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예부터 산 좋고 물 좋고 들 좋은 마을이어서
누구나 와서 살고 싶어했다는 대천마을,
12. 대천천을 중심으로
300-400년 전부터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된 오랜 전통마을과
90년대 택지개발로 형성된 신도시 아파트가 공존하는 곳
오랜 시간 세대를 이어가며 살아가고 있는 원주민과
신도시 이주민의 일상이 묘하게 어우러져 있는 곳
13. 우리는 대천마을에 뿌리를 내리며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전부터의 고향이었으며
누군가는 살다 보니 ‘여기가 내 고향이지’ 말하게 되었고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라는 아이들에겐 이미 고향인 곳이다.
그러는 동안 궁금해졌다.
이 마을의 뿌리가 어디서 시작되었으며
어떻게 뻗어져 왔는지 어디로 뻗어 갈 것인지.
마을의 오랜 이야기를 듣고 싶었고
만나고 싶었고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14. 대를 이어 살고 있는 마을의 어르신들부터
마을의 새로운 구성원이 된 젊은 세대들의
집집마다 서랍 속에 묻혀 있을
낡은 마을사진을 찾아 보고,
마을 속 나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꺼내 보며,
“아~ 그때 우리마을이 이랬지”
“난 그때 이렇게 살았구나”
이렇게 사진과 마주하여 떠올려진
마을에 얽힌 개개인의 추억과 경험을
다시 찾아보고,
함께 모아보고,
자세히 기록하는 아카이브 작업을
대천마을의 여러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8개월에 걸쳐 진행 하였다.
15. ▪문화적 매개로서의 활동가 양성 및 마을 아카이브 실현
▪함께 하는 내용 : 사진으로 기억하는 대천마을아카이브
-낡은 앨범 속 나의 이야기
-마을, 사진 구경가다
-마을의 기억과 삶을 바라보는 글쓰기
-사진, 그림책을 만나다
▪함께하는 사람들 : 문진우 (다큐 사진작가)
임숙자(인문학 강사)
맨발동무도서관 아카이브 스텝
▪참여대상: 지역단체 활동가 23명
▪ 부산시문화재단 지역특성화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진행
22. 사진 아카이브 역량강화를 위한
사진전시회도 참가했다.
<파사드 부산 2013>,
<사람의 집 프로세믹서>
23. 참가자들이 모여
옛 사진을 통한 개인의
경험과 추억을
함께 나누며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마을의 아카이브 이전에
‘자기 삶’의 일상을 아카이브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일주일 동안 일상생활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기록해 보기,
그리고 모임에서 울고, 웃으며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채워 나갔다.
34. 화명동에서 23년간 동서기를 지내시며 당시 마을의 많은 사진을 보
관하고 계셨다. 당신이 살고 있는 마을사진이라 아까워서 버리지 못
하고 잘 챙겨두고 있었다 한다. 퇴직 후 사진을 잘 정리해 보려 했지
만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미뤄 두고 있던 것을 이번 마을 사진 아카
이브를 계기로 귀중한 마을사진을 마을에 기증하셨다.
36. 마을의 경제공동체
마을 기금,마을기업으로 마을 자치 경제공동체를
이루었던 1960년대 대천지역개발계
기와공장 바로 뒤에 70평 규모의 분뇨
탱크를 마련했다.
/사진 박성태 소장
1965년 25만원을 들여서 대천마을
입구에 화명기와벽돌공장을 세웠다
/사진 박성태 소장
37. ‘강바람에 휘날리는 모래가 눈을 못뜨게
할 정도였으나 남정네는 리어카를 앞에
서 끌고 여인네는 뒤에서 밀었다.어린이
도 학교에서 돌아오면 지게를 졌다.
1966년 6월 5일 주민들의 피와 땀으로
세운 양수기가 처음 낙동강 물을 논으로
퍼 올렸다. 이날 마을 사람들이라면 코흘
리개까지 나와 촛불을 켜 들고 정상가동
을 기원했다.
