달된 것들이다. 푸드 마일리즈를 줄여 환경보전에 기여하면서 로컬 경제를 살 리기 위한 지혜의 반영이다. 일층 중간엔 일종의 내부 공공공간으로 심방(atrium)이 있다. 만나고 대화하며 쉬 는 등 다목적 사회공간으로 설계자가 각별하게 고려해 열어 놓은 공간이다. 목재로 짜여진 긴 벽면을 따라 다양한 모양의 의자가 자유롭게 놓여 있고, 이층까지 열려 있 는 천정에는 영국NT 운동이 전개하는 5개의 활동영역(해안선, 숲, 정원, 농장, 빌 딩)을 무늬와 색깔로 표현하는 타페스트리(tapestry)가 걸려 있다. 이 타페스트리 자 체는 하나의 예술작품이다. 그러면서 심방에서 나누는 대화의 소리가 천정으로 솟아 이층 공간으로 퍼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공중에 걸려 있는 방음벽’기능도 한다. 배경을 이루는 벽면은 영국NT 사이트에서 생산된 11종류의 목재로 짜여 있다. 나무 벽면 중간에는 영국NT의 운동 슬로건인‘영원히, 모든 사람을 위해(For Ever, For Everyone)’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 글귀는 1907년 의회입법으로 제정된 영국NT 법에 나오는 것이다. 본부 직원들은 인력개발, 재정, 커뮤니티 학습, 자원봉사, 고객관리, 법률, 매거진, 내부소통, 소매 및 기업활동, 사업개선, 정보시스템 및 서비스, 보전, 자산관리, 사무지원 등의 업무를 담당한 다. 직원들이 일하는 사무실 공간은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열려 있는 개념으로 설계되었다. 건물 벽면의 많 은 부분이 유리 창문으로 되어 있어 공간의 안과 밖이 서로 열려 있다. 내부로 막혀 있는 벽면 유리 너머로는 내부 정원이 있다. 또한 일층 사무실 공간은 유리가 달 린 지붕까지 열려 있어, 하늘의 빛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은 물론, 이층에 있는 직원들과 같은 공간에 함께 하 는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사무실 공간에 깔린 카펫 또한 영국NT 사이트에서 생산된 면양의 털을 염색하지 않고 짠 것이다. 때가 묻어도 잘 드러나지 않도록 한 지 혜가 반영된 것이다. 또한 양모로 짜진 카펫 소비를 촉 진해 지방 목축업을 돕고자 하는 의도도 숨겨져 있다. 공조실(plant room)에는 건물 관리를 위한 각종 계 측 및 제어기기들로 가득차 있다. 이 중 가장 중요한 것 은 건물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15%(최대 40%)를 생산하 는 태양광발전기기다. 매순간 얼마만큼의 태양광 전기 가 생산되고, 이를 사용함으로써 얼마만큼의 탄소배출 저감 효과가 있는 등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 나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기후 변화시대 에너지 지속가능성을 일상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인 셈이다. 일층 중앙에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이층에 이른다. 이층에는 미팅 룸(meet- ing rooms), 사무공간, 비즈니스센터(business center), 티룸(tea room) 등이 있다. 개인 직원이 일하는 책상은 개방공간에 놓여있는 반면, 회합은 폐쇄 공간인 미팅 룸 에서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4~20명을 수용하는 미팅 룸이 총 19개가 있는데, 각각 에 영국NT 사이트의 이름이 붙어 있다. 개인적인 미팅이 필요할 경우 온라인을 통해 미팅 룸을 누구나 예약할 수 있다. 이층의 사무공간은 지붕의 채광정(일종의 지붕창문)을 중심으로 구획되어 있고, 연 결통로로 연결되며, 연결통로 양 켠으로 공간을 비워 지붕에서 1층 바닥까지 열어 놓 았다. 사무공간 구성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은 채광과 환기다. 사무실 공간에 있는 모든 책상은 창문으로부터 7m 이내에 배치되어 있다. 이는 자연광을 최대한 접 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또한 지붕의 채광정을 통해 들어 온 자연광은 1층까지 침투 하도록 해 내부 공간 전체에 자연채광이 극대화하도록 했다. 창문도 채광은 최대화하 되, 번쩍임이나 반사 등은 제어해 그로 인한 불편이나 피해를 최소화시키고 있다. 지 붕엔 52개의 환기용 굴뚝이 있어, 실내외로부터 공기가 들어오고 나오도록 하여 환 기와 함께 내부의 적정 온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 모두는 컴퓨터로 자동 제어된다. 덕 분에 본부 건물의 사무공간에는 에어콘이 없다. 힐리스 내부에는 비즈니스센터가 6개소(1층 3개, 2층 3개) 있다. 각 센터에는 복사 기, 프린터, 문구류, 봉투, 종이파쇄기 등이 비치되어 있다. 200여 개의 데스크 탑 컴 퓨터는 옛 사무실에서 쓰던 것을 재활용한 것이고, 15개의 복사기나 프린트도 마찬가 지로 재활용 기기다. 복사기는 자동적으로 양면 복사가 되도록 프로그램화 되어 있 다. 사무실 공간의 전등은 모두 인공지능 등이어서 불필요할 때는 자동 소등이 된다. 폐기물 재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사무공간 책상 주변엔 쓰레기통이 없다. 모든 직원 들은 사무실에 발생한 종이, 유리, 플라스틱, 병, 스템프, 이동전화, 카트리지, 깡통, 봉투 등을 비즈니스센터의 장비들을 이용해 직접 재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층에는 티 룸(tea room)이 있다. 영국 사람들은 홍차를 하루에 여러 잔을 나누어 마신다. 대부분 홍차 물을 끓이기 위해 전기 주전자를 사용하는 데, 이는 용량에 관계 없이 주전자 전체를 데워야 함으로써 그만큼 많은 전기를 쓰게 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더운 물과 차가운 물을 필요한 만큼 직접 공급하는 기계를 비치시켰다. 사용한 컵은 한꺼번에 모아 세척하도록 해 개별 세척에 따른 전기사용을 줄이도록 했다. 이렇듯 힐리스는 건축물로서만 아니라 내부에서 이용하는 개별공간과 설비 하나하 나에 NT의 지혜를 담고 있다. 그 지혜는 크게 보면 21세기의 화두인‘지속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영국NT운동이 비록 19세기 운동이지만, 21세기에도 계속 번창하고 있 는 것은 19세기 사고나 관행에 갇혀 있는 게 아니라 21세기를 향해 나아가는 운동의 창의성을 늘 고민하고 구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힐리스는 건축물의 디자인 등으로 도 유명하지만, 사실 더 중요하면서 유명한 것은 바로 21세기를 향한 영국 NT의 혜안 과 지혜를 구성원 모두가 몸소 실천하고 있는 점이다. 사진출처 http://virtualtours.nationaltrust.org.uk/heelis/home.html 1. 내부 공간은 벽과 지붕이 유리 창문으로 되어있어 안과 밖이 하나의 공간으로 열려 있다. 2. 영국NT는 역사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신개념의 친환경적인 형태로 힐리스를 지었다. 3. 영국NT가 추구하는‘지속 가능성’,‘영구 보전’개념을 공간 구성에 담았다. 1 32
  • 9. 16 | 2013년 겨울호 | | | ✽근대문화유산, 삶의 향기를 찾아서 | 유교적 질서에서 벗어나 자연을 품은 주택, 김석윤가옥 안창모 | 경기대 건축설계학과 교수 지난 2월 눈보라와 밝은 햇살이 함께하는 날 제주도를 찾았다. 눈이 많은 제주도인 줄은 알았지만 한반도의 최남단에서 밝은 햇살과 함께 맞이한 눈보라 속의 제주 풍 경은 특별했다. 건축가들과 제주의 현대건축을 답사하는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한 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제주도 올레 길도 걷고 마지막 일정으로 제주도 민가도 방문 했다. 제주도 특별자치도 지정 민속자료 제4호인 김석윤 가옥이었다. 건축가 김석윤 도 함께 집을 찾았다. 매거진<내셔널트러스트>에 연재를 시작한 이후 소유주와 함 께 주택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 이상했다. 집 앞에 놓인 넓은 길도 어색 했지만 길과 대문간의 만남이 비스듬했기 때문이다. 김석윤 가옥 뿐 아니라 주변의 여러 집들도 길과 비스듬하게 놓여있었다. 이유는 도시계획에 따른 신작로 개설 때문 이었다. 구획정리사업계획에 따라 큰 길을 내는 과정에서 제주의 옛 풍취를 담고 있 는 올레길이 신작로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오래된 마을에게는 가히 폭력적이라 할 만큼 무지막지한 신작 로였다. 예전에는 18m에 달하는 올레길을 따라 드나들 었던 주택이었지만, 올레길이 쭉쭉 뻗은 신작로에 자리 를 내주면서, 원주인인 올레길은 그 틈새로 간간히 비 스듬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고, 주택은 느닷없이 민낯을 대로변에 내밀고 있는 형상이 되었다. 김석윤 가옥이 신작로를 살짝 빗겨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할 정도다. 올레길을 따라 걷다가 만나야할 집을 큰 길가에서 접하 게 되니 다소 생뚱맞을 수 밖에 없다. 그래도 김석윤 가 옥에 다소 위안이 되는 것은 대문 칸을 지키는 향나무 의 존재였다. 수령이 족히 100년은 되었음직한 고목이 집의 연혁을 말해주는 듯하다. 이 나무 덕분에 김석윤 가옥은 길가에 그대로 나앉는 수모는 면하고 있다. 대문간을 거쳐 모거리(행랑채)에 이르는 바깥마당, 안거리(안채)와 밖거리(사랑 채) 사이에는 안마당이 있고, 안거리 뒤에는 뒷마당이 위치해 있다. 이 정도의 주택 이면 여느 전통건축에는 있음직한 사랑채가 눈에 띄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채로 구성되는 전통적인 주택과 마찬가지로 마당의 구성이 명확한 주택이다. 그렇지만 김석윤 가옥에 사랑채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밖거리의 용도가 접객과 바 깥주인의 거처이니 밖거리가 사랑채인 셈이다. 그런데 사랑채가 사랑채로 보이지 않 는 것이 제주도 주택의 특징적인 모습이다. 사랑채인 밖거리가 안마당을 사이에 두 고 안채인 안거리와 대칭적으로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채의 규모 및 공간구성도 거 의 같다. 거기에 안거리가 기와지붕인데 반해 밖거리의 지붕이 초가였었다. 이러한 안거리와 밖거리의 관계와 모습은 전통적인 조선시대의 안채와 사랑채의 관계와 전 혀 다른 모습이다. 마치 안채의 위상이 사랑채 보다 더 높았을 듯 해 보이는 이러한 독특한 주택 구성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집주인인 김석윤에 따르면 제주에는 유교적 위계가 없다고 한다. 조선이 유교적 질서 속에 움직여왔다는 사실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말이 지만, 제주여성이 최악의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궁리하고 도전하며 헤쳐 나가는 의지의 소유자로 정평이 나 있고, 이러한 제주 여성의 가정 내 입지가 뭍에 비해 세 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충분히 수궁이 가는 주택 구성이기도 하다. 이제 주택의 면면을 살펴보자.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제주에는 바람이 많고 세다. 그 래서 제주 사람들은 바람과 함께 공존하는 주택을 만들어왔다. 담장의 높이와 지붕의 경사가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담장의 높이는 집밖의 시선 으로부터 집안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담장을 타고 너 머 집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적절하게 지붕 너머로 흘려보내기 위한 최적의 위치에 서 결정된다. 담장을 타고 넘어온 바람은 경사도를 낮춰 절대 높이를 낮춘 지붕 위로 지나치게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의 주택 지붕이 급경사이지 만, 눈 많은 제주임에도 지붕의 물매가 낮고 무겁게 만들어진 것은 눈보다 바람이 제 주의 집에 더 큰 영향력을 행사했음을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작은 성채처럼 굳건하게 주택의 벽체를 구성하고 있는 석조 벽체는 한번 내리면 오랜 시간동안 쌓여있는 눈으 로부터 제주인의 삶과 집을 보호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육지의 흙과 나무로 구성된 벽체로는 제주의 눈과 바람을 이겨낼 수 없기에, 제주만의 자연환경과 공존하는 제주 의 주택이 만들어졌고, 김석윤가옥은 그러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대문간을 지나 만나는 모거리(행랑채)는 초가로 구성이 되어있고, 안거리는 기와 그리고 밖거리(사랑채)는 초가로 구성되었다. 제주도의 기와집은 육지의 기와집과는 많이 다르다. 바람이 많고 센 제주도이기에 제주집의 기와는 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크기가 크고 무거울 뿐 아니라, 바람에 날리 는 것을 막기 위해 처마 끝과 용마루 주변에 회땜질이 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옥이면 누구나 연상하는 지붕의 곡선도 없다. 이로 인해 기와집이 연출하는 분위기도 육지 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안채와 사랑채 역시 한 켜로 구성되어 있는 육지와 달리 3 개의 켜가 중첩되어 있는 통통한 안거리와 밖거리는 눈에 싸인 추운 겨울을 지내기 에 적합하게 공간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김석윤 가옥은 제주도 기와집의 대표하는 훌륭한 문 화유산이지만, 잘 보존되어 있는 현재의 모습에는 많 은 아쉬움이 남는다. 제주도의 거친 현무암으로 만들 어진 안거리(안채)의 벽체가 지나치게 반듯하고 매끈 하다는 점이다. 제주도의 돌을 기계장치의 도움 없이 수작업으로 다듬음으로써 연출되었던 거칠지만 만든 이의 손맛이 전해지는 석조 벽체의 선형이 기계 절삭장 치에 의해 사라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각(角)이 생기지 않는 돌쌓기가 바람의 영향을 감소시키기 효과까지 가 지고 있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수리 보수된 석벽의 반듯함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이다. 제주 성읍민속마을에 가면 제주 특유의 마을과 주택 을 볼 수 있지만, 김석윤 가옥의 경우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 있고, 도시의 변화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는 점 에서 독특한 경험을 갖게 하는 제주의 문화유산이다. 특히, 유교적 규범과 위계에서 비교적 자유로웠던 제 주 사회의 특징과 거친 자연환경을 품에 안은 김석윤 가옥은 제주주택의 참 모습을 전해주는 소중한 문화유 산이다. 1. 신작로에 비스듬히 면한 대문간과 대문칸과 큰길의 어색함을 완화시켜주고 있는 향나무 2. 안채, 곡선 없는 지붕과 석조벽체 3. 김석윤가옥 배치 평면도, 출처 김태일(2008), 제주 도시건축을 이야기하다, 제주대학교 출판부 1 2 3 17| 2013년 겨울호 | |