이듬해에는 60년만에 처음 보는 가뭄이
삼남지방을 휩쓸었다.하지만 화명동만은
풍년가가 온 들판을 울렸고 낟알이 튀어
나올 듯 무거운 벼 이삭이 고개를 늘어뜨
린 채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며 풍년가에
장단을 맞추었다’ 1965년에 마을 사람들은 양수기 건립
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대천천과 낙동
강이 만나는 지점에 양수장을 세웠다.
/사진 박성태 소장
38. 마을의 교육 이야기
마을이 학교요, 학교가 마을이었던 사립화명학교.
대천마을은 1908년 사립화명학교를 시작으로
이미 교육 공동체를 실현하고 있었다.
당시 화명, 금곡 지역 일곱개 마을 주민들의 힘이 모였다. 대천580환, 화
잠576환,공창254환,수정 60환,용당21환,동원20환이었다. 여기에 개인
기부금 598환을 더하여 2천 3백환을 학교 설립 기금으로 모았다.
1918년, 일제의 1면 1교 방침으로 화명학교는 강제 페쇄되었다.
구포시장 삼일운동의 주역인 임봉래, 윤경,류기호, 우리나라 민중의료운
동의 선구자 양봉근, 애향 교육자 권상덕 등 빼어난 인재를 길러냈을 뿐
만 아니라 주민자치에 바탕을 둔 교육 자치의 귀감을 일구어냈다
39. “구포까지 가기 힘드니까
여기서 글을 배워야겠다 해서
야간학교를 만들었어요.
한문도 가르치고 한글도 가르치고
수학도 간단한 거 배우고….
여기 사람들이 전부 야간학교에 다녔고
해방 되기 전에 문맹조사를 하니
이 마을 출신자는 문맹자가 한 분도 없어
요. 글 모르는 사람은 다른 데서 시집온
사람밖에 없었었어요
해방 되고나서 이 마을사람들이 다시
학교를 만들자 해서 화명공립학교를
만들었어요….
논을 700평 마을사람들이 돈을 모아 사
가지고 학교 땅으로 하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기성회비에 보태 쓰라고 했
어요.” 정우상(89세)
”
“ 이 마을에는 문맹자가 한 분도 없었어요”
1943년 설립된 화명공립초등학교
화명초등학교 사진 제공
2013년 화명초등학교
사진 문진우
40. “내가 화명초등학교 33회,
우리 큰딸이 62회,
그리고 우리 아들이 64회 졸업생이
예요” 강남중(46세)
”
1980년대 화명초등학교,
사진속 주인공은 강남중 씨다.
사진 강남중 소장
50. 일제강점기 시대의 마을 사진,
1960년대 마을 항공사진부터
신도시 택지개발이 이루어졌던
1980년대후반부터 2000년대 사진,
그리고 현재의 마을 사진들이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기록되어졌다.
기록은 크게 다섯 갈래의 사진과 이야기로 나뉘어졌다.
1.대천마을_ 마을의 유래, 문중
2,마을의 자연_마을의 물길, 다리
3.마을의 생활_농사,경제공동체,교육
4.마을의 변화_택지개발,집,땅,길,개발 그리고 아쉬움,일
5.마을의 기억_기억의 터,경부선 철길,나무
.
53. 2013년 11월 23일,
"대천마을, 사진을 꺼내들다"
책 출판기념회 및 사진전시회 오픈식 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잘 들여다보고, 그것을 써보는 일,
'울림'을 전해 듣고 기록하는 일,
개인의 아카이브를 시작으로
마을의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옛사진을 매개로
찾아보고 기록해 왔던
8개월간의 마을 사진 아카이브는
61. “마을의 뿌리를 찾은 것 같다”
“마을의 희망을 함께 이야기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마을에 살고 있어 뿌듯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대천마을 사진을 꺼내들다>는 마을의 도서관,
초,중,고등학교에 배포되어
마을의 향토자료 역할을 해나가야 한다”
“마을의 자료들을 보관할 수 있는 마을 자료관, 역사관을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마을에서 해야 할 일이다.”
“대천마을이 재개발 되지 않게 해주세요”