  • 10. | 2013년 겨울호 | |18 | ✽내셔널트러스트 여행 | 과거로 가는 계단 읍천리 와상절리 서종철 | 대구가톨릭대학교 지리교육과 교수 지중해 바다를 배경으로 우뚝 솟아 있는 파르테논 신전의 거대한 기둥, 부석사 무량 수전의 배흘림 기둥은 저에게 있어 동서양을 대표하는 건물 기둥에 대한 이미지입니 다. 그런 기둥을 연상하게 하는 거대한 돌들이 바닷가에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쓰러 져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다면, 어떤 상상을 할 수 있을까요? 혹시 신전의 기둥을 만 들기 위해 누군가가 미리 조각을 해 놓은 것일까요? 아니면 인간의 수고를 덜어 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신의 작품일까요? 우리나라 곳곳에는 화산 활동이 남긴 흔적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주도, 울릉도와 독도, 그리고 백두산이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사람들이 알 고 있을 것입니다. 겨울의 진객 재두루미가 찾아오는 한탄강 일대의 철원 평야가 흐 르던 용암이 굳어져 만들어진 용암대지(용암으로 만들어진 높고 평평한 땅)라는 것 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경상북도 청송 의 주왕산,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된 경북 의성의 금성산, 정상부의 입석대와 서석 대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광주의 무등산, 그리고 다도 해 조망이 일품인 경상남도 통영의 미륵산과 전라남도 고흥의 팔영산 등은 일반인들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지 만 이 지역이 화산 활동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이러한 화산 활동의 흔적들은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만들어진 것입니다. 백두산이나 제주도처럼 비교적 가 까운 시기에 형성된 것들은 용암이 분출해 굳어진 화산 의 몸체가 그대로 남아 있지만, 훨씬 더 오래전에 분출 된 것들은 화산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깎이거나 변형되 어 원래의 모습과 달라졌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쉽게 알아보기 어려운 것입니다. 다소 어려울 수도 있는 화산 이야기를 먼저 꺼낸 것 은 읍천리의 주상절리(柱狀節理)가 화산 활동의 결과 로 만들어진 대표적인 지형이기 때문입니다. 용암이 분출할 때의 모습을 잠시 상상해 보기로 하죠! 용암이 분출하면 지표를 따라 넓게 퍼지면서 흐르다 서서히 굳 어져 바위가 됩니다. 용암이 식을 때는 공기와 접하는 표면부터 식기 시작하는데, 액체 상태의 용암이 고체 상태인 바위가 되면 수축이 일어나 식는 면과 직각 방 향으로 깊게 갈라집니다. 이때 만들어진 기둥 모양의 지형을 주상절리 지형이라고 합니다. 가을걷이 후 축 축했던 논바닥이 마르면서 쩍쩍 갈라지는 것과 같은 원 리입니다. 뚜렷한 형태를 가진 주상절리는 화산 활동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매우 보기 드문 지형・지질 자원입니다. 읍천리의 주상절리를 비롯하여 제주도 대포동의 주상 절리대, 입석대와 서석대를 포함한 무등산 정상의 주상 절리대, 그리고 포항시 달전리의 주상절리 등이 천연기 념물로 지정된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주상절리는 이름 그대로 기둥이 서 있는 모습으로 나 타납니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부분의 주상절리가 그렇 습니다. 그런데 읍천리의 주상절리는 특이하게도 누워 있는 모습이고, 높은 곳에서 보면 마치 펼쳐 놓은 부챗 살처럼 보이기도 하고,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내려가 가까이 가면 거대한 돌기둥이 첩첩이 쌓여져 있는데, 그 위를 걷다 보면 어딘가를 향 하는 계단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잘려진 돌기둥의 단면은 벌집 모양의 다각형으로 사각형에서 팔각형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부챗살 모양의 주상절리가 왜 이 제야 알려지게 된 것일까요?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남・북한 이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최전방 지역을 휴전 선과 DMZ로 국한시켜 인식하고 있지만, 국토를 방어 해야 하는 입장에서 보면 해안선은 DMZ와 조금도 다 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해안가에는 사람들의 이용이나 출입이 잦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해안 경계를 위해 철조망이 쳐져 있고, 밤이 되면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읍천리의 주상절리 옆에는 바로 그 해안을 지켜왔던 군부대의 주둔지로 사용되었던 건물이 있습 니다. 출입이 제한된 곳이므로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 었고, 필자 역시 이 일대의 해안을 대부분 조사했었지 만 읍천리 주상절리의 존재를 알지 못했었습니다. 그 러다가 해안을 경계하던 부대가 철수를 하자 세상에 알 려진 것입니다. 그 동안 읍천리 주상절리의 가치에 주목하여 학술적 으로 연구한 학자도 있었고, 이곳의 아름다움을 이용 하여 관광지로 개발하려고 하는 시도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주최하는‘이곳만은 꼭 지키자’시민 공모전에서 수상한 것을 계기로, 언론을 통해 정부와 대중에게 읍천리 주상절리가 알려진 것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생각합니다. 보호지역으로 지정한 문화재청의 발 빠른 대처에도 고 마움을 느낍니다. 하지만 읍천리 주상절리의 보전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보호 지역으로 지정되기는 했지만, 이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인근 지역을 무분별하게 개발할 수도 있고, 관리가 느슨해진 틈을 타서 주상절리에 해가 되는 행위를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자연 자산에 애정을 가지고 있 는 시민의 눈이 관리의 사각지대를 메울 수도 있고, 모금 운동으로 이 일대의 땅을 매 입하여 지켜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입니다. 시민의 손으로 지정된 우리의 자연 자산을 이제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켜 주는 것을 어떨까요? 1. 제주도 대포동의 주상절리 2. 경주 읍천리의 와상절리 1 2 19| 2013년 겨울호 | |
  • 11. 민초의 손에 잡힌 농기구자루 물푸레나무 산소와 식량에서 마을 어귀 정자목의 그늘에 이르기까 지 나무가 인간과 공존하면서 주는 혜택은 수없이 많다. 거기에 땔감에서 소소한 생활용구를 비롯해 재목에 이 르기까지 주검으로 곳곳에 녹아 있는 삶 속의 흔적들을 더하면 나무는 인류문명의 모태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우리 농경문화의 도구에 약방의 감초처럼 쓰였던 것 이 물푸레나무이다. 물푸레나무는 불과 몇 십 년 전 화 석연료와 함께 공산품의 홍수시대가 본격 도래하기 전 까지, 수 천 년 아니 그 보다도 더 오랜 세월동안 민초 의 생활 속에서 이용되어 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 산의 계곡이나 능선을 가리지 않고 조금 깊숙한 곳이면 어디에든 분포하는 물푸레나무는 용담목 물푸 레나무과에 속하는 낙엽성 활엽 교목으로 아름드리까 지 크기도하며 회색의 수피에 얼룩얼룩 불규칙하게 나 있는 흰 반점이 특징이다. 5월에 마치 상고대모양의 흰 꽃이 피었다가 꽃이 진 자리에 기다란 구두주걱모양의 열매가 촘촘히 열려 여름내 바람에 사그락 거리다가 8월쯤에 갈색으로 익는다. 물푸레나무라는 이름은 겉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을 푸르게 물들이는데서 비 롯됐다고 하는데 실제로 다른 나무에 비해 파란 정유성분이 유난히 많이 우러나온다. 이 나무의 한자이름을 살펴보자면 외관상 가장 큰 특징인 잿빛의 수피에 얼룩얼룩 나 있는 흰 띠나 반점으로 인해 진백목(秦白木), 그 얇은 겉껍질 속에 눈이 시릴 정도의 푸르른 속껍질이 있어 청피목(靑皮木), 그리고 수청목(水靑木), 수창목(水蒼木), 수정 목(水精木)등은 우리말 이름처럼 물과의 섭생을 담고 있다. 이 나무의 민초식 발음은 문푸레나무 이다.‘물푸레나무’가 오랜 세월 표준어로 통용 되었음에도 오대산 신배령이나 경북 임하면 등 여러 곳에서‘문푸레골’이라는 전래의 지명이 고수된 곳이 적지 않으며 목수였던 필자의 부친을 비롯해 영서지방 대부분의 옛 어른들은 아직도 문푸레나무로 부르고 있다. 이 나무의 학명 Fraxinus rhynchophylla HANCE 중 앞부분의 Fraxinus의 라틴어가‘이 나무로 만든 창 (窓)’이라는 점과, 잘 부러지지 않아 산막의 문살이나 감옥의 창살 등으로 많이 이용 되어 목창목(木倉木,창고를 짓는 나무)라는 한자이름도 가지고 있으니 문(門)푸레나 무로서의 미련 또한 쉽게 털어내지 못하게 하는 나무이기도 하다. 물푸레나무의 가장 큰 특성은 적당히 단단한데다 질기고 탄력성이 좋다는 것인데 이 성질이 손에 쥐기 적당한 굵기의 어린가지에도 이미 완성돼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웬만큼 굵어져도 갈라지지 않는 엠보싱 느낌의 껍질이 목질부에 단단히 들러붙어 있 어 요즘말로 그립감 까지 좋으니 도끼자루를 비롯해 망치, 괭이, 떡메, 쟁기 등 일부 분에 힘이 집중되는 기구의 자루나 손잡이 용도로서는 그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이 다. 그 외에도 송아지의 코뚜레, 설피, 지게의 세장, 도리깨의 휘추리 등 휨과 내구성 을 동시에 요하는 기구의 곳곳에 쓰였으며 잘 갈라지지 않는 성질로 인해 굵은 나무 로는 제기(祭器)나 벼루를 만들기도 하였다. 한방에서는 물푸레나무의 껍질을 진피 (秦皮)라 하여 눈 질환이나 소염 진해에 이용해 왔으며 현대에는 스키나 고급 가구재 야구배트 등의 용도에 활용되고 있다. 물푸레나무의 영명은 애쉬(ash)이다. 서양에서도 일찍이 이 나무를 방패의 손잡 이나 창자루 등에 활용한 기록이 있으며 그리스 신화 속 아킬레스의 물푸레나무 창 으로도 유명하다. 북유럽이나 홋카이도 등 추운지방에서 활용도가 크다보니 신화에 등장하는 신성한 나무로서 우주수가 되기도 하고 악귀를 물리치는 주술행위에 등장 하기도 한다. 이 나무에 관한 우리나라의 공식 기록은 아마도 고려후기의 권문세족인 이인임, 임견미, 염홍방 등이 자신의 종을 시켜 남의 토지를 빼앗을 때 휘두른 몽둥이를 일컫 는‘수정목공문(水精木公文)’이라는 사건에서 처음 등장하는 듯하다. 이후 조선 예 종 때 형조판서 강희맹이 올린 상소 중에“지금 사용하는 버드나무와 가죽나무곤장 은 죄인이 참으면서 자백을 하지 않으니 수정목 만을 사용하게 하소서”라는 기록이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그 단단하고 질긴 성질이 곧잘 인간을 고문하는 몽둥이로도 쓰여 왔음에 씁쓸한 소회를 가지게도 된다. 물푸레나무는 겨울에 돋보이는 나무이다. 푸른빛이 살짝 도는 잿빛바탕에 얼룩얼 룩 대비되는 흰 반점의 수피색이 더욱 선명해져, 암갈색이 대부분인 황량한 겨울산 이나 눈 덮인 설산을 배경으로도 신선한 느낌으로 눈길을 끌어당긴다. 겨울나기를 고주환 | 작가 가리왕산 중봉계곡의 물푸레나무 거대목 사진 남준기 20 | 2013년 겨울호 | | |✽자연이야기 | 21| 2013년 겨울호 | | 위해 수분을 거의 뿌리로 내려보내, 못이 들어가지 않 을 정도로 단단하고 부름켜의 활동이 거의 정지 상태라 껍질이 목질부에 단단히 들러붙어있으니 주로 손잡이 로 사용되는 용도에 적합한 채취시기 이기도해서 겨울 산을 내려오는 농부의 손에 두어 도막쯤 들려 있기 십 상이었다. 물푸레나무! 원시 수렵시대의 창에서 맹수의 공격을 막던 산막의 문살을 거쳐 메이저리그의 야구배트까지! 서슬 퍼렇던 권력의 몽둥이로, 신선놀음에 썩던 나무꾼의 도끼자루 로, 콩밭을 매던 아낙네의 호미자루로, 저물어가는 고 개를 힘겹게 넘던 등짐장수의 손에 들린 지게작대기로 우리의 문화 속에서는 주로 고단한 민초의 손아귀에 잡 혀 땀과 노동을 우려내던 나무이다. 생활 속에 함께한 유구한 역사의 흔적으로 경기도 화 성이나 파주 적성면의 물푸레나무처럼 마을 어귀의 정 자목이나 신목으로 수백 년을 함께 하다가 천연기념물 로 지정된 노거수도 있다. 꽃과 열매도 아름다우며 무 성한 잎에 수형도 깔끔해서 쓰임새에서 보임새로 가치 의 패러다임이 옮겨가는 이 시대의 어떤 용도에 견주어 도 전혀 손색이 없는 나무이다. ※ 고주환 작가는 <나무가 민중이다>의 저자로 민초의 삶에 깃든 풀 과 나무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며, 숲해설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 12. 22 | 2013년 겨울호 | | |✽자연이야기 | 사냥되는 Water Deer 고라니 2012년 6월 24일 일요일 아침 6시, 창문 밖에서 새끼 고라니의 비명소리와 어미 고라니 의 고함소리가 동시에 들렸습니다. 창문 밖 풀숲에서는 해마다 고라니가 새끼를 낳아 기 르고 있습니다. 나는 직감적으로 새끼 고라니가 포식 자에게 공격을 당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속옷 바람으로 뛰어나갔습니다. 그 때 풀숲으로 달아나는 들고양이의 뒷모습이 보였습니다. 새끼를 잃은 어미 고라니가 슬 프게 울부짖었습니다. 나는 어미를 위로할 셈으로 어 미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어미 앞에는 목에서 피 를 철철 흘리고 쓰러져있는 새끼 고라니가 쓰러져 있었 습니다. 새끼는 태어난 지 사나흘이나 됐음직한 아주 작은 녀 석이었습니다. 다행히 새끼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습니 다. 그러나 어미가 손댈 수 없을 만큼 부상이 컸습니다. 도연 | 스님 금방 피 냄새를 맡고 쉬파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구더기가 생길 테고 구더기는 살을 파먹어 새끼의 생명을 위협할 것입니다. 어미가 물러나자 나는 조심스럽게 새끼를 안고 들어왔습니다. 어미는 언덕에 서서 내가 새끼를 데리고 가 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새끼는 목덜미를 깊이 물렸고 정수리는 피부가 뜯겨나가 하얗게 두개골이 보였습 니다. 서둘러 약을 발라 지혈을 하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동물병원 수의사 도 부상이 심해 절망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고 숨이 붙어 있는 녀석을 그대로 방 치할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녀석은 살 의지조차 없어보였습니다. 우선 신생아 우유 부터 준비해 먹였습니다. 낮 동안은 돌볼 수 있었지만 밤이 더 큰일이었습니다. 아직 어린 녀석이라 최소한 두세 시간에 한 번은 우유를 먹여야 했지만 중상을 입은 녀석 이 다음날 아침까지 살아있을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구조 후 24시간이 지났습니다. 나는 녀석의 이름을‘도란이’라고 지었습니다. 나 와 새끼 고라니 이름에서 한 글자씩 땄는데 도란도란 살자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도 란이의 상처는 생각보다 심각했습니다. 끊어진 힘줄을 미처 잇지 못하고 봉합하는 바람에 고개 가누기가 힘겨웠습니다. 하루 24시간을 꼬박 도란이 간호에 매달린 결 과 이틀 후 녀석이 일어서 걷기 시작했습니다. 수의사도 기적이라고 격려했습니다. ‘도란이 구조 일기’는 페이스북을 통해 중계되었고 페이스북 친구들이 기저귀와 동 물 초유를 보내거나 사들고 왔습니다. 새끼 고라니의 문병을 온 것입니다. 기적은 또 있었습니다. 바로 도란이가 밤마다 어미와 대화를 하는 거였습니다. 밤 마다 어미는 창가에 와서 울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도란이가 반응했습니다. 어미와 새끼는 인간이 알아들을 수 없는 주파수로 교신한 게 분명합니다. 이렇게 한 달이 지 났습니다. 도란이를 돌보는 한 달 내내 나는 24시간 어미가 된 심정으로 도란이 곁을 지켰습니다. 고라니는‘고라니과’의 동물로 세계적으로는 중국 동북부와 우리나라에만 살고 있고‘중국고라니’와‘한국고라니’로 분류되는 특산종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체 수가 흔해 사냥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멸종위기종으로 분류하여 보호하 고 있습니다. 크기는 약 1미터 이내이고 몸무게는 11kg 내외로 알려졌습니다. 숲이 우거지기 시 작하면 어미는 서너 마리의 새끼를 낳는데, 새끼를 풀섶에 숨겨놓고 젖을 먹이러 오 갑니다. 이 때 삵이나 들고양이, 멧돼지 등의 천적에게 해를 입기도 하지요. 고라니는 물사슴(Water Deer)이라고도 합니다. 물을 좋아하고 수영도 잘해 하천 이나 강가 갈대밭에서 자주 목격되는데 민통선 부근 습지에서는‘노랑어리연’의 어 린 잎을 따먹는 고라니를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어떤 녀석들은 가정집 정원에까지 출 몰해 연못에 있는 수련잎을 먹어치우기도 합니다. 또 가장 빈번하게 로드킬(자동차와 충돌)을 당하는 종이 바로 고라니입니다. 개체 수가 늘어난 까닭도 있지만 산자락을 잘라 도로를 만들면서 동물들의 이동통로가 단 절된 까닭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비극적인 일은 농부들과 실랑이 끝에 기어이‘유해조수류’로‘낙인’ 찍혀 사냥감으로 전락하게 된 것입니다. 고라니의 개체는 단순히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 뿐이지 아직까지 파악조차 안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 닙니다. 다만 행동거리가 2km를 넘지 않는다는 연구결 과가 있어 이를 토대로 과학적으로 개체수를 조절할 필 요가 있을 것입니다. 부상당한 고라니 새끼 한 마리에게 많은 사람들이 응 원을 보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생명은 하나같이 소 중하다는 뜻일 것입니다. 더불어 자연, 즉 야생과 생태 는 인간이 정복하고 마음대로 소유해서는 안 된다는 걸 말하는 게 아닐까요. 일본은‘기러기보호협회’까지 있 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모내기가 시작되어도 돌아가 지 않는 기러기 때문에 농부들에게 미움을 사는 녀석들 이 일본에서는‘유동자산’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의 차이가 이렇게 다른 것에 놀라울 뿐입니다. 잔인하게 총을 쏘아 살육하여 개체수를 조절하는 것 은 생명존중의 측면은 물론이고 인간적인 차원에서 보 더라도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일이겠고 비교육적인 일임 에 틀림없습니다. 우리는 이쯤에서 야만스러운 방법으 로 고라니를 제거하는 방법과 야생동물을 보호함으로 써 얻게 되는 반사이익을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 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과학적인 방법으 로 접근해야하지 않을까요. 이 시간에도 숲에서 고라니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겨울에 짝을 짓는 녀석들이 서로를 부르는 소리일 것입 니다. 23| 2013년 겨울호 | |
  • 13. | ✽회원인터뷰 | NT블로그팀의 활약을 보여드릴게요 NT(내셔널트러스트)블로거로활동을시작하셨는 데 NT블로거 소개 좀 부탁드려요. NT블로거 활동은 올해 처음 시작했어요. 내셔널 트러스트 대의원 회의에서 내셔널트러스트에 대 한 홍보의 부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서 NT블 로거를 운영하는 안건이 수락되었고, 저를 포함한 6명의 블로거들이 선발되어 내셔널트러스트 블로 거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NT블로거 활동의 주 목 적은 내셔널트러스트 홍보를 통한 회원 수 증대 및 기부 활성화 등인데, 내셔널트러스트 같은 훌 륭한 시민단체가 일반 시민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예전보다 활동이 활성화 되지 않은 것 같아 서 결국 이러한 활동을 시작했어요. 파워블로거이신데 아무나 되는 게 아니잖아요. 특 별한 노하우를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최상미회원 블로그 http://blog.naver.com/hoho sm) 저는 포토샵으로 사진을 조작하는 것도 멋진 표나 지도를 따로 제작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 만 그 만큼 글을 정성들여서 쓰고 최대한 객관적 인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지요. 글을 조리 있게 쓰면서 글이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게 조정 하고 독자들에게 지루함을 주지 않기 위해 충분 한 사진 자료를 활용하도록 노력해요. 블로그의 원칙은 전문성이에요. 블로그 운영에 있어 블로그 의 정체성 확립은 그 블로그를 키우는데 큰 원동 력이 되요. 즉 다양한 주제를 얕게 파기 보다는 하나의 주제 를 전문적으로 파서 블로그의 테마를 잡아가는 과 정이 중요해요. 제 블로그에는 주로 여러 가지 공 연과 NT, 환경, 그리고 체험학습을 위주로 포스팅 이 되어있어요. 특히 국립 국악 공연 등이 많은데 생각보다 매우 재미있고 사람들이 충분히 즐길만 한 요소가 많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보러 오지 않 아 3개월 연습하고 3일 공연하는 현상이 반복되 어 매우 안타까워요. 이는 국립 극장의 이미지 자 체가 상당히 경직되어 있고 딱딱한데다가 오페라 의 유령 같은 유명한 외국 공연처럼 이름이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아 홍보도 부족하기 때문인 것 같 아요. 요즘 창극은 퓨전식에다 여러 가지 요소를 섞어서 기존의 창극과 다른 재미를 내서 한 번쯤 가보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에요! 그 전에도 내셔널트러스트 행사나 프로그램에 많 이 참가하셨는데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드셨나요? 정기 총회는 정말 좋아요. 평소 만날 수 없는 대단 한 분들도 많이 만나서 몰랐던 것도 알고‘氣’를 받는 느낌이 들거든요. 또한 다양한 대화를 통해 새로운 사람과 관점을 알아가는 과정이 대단한 즐 거움을 주는 것 같아요. 처음내셔널트러스트를알게되신계기가궁금해요! 자녀들을 일본에 보내는 캠프를 내셔널트러스트 가 주최한 적이 있는데 그 캠프에 아이를 보내면 서 내셔널트러스트에 관심이 생겼어요. 직장에 다 니지 않는 일반 주부들은 생각보다 남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그러한 시간적 여유를 통해 다른 활동을 하길 원하거든요. 저 같은 경우는 그게 내 셔널트러스트 활동으로 이어졌지요. 저희 온새미로 기자단에게 파워블로거로서 조언 해 주실 만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없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이런 활동을 하는 게 참 대단한 것 같아요. 1년만 하는 것은 너무 기간이 짧으니 이왕 할 거면 꾸준히 오래 했으면 해요. 기 자단 역시 많은 홍보를 통해 기자단이 하는 일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지원해 줬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내셔널트러스트에 격려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내셔널트러스트는 지금 홍보가 절대적으로 필요 한 것 같아요. 내셔널트러스트 자체는 굉장히 훌 륭한 단체지만, 시민단체의 주축인 시민이 이 단 체를 대부분 잘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영국과 같은 외국은 홍보 등이 잘 되어 있어 NT가 굉장히 효율적으로 잘 운영되고 기부 문화도 기본 적으로 잘 형성 되어 있는데 반해, 한국은 그게 상 당히 부족해요. 그런 의미로 여러 가지 행사를 하 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일단은 홍보를 통해 서 내셔널트러스트 자체를 알리고 회원 수를 늘리 는게 더 우선인 것 같아요. 특히 어린이 회원들을 늘려 그들을 장차 차기 회원으로 육성해 재능 기 부 등을 통한 홍보를 활성화시키고 현 시점에서 NT가 할 수 있는 방안을 모두 활용해 최대한 홍보 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행 김여진(용인외고), 김영민(성보고) | 온새미로 청소년 기자단 최근 NT블로그팀이 인터넷 홍보사절단으로 활동을 시작 했습니다. 그 중 한분인 파워블로거이기도 한 최상미님은 예전부터 내셔널트러스트 활동에 열심히 참여해주셨던 회 원님이시랍니다. 멋진 일상의 행복을 채워가고 계신 최상 미 회원님을 만나뵈었어요. 최상미 회원님 25| 2013년 겨울호 | |
  • 14. 27| 2013년 겨울호 | | | ✽회원인터뷰 | 내셔널트러스트 에코 드라이버 캠페인 전화 한 통화로 자동차 보험료의 연 8%를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기부하세요. 우리나라 국민 2명당 1명꼴로 보유하고 있는 자동차.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승용차 1대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은 평균 198/㎢라고 합니다. 우리 생활에 유용한 교통수단인 자동차. 환경을 생각한다면 자동차보험료를 기부할 수 있는 내셔널트러스트 에코 드라이버 캠페인에 참여하세요. 보험료의 인상 없이 납부하는 요금의 연 8%가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자연환경보전 기금으로 사용됩니다. (주)이인슈벨 02)554-9856 (담당: 박혜경 팀장)에 전화해서, ‘자동차 보험료를 내셔널트러스트에 기부합니다.’ 라고 전해주세요. 01 차량번호 및 간단한 개인정보 확인과 접수 02 자동차 보험료의 연 8%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기부 03 기부금에 대한 연말정산 세제혜택 04 ※ 자동차보험 계약 만료 전이라도 연락하시면, 재계약시 보험료를 기부하실 수 있도록 처리해 드립니다. ※ 보험설계사가 지인일 경우, 수수료가 해당 설계사에 지급되지 않습니다. (인터넷을 통한 자동차 보험 가입자에게 권장) ※ 에코드라이버 캠페인의 기부금은 연말정산 세제혜택이 있습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지정기부단체로 개인은 소득범위의 30%, 법인은 소득범위의 10%의 세제혜택이 있습니다. ※ 자동차보험 계약 만료 전이라도 연락하시면, 재계약 시 보험료를 기부하실 수 있도록 처리해 드립니다. ※ 신청 및 문의: 02-554-9856 박혜경 팀장 ‘우리’를 꿈꾸는 촌장 어떤 일을 하시는지 소개해주세요. 환경디자인이라고 하면 크게는 지구환경, 축소 해 들어가면 국토환경개선, 도시환경개선, 주거 환경개선, 공원, 도로 같은 공간을 개선하는 일을 합니다. 우리는 좀 다른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하 고 있어요. 보통 엔지니어를 중심으로 일이 진행 되는데, 우리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두고 고민 을 많이 합니다. 스마트 아키텍쳐, 스마트 랜드스 케이프, 이렇게 표현하면 정확할 것 같아요. 즉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이 굉장히 영리해 진 것이 죠. 옛날에는 공간에 대해 디자이너들의 시각이 훨씬 중요했다면, 지금은 공간 자체가 훨씬 중요 해졌다는 사실이죠. 회사의 분위기가 가족적이에요. 저는 우리 회사를‘행복 비지니스 소사이어티’라 부르고 있어요. 여기서 저는 촌장이고요. 기업이 이윤을 추구한다는 것은 산업화 시절에 있었던 기업관인데 21세기 기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라 도 이제는 우리 시민들이든 고객들이든 그들에 게 유용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일들을 찾는 게 가장 성공한 조건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다보니 회사가 시민단체 같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 데 시민단체 같아야 성공한다고 생각해요. 해고 없고, 쳐지는 사람 당겨주고, 성과를 나누는 등 우리끼리의 공동체 규칙을 가지고 가고 있어요. 이윤추구를 하는 기업에서도 이렇게 갈 수 있다 고 봐요. 사업도 처음에는 좋은 시민운동을 하기 위해서 돈이 필요해서 시작했는데, 하다보니까 이제 기 업을 잘 운영하는 것도 하나의 운동이라는 생각 이 많이 들었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기업관은 돈 버는 것보다도 직원들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일을 해나가야 하는가에 있어요. 실천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시간도 걸리 고 초조하고 두려워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왔는 데 되더라고요. 저는 좋은 세상 한 번 만들어보는 게 꿈이었어요. 어린 시절 꿈치고는 좀 컸죠. 근데 사업에서 망하 다 보니, 회사라도 좋은 조직을 만드는 것 만해도 대단한 일이라 생각하게 됐지요. 이 세상은 너무 너무 불확실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과 내 주변의 구성원들이 공동체가 되어 서로 위로가 된다면 덜 불안하죠. 어려운 상황에서 근시안적인 호흡에 매몰되지 않고 가치를 꾸준히 지키고 갈 수 있었던 원동력 이 무엇이었나요? 중요한 질문인데요. 가족이나 직원들, 정세 상황 들이 내가 의지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았 나 싶어요. 저도 가끔은 두렵고 의지가 약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생각지도 못한 직원 동료, 아이에게서 용기를 느낄 때가 있어요. 아이에게 힘들다고 이야기하면, 애들은 너무 간단하게 “아빠는 충분히 해낼 수 있는데 그 까짓 걸로 걱 정을 해? 내가 있는데 안 행복해?”라고 해요. 이 런 이야기가 저에게는 굉장히 크게 마음에 와 닿 았어요. 가족분들과 최순우 옛집에 들러보셨는데 어떠셨 나요?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았어요. 집사람이 화가이 고 저도 미학을 공부해서 최순우 선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요. 최순우 선생님이라면 우리나 라 미술사에 중요한 획을 그으신 분인데 그분의 집이니 굉장히 감동스럽더라고요. 그 분이 살았 던 집의 형태, 뜰, 마당, 툇마루를 보면서 미적인 성향과 삶이 다르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소박하 고 단아하면서 절제되어있는 점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의 아름다움과 닮아있더군요. 내셔널트러스트 운동 어떻게 응원하고 계신지요? 사실 저도 여러 시민단체와 캠페인, 교육 등의 활 동을 많이 했었어요. 시민운동을 해보니 시민운동 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넓어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내셔널 트러스트 운동 은 좋은 본보기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단체 가 각자 가지고 있는 이슈에 대해서 시대에 맞는 진화를 해야 한다고 보는데 우리나라 시민운동은 많이 정체되어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구슬도 꿰어야 보배이듯, 좋은 생각은 참 많아도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운동이 중요한 매개가 되는 거죠. 아마 이런 매개가 없었 다면 좋은 것을 알고는 있지만 실행하기는 쉽지 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래서 시민운동하시는 분 들은 굉장히 포지티브하고 폭도 넓어야 될 것 같 아야 될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내셔널트 러스트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고, 건강한 운동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진행 허주희 | 홍보 부장 2012년 후원의밤에 초대받은 최재정 JSB 사장님은 내셔 널트러스트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가지시며, 직원 100여 명의 회원가입을 이끌어주셨답니다. 함께 나누고 의지하는 공동체를 가꾸고 계신 최재정 회원 님을 만나뵈었습니다. 최재정 회원님
  • 15. 28 | 2013년 겨울호 | | 29| 2013년 겨울호 | | 물건의 재구성 물건과 노동과 세상의 진짜 주인이 되는 법 나는 남자로 태어났으면 목수가 되었을 거라고 친구 들에게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 무아지경에 빠지는 감정은 마치 중독처럼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고, 내 생각이 오롯이 담겨진 결과물을 마주하게 되면 아무리 못났더라도 세상에 둘도 없는 가치를 부여하게 된다. 저자 연정태는 이처럼 재활용 으로 물건을 직접 만들어 봄을 통해 우리들의 시각이 물건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도록 인도하며‘물건의 진 짜 주인이 되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재활용은 버림받은 물건과 산업과 사람과 공간과 시간을 살려내는 일 ‘물건의 재구성’은 단순히 물건을 재활용하자는 매뉴얼을 나열하고 있는 책이 아 니다. 저자는 좀 더 넓은 의미에서의 재활용을 정의하고자 한다.‘쓸모없는 물건을 쓸모 있게 만드는 일’에서 더 나아가 재활용의 개념을‘물건’에서‘시간’과 공간‘으 로 확장한다. 즉 불필요한 공간을 되살리는 것도 재활용이고 낭비되는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재 활용이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에 적극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재활용은 경쟁력이 없다는 이유로 또는 불필요하다는 이유로 쉽게 버림받는 수많은 물건과 산업과 사 람과 공간과 시간을 살려내는 건강한 일인 것이다. 전은정 | 조경가, 조경포레(주) 소장 | ✽추천도서│ 물건의 재구성 | 연정태 지음 1. 의자 두개를 뒤집어 만드는 화장대 2. 페트병으로 만든 기와지붕 범 지구환경을 위해 일상과 예술 속으로 깊이 파고 든 재활용 재활용의 재미는 내 맘대로 내키는대로 만들 수 있다는 자유로움이다. 저자는 페 트병을 모아 기와집모양의 지붕을 만들기도 하고 의자 두 개로 아름다운 화장대로 변 신시키거나 오래된 냉장고를 합판으로 마감해 친환경적 부류로 종속시키고 망가진 전자렌지를 우체통으로 활용하는 등의 다양하고 창의적인 사례를 보여주며 재활용 에 있어 잠시 물건의 용도를 망각하면 새로운 활용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주기도 한다. 저자가 이러한 사례를 나열하는 배경에는 우리가 재활용을 위해서는 막대한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불편한 진실을 알리려는 노력이 숨 어있다. 모아진 고철을 다시 이용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요구된다는 모순을 우리는 얼마나 체감할 수 있을까…. 최근 재활용은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 삶 깊 숙이 파고들어와 있다. 최근 모 의류기업은 빠르고 쉽게 버려지는 인테리어 공사의 폐단에 경종을 울리고자 디자이너들과 협업하여 폐건축자재를 활용한 컨셉매장을 건축하는 모범적 시도를 보여주었고, 많은 예술가들도 지구환경을 살리는 캠페인에 동참하고자 폐자재를 사용하여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예술가가 아니더라 도 한 개인에게 있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그에겐 예술품 이 상의 희소성을 갖는 것이 되며, 예술가들이 만들어내는 작품은 희소성의 가치와 더 불어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좋은 생각을 전파하므로 더욱 큰 의미를 갖게 된다. 범 지구 환경에 대한 관심과 의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현 시점에서‘물건의 재구성’은 일상의 작은 습관부터 생각의 큰 틀까지 다시 되짚어 보게 만든다. 생각의 재구성 좋은 생각은 마치 바람에 날리는 민들레의 씨앗과 같아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여기저기 퍼져서 먼 곳까지 흘러간다. 저자 역시 이 책을 통해서 사람들과 좋은 문화 의 씨앗을 나누고자 자신이 만든 재활용의 사례를 직접 보여주기도 하고, 자신의 아 이의 돌잡이를 지켜보며 아버지로서의 바람을 솔직하게 고백하기도 한다. 대개 손을 많이 쓰는 디자이너는 생각을 적게 할 것이라는 편견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물건의 재구성’을 위한 컨셉을 전개하기에 앞서 치밀한 분석 즉 세심한 재료의 물성 파악과 구조계산, 적정 공법의 검토, 그리고 그 활용과 지속 가능성, 심지어 이용자 가 느껴줬으면 하는 소망을 담으면서, 디자인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장인정신과 가끔은 유머까지 곁들이느라 치열하게 고민한 그의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요즘 개 그프로에 등장하는 말처럼‘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요?’라는 생각마저 들게 되는 순 간이 있다. 저자는 그 답을 책의 마지막 장‘생각의 재구성’에서 정말로 하고 싶은 속 내를 담담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책의 중간 중간‘생각의 비늘’이라는 편린을 통해서도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재활용’은 디자인에 앞서 생각과 가치가 올 바로 서야 함을 다시금 잡아주는 대목들이다. 조화로운 인간이 되기를 바라며 책을 읽고 나니 초등학교 시절 공작시간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 구청이나 시청에 도서관도 중요하지만 공작학교가 시급하다고 건의하 고 싶다. 문무를 겸비한 조화로운 인재를 양성하려면, 사물의 이치와 노동의 가치를 몸소 부닥쳐 깨닫고 이해 하는 조화로운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저자의 말에 백배공감하기 때문이다. 다시 남자로 태어나기를 기다리느니 내안에 웅크리고 있던 호모 파베르(Homo faber, 도구를 만드는 인간)가 말을 걸어올 것을 기대 하며 당장 공구도 사고 창고를 뒤져 이것저것 짜 맞춰 봐야겠다. 1 2
  • 16. 멸종위기식물 보존 캠페인 멸종위기식물 매화마름이 피는 꽃논을 분양합니다 ※ 후원계좌 외환은행 630-007729-669(예금주: 한국내셔널트러스트) ※ 신청 및 문의 02-739-3131(담당 박도훈 부장) ※‘꽃논사랑 후원금’은 연말정산 세제혜택이 있습니다. 6평의 매화마름 꽃논(30,000원)을 사주시면 매화마름과 지역주민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분양받으신 매화마름 꽃논 만큼의 면적에서 생산된 유기농 매화마름 쌀(5kg 1포/ 6평 기준)을 보내드립니다. 30 | 2013년 겨울호 | | 새생명이움트는 매화마름논의겨울 매화마름의 가장 중요한 생태특징, 논에서 자란다 매화마름(Ranunculus kadzusensis MAKINO)은 미 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다년생 수생식물이다. 지름 1cm 의 하얀 꽃은 물 위로 피어나며, 꽃은 물매화를 닮고 잎 은 붕어마름을 닮아 매화마름이라 한다. 4월말에서 5월 말까지 군락(群落)을 이루며 개화하는 환경부 지정 멸 종위기야생식물 관찰종이다. 매화마름은 발아, 생장, 결실까지 모든 과정을 육상 과 수중에서 거칠 수 있는 독특한 식물이다. 여기에서 육상이라 함은 수분을 머금은 논두렁 등을 가리킨다. 수생식물이기 때문에 생육환경 조건 중 물이 가장 중 요하나, 물가 주변의 수분량이 높은 흙에서도 짧은 줄 기와 잎의 형태로 자란다. 매화마름은 경작 중인 논에서 자란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한 매화마름 군락지의 생태적 특징이다. 매화마름 군락지는 주로 서해안을 따라 있는 논에서 자생하고 있 다. 멸종위기종으로 분류된 이후 계속해서 발견되고 있는 서식지를 살펴보면 강화도, 김포, 경기 화성시 시 화호 일대, 충남 태안, 전북 고창 변산반도 일대, 전남 영광군 법성면 일대 등지다. 발견된 모든 지역은 경작 중인 논이며, 현재 보고된 전국 25곳의 서식지도 모두 경작지이다. 경작 중인 논이 매화마름 서식에 중요한 점은 바로 농부의‘경작’행위를 통해 매화마름이 다른 식물과의 경 쟁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아직 개화 상태에 있거나 종자를 퍼뜨리지 못한 매화마름을 배려한다고 그 상태를 지속한다면, 매화마름 서식지는 곧 다른 풀 과의 경쟁에서 밀려 자리를 빼앗기게 된다. 이러한 이 유로 휴경논에서는 매화마름이 자라지 못한다. 인간의 입장에서 모내기 전의 트랙터 작업은 매화마름을 꺾고 밀어버리는 훼손행위로 보인다. 그러나 매화마름 입장 에서는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종자를 퍼뜨리고 종자가 떨어진 논바닥에 벼 이외의 다른 식물이 침입을 차단함 으로써 다음번 발아기회를 획득하기 때문에 농부의 ‘경작’은 매화마름 서식지 보존의 방어막으로 작용하 는 것이다. 가을에 싹트는 매화마름, 기특한 생애주기 매화마름의 또 다른 생태적 특징은 성장주기이다. 매 박도훈 |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자연유산 부장 | ✽품안에│ 좌 벼베기 후 겨울의 논 우 11월에 새싹을 틔우는 매화마름 화마름은 가을에 벼 베기가 끝난 논에서 물을 대기 시 작하는 11월쯤 발아를 시작한다. 겨울에 물속에서 발아 를 시작한 후 3월부터 빠른 성장을 시작하여 4월 중순 에 개화하기 시작한다. 5월 중순부터 모내기 전인 5월 말까지 열매를 맺어 씨앗을 퍼뜨린다. 겨울 논의 주인은 매화마름 매화마름이 발견되는 논은 대개 1970년대에 간척된 논으로 최근까지도 수리조건이 좋지 않아 겨울동안 논 마다 물을 담고 있었고 이른 봄에는 경작을 하지 않는 다. 매화마름은 0℃ 이상, 20℃ 이하의 수중에서 발아 하고 생장한다. 물온도가 20℃ 이상이 되는 여름철은 발아도 되지 않고 줄기와 잎은 녹아버린다. 겨울의 매화마름 논, 이제 주인이 바뀌었다. 벼가 주인 이었던 6월~10월을 뒤로하고 이듬해 봄 5월까지, 논의 주인은 매화마름이다. 물을 가득 채운 논은 논습지 생명 들의 쉼터가 되고 얼음이 얼면 아이들의 썰매장이 된다. 매화마름의 또 다른 이름‘개말’ 강화도 초지리에서 매화마름은 논두렁에 자라는 식 용‘말’과 달리 먹을 수도 없고 농사를 방해한다고‘개말’이라 불렸다. 대다수 지역사 람들에게 매화마름의 가치는 아직도‘개말’이라는 평가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매화마름 자체가 농민들에게 필요한 자연자원이 아닌 상태이고, 이들이 매 화마름 보존에 기울여야 할 노력에 비하면 그에 비해 되돌아올 혜택은 불명확하다. 이런 이유에서 매화마름 관리를 도모하는 데 여러 장애가 존재하고 있지만 매화마름 이 인간에게 어떠한 가시적 혜택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 부족 자체가 매화마름 멸종의 위협요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과 작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